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란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雷天 大壯   ䷡

뇌천 대장

大壯 利貞. 대장 이정.

강함의 자라남은 올바름을 굳게 지키는 것이 이롭다.

初九, 壯于趾 征凶 有孚. 초구, 장우지 정흉 유부.

초구효는 발에서 강성한 것이니, 함부로 나아가면 틀림없이 흉하게 될 것이다.

九二, 貞 吉. 구이, 정길.

구이효는 올바름을 굳게 지켜 길하다.

九三, 小人用壯 君子用罔 貞厲 羝羊觸藩 羸其角. 구삼, 소인용장 군자용망 정려 저양촉번 이기각

구삼효는 소인이라면 강경하게 행동하고, 군자라면 무시한다. 올바름을 고집하면 위태로우니, 숫양이 울타리를 치받아서 그 뿔이 곤궁한 것이다.

九四, 貞 吉 悔亡 藩決不羸 壯于大輿之輹. 구사, 정 길 회망 번결불리 장우대여지복

구사효는 올바름을 굳게 지키면 길하여 후회가 없어지니, 울타리가 터져 곤궁하지 않으면 큰 수레의 바퀴살이 강성하다.

六五, 喪羊于易 无悔. 육오, 상양우이 무회.

양들의 강성함을 온화하게 대하여 잃게 하면 후회가 없다.

上六, 羝羊觸藩 不能退 不能遂 无攸利 艱則吉. 저양촉번 불능퇴 불능수 무유리 간즉길.

상육효는 숫양이 울타리를 치받아 물러날 수도 없고 나아갈 수도 없다. 이로운 것이 없으니, 어려움을 알면 길하다.

대장(大壯)괘는 둔(遯)괘 다음에 이어지는 괘이다. 둔괘가 음의 세력이 자라나고 군자는 물러나는 때였다면, 대장괘는 그 반대다. 양의 세력이 강성해져 바야흐로 과반을 넘어가니 대세는 정해졌다. 대장괘의 괘상을 보면 맨 아래의 초효부터 시작하여 사효까지 연달아 네 개의 양효가 치고 올라와 위의 두 음효를 밀어내고 있다. 아주 단순해서 다른 건 다 모르고 음효, 양효만 알아도 단박에 이해가 가는 그림이다. 하지만 우린 주역을 공부하는 사람답게, 여기에 괘상의 의미를 더하여 읽어보도록 하자.^^ 대장괘의 하체는 하늘이고 상체는 우레다. 우레가 하늘에 번쩍이는 형상이니 군자들의 굳센 기상이 온 천하에 울려 퍼지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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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세는 멈출래야 멈출 수 없고 꺽을래야 꺽을 수 없다. 이렇게 대장의 괘상을 보다보니 절로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발맞추어 나가자, 앞으로 가자. 어깨동무하면서 앞으로 가자~”라는 동요다. 이 노랫말처럼 대장의 시대에는 군자들이 어깨동무하면서 발맞추어 앞으로 나아간다. 이 얼마나 상쾌하고 기운 찬 모습인가!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주역은 이럴 때 절대 “가자!”를 외치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이럴 때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고 부추기지만 주역은 양이 다하면 음이 온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 나갈 때 더 달리라고 부추기는 대신, 세가 클 때 큰 소리 쳐보자고 달려드는 대신, “올바름을 굳게 지키는 것이 이롭다(大壯 利貞).”고 하는 것이다. 올바름을 지키려는 자세, 주역에서는 이를 ‘정(貞)’이라고 한다. 대장괘의 괘사에 이어 효사에서도 이 ‘정(貞)’은 두 번이나 강조된다. 한 번은 구이효에서, 나머지 한 번은 구사효에서다. 초구, 구이, 구삼, 구사가 모두 다 같은 군자들이지만, 길(吉)한 결과를 얻는 것은 올바름을 지킬 줄 아는 구이와 구사만이 가능하다. 왜일까? 대장의 강성한 기세가 바르게 쓰이려면 반드시 올바름을 지키려는 마음의 근본바탕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올바름이 없는 강성한 기세란 마치 질주하는 기관차에 조종사가 없는 꼴과 같다. 기차, 배, 비행기, 차, 우주선 등 평소 인간의 삶을 이롭게 하던 사물이 브레이크가 고장나거나 조종사를 잃는 순간 대량사고를 유발하는 위험한 폭탄으로 돌변하는 상황은 액션영화의 단골 소재가 아니었던가. 그러니 잘 나갈 때 바름을 지키라는 것은 그저 잘난 척하지 말고 착하게, 겸손하게 살라는 좋은 소리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돌진하는 모든 것들에는 그 힘의 방향과 속도에 대한 제어가 필요하다. 제어력 없는 힘, 그것은 다른 이들은 물론, 그 힘을 가진 자부터 파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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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괘는 이 돌진의 파괴력을 숫양에 비유하고 있다. 양이라는 동물은 아마도 내닫기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러다 앞에 뭐가 걸리면 바로 들이 받는다. 같은 양이라도 숫양은 더 양기가 강해서 더 강하고 더 빠르다. 게다가 뿔도 발달해 있다. 정이천은 “이빨을 가진 것은 물고, 뿔이 있는 것은 치받고, 발굽이 있는 것은 찬다.”라며 숫양은 치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대장괘에서 숫양을 취했다고 설명한다. 힘이 있으면 그 힘을 쓰고 싶고, 뿔이 있으면 그 뿔을 쓰고 싶은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그러다 보면 그 힘과 뿔 때문에 스스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것 또한 자연의 이치다. 나는 말하기를 좋아하는데, 나 같은 사람은 말이 힘이자 화근이 되고 주먹자랑을 하는 사람은 그 주먹이 힘이자 화근이 될 것이다. 이렇게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강점이 있고 이로 인해 곡절을 겪는다. 그중에서도 그 힘의 정도가 특출나게 센 사람이 있다. 크고 강한 뿔을 지닌 숫양 같은 이다. 이 숫양은 뭐든 앞에 걸리는 것은 치받으려 한다.

