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은 정 (강감찬 글쓰기학교)

사람들은 보통 걸리적거리는 사람이 여러 명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다른 사람 때문에 괴로워하고 그런 적은 별로 없다. 어떤 일이 있을 때 그냥 솔직하게 말하고 행동하니 비교적 자유로웠다. 누군가는 나를 무척 미워할 수도 있었을 텐데 미안하지만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다. 그런데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딱 한 명 있다. 시어머니? 아니다. 남편? 아니다. 이 두 사람은 내가 이긴다. 내가 이기지 못하는 단 한 사람, 바로 나의 딸이다.

그녀는 서울의 웬만한(?) 대학을 졸업한 지 어언 삼 년 반이 되었다. 졸업 후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다. 처음에는 공무원 준비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늘 점심때가 지나서야 일어나고 책상에 제대로 앉아있지 않았다. 언제나 침대에서 핸드폰하고 소파에서 핸드폰하고….. 키 162에 43키로 정도로 야위었다. 편식이 심하고 밖에 나가질 않으니 비타민 D도 최하수준이라 주사를 맞아야했다. 졸업 후에 스스로 뭘 하지 않으니 책도 권해보고 헬스클럽도 권해보고 했지만 전혀 움직이질 않는다. 2년 전에는 앞으로 2년간 시간을 주는데 그 이후에는 꼭 돈벌이를 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 날짜가 2020년 1월이다. 공부도 하지 않고 공무원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도둑 심보니 그냥 아무 알바나 하루에 4시간 이상씩 하라고 했다. 그런데도 전혀 일자리를 알아보는 기색이 없다. 평상시 그녀의 표정은 천진하다. 고민도 없는 것 같다. 그것이 나를 더 화나게 한다. 오직 침대와 핸드폰만이 그녀의 전부인 듯하다.

“사람은 적어도 이래야 돼”

“모든 법이 망령된 견해이니, 꿈과 같고 불꽃과 같으며 신기루와 같습니다. 모든 법이 분별심이니, 분별심에서 생긴 영상은 물에 비친 달과 같고, 거울에 비친 모습과 같습니다. 이처럼 일체법은 마음이 지은 것입니다.”

『낭송 금강경 외』, 신근영 풀어 읽음, 북드라망, 39쪽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큰 갈등 없이 살았다. 그러니까 내 기준이 분명했다는 얘기로 분별심이 남달리 강했다. 즉, 남이 나에게 안 좋은 소리를 해도 나는 맞게 행동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고, 내가 누군가의 말을 반대하거나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할 때도 내가 정한 기준에서 옳다는 생각이 들면 미련 없이 반대하고 거절했다.

특히 “사람은 적어도 이래야 돼!”라는 생각이 있었다. 즉, 뭐든지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크고, 그 다음으로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고, 공부도 좀 해야 하고, 운동도 적당히 해야 한다는 등등이 뒤를 잇는다. 나는 뭐든 열심히 하면 성취감이 좋았고, 사람을 만나면 사람마다 개성이 달라 재미있었고, 운동을 하면 더 건강해지는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딸에게도 늘 말했다. 뭐든 열심히 해야 한다. 꼭 돈벌이가 아니라도 좋다, 운동을 열심히 하든지, 공부를 열심히 하든지, 친구나 애인을 열심히 만나든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세 가지를 다 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 중 하나도 안 하고 있다. 실행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감이당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신청비는 물론 하루 일당으로 오만 원씩 쳐 주겠다고 제안을 해보았으나 전혀 미동도 없다. 내가 정한 기준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을 보면 속으로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남도 그러할 진데 내가 낳은 딸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 시쳇말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런데 모든 법이 망령된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모든 법은 분별심이고, 분별심은 꿈과 같고 불꽃과 같으며 신기루와 같다는 것이다. 이는 마음이 지은 것이라서 언제든 변하고 없어지고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놓고 나와 그녀를 생각해보았다. 그녀는 내성적이고 말이 없다. 그리고 사람 만나는 걸 무척 싫어하고 뭐든 귀찮아하는 성격이다. 나와는 딱 반대다. 그런 사람에게 내가 좋아하는 걸 계속 들이댔던 것이다. 물론 그녀가 나와 다른 건 예전부터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나처럼 사는 것이 편하고 유익하다는 생각에 계속 나의 생각을 밀고 나갔던 것이다. 그녀는 어떻게 살고 있지? 우선 돈을 무척 아낀다. 옷 같은 것도 별 관심이 없고 먹는 것도 조금 먹는다. 그래서 거의 생활비가 들지 않는다. 운동을 안 하지만 크게 아프진 않았다. 사람을 많이 만나진 않지만 친구 몇 명은 만나고 있다. 그녀가 이대로 산다면? 안 될 게 없지 않은가!

