왕양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 슬기로운 유배생활

3. 귀주 가는 길 – 급할수록 돌아가라? 급해서 돌아가는 수밖엔!

문리스(남산강학원)

도주 - 문제는 자유가 아니라니까! 출구라니까!

정덕제 무종의 새 시대를 맞아 불과 몇 개월 만에 양명의 인생은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급변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무소불위의 환관 유근과의 대결 부분은 볼 때마다 아찔합니다. 될 수 있는 한 양명의 그때 그 마음을 실감해보고 싶습니다만, 아무리 해봤자 양명의 당시 실정과는 구만팔천리쯤 동떨어진 관념적이고 공허한 상상력일 것입니다. 불의한 세력(유근)에 대한 의로운 상소문. 그로 인해 받아야 했던 탄압과 모멸. 불의한 상대는 여전히 승승장구하는데, 스스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 정의를 부르짖던 자신은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언제 죽을지 모를, 아니 언제 죽더라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멀고 먼 이방의 땅으로 쫓겨남 등등.

하지만 사실 세상에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착한 동화나 구전 설화 등의 해피엔딩과는 달리 현실에선 주로 약삭빠르고 타협적이며 이기적인 사람들이 이익을 보고 영광을 누리는 경우 말입니다. 동화는 동화일 뿐? 그래서 일까요. 우리는 또 종종 ‘조금만 비겁하면 살림살이가 나아진다’거나 ‘하마터면 착하게 살 뻔 했다’라는 식의 시크하고 개성 넘치는 인생의 아포리즘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지만, 과연, 정말 그럴까요. 물론 저도 자주 혹합니다, 만 정말, 과연, 그런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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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주성 용장으로 쫓겨 가는 양명에게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양명의 질문. 그리고 그 질문의 방향. 양명은 왜 자신이 이런 고통을 겪어야하는가를 묻는 대신, ‘어떻게 이 고통을 겪을 것인가’를 묻습니다. 제 생각에 이 차이는 아주 크고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자주 놓치는 삶의 기본기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흥부전> 같은 고전소설 혹은 너무도 뻔한 스토리라고 생각하는 고전을 만날 때, 우리는 저도 모르게 덩달아 뻔한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사실은 뻔한 질문밖에 못 던지기에 뻔한 이야기가 되는 것인데 암튼 그 문젠 일단 넘어가기로 하고!).

하지만 한 번 물어볼까요. 가난한 흥부는 어떻게 큰 복을 받게 된 것일까요. 착한 사람이 복을 받는다! 이 간단하고 자명한 사실에 대해 우리는 곧잘 실소하는 실수를 범합니다. 사실 흥부는, 복을 받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인물이었는데 말이죠. 우리는 자주 이걸 잊어버리곤 합니다. 그리고는 곧잘 고전 소설의 등장인물이 겪는 사건들은 우연이 과도해서 비합리적인 이야기들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현대인들의 시각에서 볼 때 그렇다는 말일 뿐이죠. 하여 공양미 300석에 자신을 용왕께 드리는 제물로 팔아버린 심청 같은 경우엔 그(녀)가 인당수에 빠져도 전혀(!) 걱정하지 않습니다. 심청은 어쨌든 살아날 거야, 고전소설의 주인공의 시련엔 반드시 조력자가 있게 마련이야, 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흥부가 심술 많은 형 놀부에게 구박 당해 쫓겨나고, 함께 살아야 할 자식들이 많아도 너무 많고, 당연히 기본 생활조차 지킬 수 없는 형편이고, 매(형벌)를 대신 맞아주는 알바조차 제대로 안 되어 삶이 극도로 위태로워지는 상황인데도, 우리 현대인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제 곧 좋아지겠지 뭐! 라고 생각합니다. 왜? 흥부는 착한 사람이고 주인공이니까 결국은 어찌되든 좋아질 거야. 걱정 마, 쫄지 마, 부활할 거야! 그런데 말입니다. 왜 자신들의 현실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요. 현대인들은 어째서 흥부의 인생역전이 그저 옛날이야기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즉 왜 우리는 흥부처럼 살려고 하지 않는 걸까요. 그렇게 살면 복이 온다고 믿지 못하기 때문이겠죠.