대장괘의 구사효는 양의 세력 중 가장 지위가 높고 여타의 숫양을 이끌고 있으니 숫양 중에서도 가장 센 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초구효는 구사효에게 들이댄다. 원래 초효와 사효는 음양이 다르면 서로 짝이 되는 사이인데 대장괘는 치받으려는 힘이 워낙 강한 때이므로 같은 양인 구사효를 치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구사효는 초구의 도발을 포용한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양효인 구사효가 음의 자리에 있어서 조화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바름을 지킬 수 있다. 구사의 효사는 이렇다. “올바름을 굳게 지키면 길하여 후회가 없어지니, 울타리가 터져 곤궁하지 않으며 큰 수레의 바퀴살이 강성하다(九四 貞 吉 悔亡 藩決不羸 壯于大輿之輹).” 자기 힘만 믿고 나아가면 숫양의 뿔이 덤불에 얽히듯 곤궁해지지만, 구사효는 치받는 후배의 치기는 수용하고 대신 그 힘으로 울타리를 여는데 쓴다. 자신에게도 이롭고 자신을 따르는 무리에게도 이로운 일이다. 이런 존재는 자기 뿔을 쓰려고 안달난 숫양이 아니라, 다른 존재를 자기 몸에 싣고 묵직하게 하지만 굳건하게 나아가는 큰 수레가 된다. 수레는 울타리에 걸리는 대신 울타리를 터서 길을 내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 모두는 힘을 원한다. 그러나 대장괘는 힘의 두 속성을 보여준다. 무조건 치받는 숫양, 자신뿐 아니라 모두를 위한 길을 내는 수레. 우리가 원하는 힘은 어느 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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