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하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연암이 출셋길에서 완전히 손 턴 것은 삼십 대 중반. 그 길을 가지 않기 위해서 방황하기 시작한 것은 이십 대 중반. 십여 년 만에 연암은 학문과 글쓰기의 길이 출셋길(=조정에서 정치 참여) 말고 다른 길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삶의 방식, 다른 존재 방식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곳엔 ‘친구’가 있다!

친구라는 건 무엇일까? 우정은? 어떤 친구가 좋은 친구일까? 연구실에 와서부터 시작되었고 여전히 끝나지 않은 질문이다. ‘친구’라는 관계 형식에 대한 많은 말들, 많은 의미들을 들어왔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것도 체화하지 못한 것 같다. ‘우정의 달인’ 연암을 가지고 글을 쓰면서도 ‘친구’와 ‘우정’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쓸 수가 없었다.

그런데 몇 번 연암과 출세에 대한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주류를 향한 욕망에는 친구가 없다는 것을! 그러니 ‘비주류’와 ‘친구’는 필연이라는 것을!

이날 경부가 특히 많이 취하여 사언의 나귀를 거꾸로 타고 소나무 사이로 어지러이 달렸고, 일여의 무리는 좌우에서 소리치고 둘러싸서 웃고 즐겼으며, 무관과 혜보 또한 크게 취하여 너털웃음을 그칠 줄을 몰랐다. 가위 실컷 마시고 크게 취했다고 하겠으니 즐거움이 또한 극에 달했다.”

( 박지원, 『연암집』(상), 「도화동 시축발」, 돌베개, p336)

연암과 친구들은 이렇게 놀았다. 술 마시며 서로의 글을 읽기도 하고, 별별 세상 이야기로 밤을 새기도 하고. 달밤에 몰려다니며 산책하고, 한 명이 거문고를 뜯으면 한 명은 가야금으로 화답하고, 누군가는 노래를 하고, 누군가는 가사를 짓고, 같이 금강산 유람도 가고, 꽃구경도 가고… 위 글만 봐도 자기들끼리 무척 신난 게 보인다^^.

젊은 시절, 술 마시러 찾아온 무리들이 ‘벗을 사귀’려고 찾아온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각자의 당파로 끌어들이러 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연암은 분개했다. 그것은 “명예와 권세와 잇속” 때문에 ‘처세’한 것이지 ‘벗 사귐’이 아니다!

생각해보자, 연암과 사귀어서 이익을 얻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있다면 저 친구들처럼 신나게 놀 수 있을까? 술을 마시다가도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하나?’하는 생각이 문득 들 것이고, 연암이 자신에게 이익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초조해질 것이고, 그럼에도 억지로 웃고 있다가 이내 그 자리가 지겨워질 것이다.

이건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내가 내 잇속을 챙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득하다면 친구를 만들기는 어렵다. 내가 ‘뭐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해지면 다른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관계를 막는 것은 ‘주류를 향한 욕망’, 즉 (능력의 면에서나 돈, 명예, 권세의 면에서나) 더 커지고, 더 잘나고, 더 가지고 있는 ‘나’를 만들고 싶은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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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은 일찍이 이런 존재 방식보다 더 즐거운 존재 방식을 발견해낸 것이다. 출세하지 않아도, 돈이 많지 않아도, 잘나지 않아도, 서로의 친구로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삶은 충만해진다! “이 세상에 진실로 한 사람의 지기만 만나도 아쉬움이 없으리라”!

아직 ‘친구는 무엇이다’라고 포지티브하게 정의하진 못하겠다. 다만 비주류의 길에서 우정이 가능하고, 또 그렇게(비주류로) 살 수 있는 것은 친구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 친구를 만든다는 것은 아주 다르게 존재한다는 말이다. 우정의 길은 내가 나를 떠나는 만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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