형상이 있는 모든 것이 허망하다

“……형상이 있는 모든 것이 허망하다. 만약 모든 형상이 원래 형상이 아님을 본다면, 이는 곧 여래를 보는 것이다.”

『낭송 금강경 외』, 신근영 풀어 읽음, 북드라망, 187쪽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간직해 온 기준이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질 줄은 몰랐다. 내 기준으로 그녀를 봤을 때는 아주 모자란 사람이었는데 부처님 말씀 한마디에 괜찮은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대로 봐줄만 한 사람으로 탈바꿈하다니… 나를 내려놓고 바라보니 비로소 그녀가 객관적으로 보였다. 늘 그녀를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마주하고 보니 내가 인식하고 있는 모든 것에 비상이 걸렸다. 형상이 있는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것이 이런 뜻이구나 싶었다.

그녀에게 불만이 쌓여있어서 말은 부드럽게 할지언정 표정은 굳어있었고, 새롭고 긍정적인 말은 거의 없고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는 식의 잔소리만 반복되었다. 내가 운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운이 없는 건 그녀였다.

기준이 확고한 나는 편하게 살았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만 편했지 남을 불편하게 했다. 누구든지, 어떤 성격의 사람이든지 내가 생각한 것처럼 살지 않으면 비난의 마음을 가졌으니 죄가 너무나 크다. 이제라도 내가 생각한 형상이 원래 형상이 아님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왜 그런 기준을 갖게 되었을까? 언제 어디서 그런 기준이 나를 홀리게 한 것일까? 그렇다한들 왜 나는 한 번도 나의 가치관을 재고해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을까…… 그런데 큰일났다. 지금껏 편하게 살았는데 이제부터 불편하게 살 것 같다.^^

모든 형상은 원래 형상이 아니다. 그러니 내가 무엇이 옳다고 분별심 내기를 두려워해야 한다. 확실한 기준이 있다가 사라지니 조금 혼란스럽다. 그런데 고미숙 선생님의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에서 신영복 선생님은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무심하게’ 보았다고 고미숙 선생님이 해석해 주셨다. ‘모든 형상이 원래 형상이 아니다’란 말씀에 공감한다면 ‘무심하게’라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이 말이 피부에 와 닿고 참 좋다. 혼란스러울 때마다 이 기준을 생각한다면 조금은 편하게 실행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대상을 대할 때마다 나를 ‘리셋’해야 할 것이다. 이 새로운 방식의 삶이 나를 변화시키길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말; 이 기준으로 본다면 그녀를 뭐라 하지 않고‘무심하게’보아 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래도 무언가 이상한 것 같아서 조원들에게 의논해보니, 집착해서 간섭하는 것이 문제지 자연의 이치에 맞게 하는 것은 괜찮다고 조언해 주었다. 다른 요소들은 괜찮은데 성인으로서 경제활동 안하고 부모에게 빌붙어 사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고 했다. 감정을 오히려 살짝 올려서 선포를 했다. “니 돈만 아깝니? 내 돈도 아깝다. 너만 일하기 싫으니? 나도 싫다. 이제부터는 야채를 먹어라, 햇볕을 봐라, 공부를 해라 등등을 말하지 않겠다. 아프면 니 카드로 병원비 쓰고… 생활비만 착실히 내라”고 했다. 말하고는 무척 시원했다. 월세를 한 번 받았다. 기분이 사뭇 좋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중단 없이 실천하리라. 두세 달 정도면 그녀는 나에게 내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 이후가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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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
Guest
소민

금강경와 선생님의 고민이 만난 유쾌한 글! 잘 읽었습니다^^ 공부를 처음할 때는 나처럼 살지 않는 다른 사람들이 이상해보였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내 안을 들여다보게되더라고요. 선생님의 시선도 외부에서 내부로 자연스럽게 옮겨간 것 같아요~

선생님과 그녀의 변화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