말이 좀 길어졌습니다만 여하튼 핵심은 이렇습니다. 친형님에게조차 기댈 수 없고(버림받고 매 맞고 배척당하고!), 여러 삶들의 원인이자 책임을 지고 있으며, 당장 생계형 알바조차 끊기고 막막한 흥부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타인의 ‘어려움(곤궁)’을 알아봐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흥부전의 핵심. 흥부의 흥부스러움은 거기에 있습니다. 자신의 극도로 곤궁한 상황에서도 다리 부러진 제비의 어려움을 알아봐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힘껏 도와줄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이 흥부에게 복을 가져다준 것이죠. 아니 그런 마음으로 사는데 어떻게 복이 오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말입니다.(이건 세미나 시간에, 존경하는 우주유일 고전평론가 곰샘의 가르침에서 배운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을 하늘이 가만 놔둘까요. 세상이 모르는 척 내버려 둘 수 있을까요. 고전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일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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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에 대처하는 양명의 태도는 삶을 대하는 어떤 기본기를 환기시킵니다. 양명의 질문은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 화살(유근에 의한 곤장형과 감옥살이)이 박힌 채 시시비비를 분석하고자 했다면 아마도 양명은 분명 두 번째 화살(유근의 자객 혹은 집요한 모략)을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무턱대고 도망칠 수도 없었습니다. 사실 양명은 먼 곳으로 달아나 은둔해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보와 행장은 그렇게 될 경우 이민족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다는 혐의를 받을 수 있고, 반역을 꾀한다는 모함을 받을 수 있으며, 그 책임은 아직 현직에 있던, 그리고 유근과 비타협적이었던 아버지(가문) 세계의 몰락과 직결될 수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즉 양명의 용장(귀주)행은 생각보다 복잡한 배경 아래 진행되었습니다. 여러 정황들과 경우의 수들을 놓고 양명은 유근으로부터의 도주를 감행했던 것입니다. 하여 연보에 나타난 설화적 혹은 마술적 리얼리즘을 방불케 하는 서사들은 그 낱낱의 사실 여부 너머에서 양명의 도주를 이해할 것을 요구합니다. 북경에서 용장까지. 곧장 가더라도 대략 2,000km가 넘는 아마득한 여정입니다. 하지만 양명은 고향 땅 소흥과 남경을 거쳐 귀양으로 들어갑니다. 북경에서 소흥까지가 대략 1,300여km이고 다시 남경까지 300km, 그리고 남경으로부터 용장까지가 또 대략 1,700여km쯤 됩니다. 얼추 계산해도 무려 3,300여km입니다.

양명의 귀양길은 굉장한 여정입니다. 보통 사람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아니 견뎌낼 수 없는 엄청난 체력이 필요한 여정일 것입니다. 양명 선생께선 용장에 가긴 가려고 했던 것일까요. 혹시 끝없이 미끄러져 지연되기를 원했던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그 길은 죽기 위한 길이 아니라 살기 위한 길이었고, 달아나기 위한 길이었습니다. 그 도주는 출구를 찾는 매순간의 실존적 결단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카프카의 학술원 원숭이 빨간 페터처럼 양명이 원한 것은 자유가 아니라 출구였습니다. 앞질러 덧붙이는 셈입니다만, 하여 앞으로 양명이 맞닥뜨리게 될 용장에서의 생활은 바로 그 생사(生死)의 문제를 뛰어넘어야 하는 것으로 다가옵니다. 한 마디로 구도(求道)의 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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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객설. 이 여정의 상징적 혹은 문학적인 면모에 관해서도 언급해보고 싶습니다. 어쩌면 양명이 자객을 피해 전당강에 뛰어들어야 했던 사건은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양명이 물에 빠져 떠내려갈 때 마침 그곳을 지나던 상선의 구조를 받는다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그 배가 다시 풍랑에 좌초되어 애초의 좌표가 아닌 복건으로 양명을 데려다주었다는 이야기도 도무지 평범하지가 않습니다. 밤새 수십 리의 산길을 도망쳐 하룻밤 유숙을 청한 절에서 스님들이 거절을 하는 것도 이상한데, 그것도 모자라 호랑이굴이 된 폐사(廢寺)로 양명을 유도하는 것도 기괴합니다. 급기야 다음날 스님들은 호랑이밥이 된 양명의 소지품을 챙기려 찾아오기까지 했다가 양명이 살아있는 것을 보고서는 비로소 양명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겨 자신들의 스승에게 인도합니다. 참으로 이상한 자비 수행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그 스승이란 분은 놀랍게도 20년 전에 양명이 만난 적이 있던 철주궁의 도인(도교 수련자)이었고, 더욱 놀라운 점은 그가 양명의 이제까지 겪은 일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앞에서 양명이 먼 곳으로 은둔하고자 했다고 언급했던 대목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수행자와 앞일을 논의하면서 양명이 밝힌 입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다시 주역의 명이(明夷)괘를 얻습니다. ‘명이’는 밝은 빛이 손상된 상태, 어둠에 빛이 감춰진 상황입니다. 하여 이러한 때에는 어려움을 알고 올바름(貞)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利艱貞). (*이 괘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다룰 기회가 있을 터라 자세한 설명을 건너뜁니다)

우리는 이미 양명의 전체 생애를 알고 있고, 그 시점에서 볼 때 귀주행 이후야말로 양명이 양명으로 불리게 되는 삶의 시작입니다. 용장은 양명에게 큰 깨달음이 일어난 곳이었고, 그것을 우리는 양명학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범상치 않은 준재로 태어나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펼쳐보기도 전에 중앙관료가 되었던 삶이 전반부 양명의 삶이라면, 이것은 큰 틀에서 아버지의 세계에 귀속했던 삶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육친으로서는 아버지 왕화가 밟아 나아갔던 관료의 세계였고, 사회적으로는 명나라 천자의 신민으로 포획되는 길이었으며, 학문적으로는 유학의 베이스인 주희(주자학)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귀주 용장행은 양명의 이 모든 지반으로부터의 외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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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문학적 혹은 상징적으로 읽을 때 이 귀양길의 여정은 몇 가지 분기점을 갖습니다. 황제가 거처하는 궁으로부터의 추방, 아버지와의 이별, 그리고 주희의 고향인 복건으로 표류했다 정처를 얻지 못하고 떠나오게 되는 여로까지. 물론 이런 독해는 그야말로 흥미를 위한 추측에 불과합니다. 귀양 생활은 문학 작품이 아니고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귀주입니다. 모든 상상의 바깥인 것입니다.

정덕 3년(1508) 봄, 양명은 1년여에 걸친 여정을 마치고 마침내 귀주성 용장에 도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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