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영(강감찬 글쓰기학교)

얼마 전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했다. 일하는 스타일이 다른 상사와의 갈등, 25년을 쉬지 않고 달려온 피로감, 더 늦기 전에 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은 마음 등이 이유였다. 5년 전 나도 아이들 대입 마치고 나서 할 일 끝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한편으로는 회의가 들었다. 이 끝도 없는 욕망의 길에 올라서서 계속 앞으로 달려가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 말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저 사람도 쉬고 싶겠구나, 스스로의 삶에 대해 다시 질문하고 싶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1년 정도의 휴직 겸 휴식을 제안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반응이 시큰둥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이유를 물어보니 그건 나의 본심이 아니란다. 나의 제안이 사심으로 느껴졌다는 뜻이다.

사심(私心), 『전습록』에서 숱하게 마주치게 되는, 그러면서도 단연 흥미로운 개념. 나는 이 알 듯 모를 듯한 정체불명의 존재가 늘 궁금했다. 도대체 사심이 무엇인지, 사심 없이 사건을 대한다는 것은 어떤 건지, 특히 이번 사건 속에서 사심은 나에게 어떻게 작동했는지 알아보고 싶다. 이름 하여 ‘사심 잡기 프로젝트’.

사심은 어디에?

남편은 몇 년 전에도 비슷한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그때의 난 위협, 약자 코스프레, 응원과 격려 혹은 달래기 등의 방법을 총동원하여 힘들다는 남편을 계속 일하게 부추겼다. 아직 아이들 학비며 지출할 곳이 많아 실직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사사롭기는커녕 1년 동안 생계 걱정하지 말고 맘 편히 쉬면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걸 해보라는 말까지 했다. 예전 그 때에 비하면 아주 기특한 대응이 아닌가? 하지만 상대방이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디엔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문제의 원인을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구체적인 계획에 대한 설명 없이 대충 말로만 때웠으니 맘에 없는 소리 한다는 말 들을만했다. 그래서 집 문제, 생활비, 아이들 독립, 남편의 실직에 대한 나의 바뀐 생각 등에 대해 차근차근 말해주었다. 이번에는 나의 진심을 받아들이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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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달여의 시간이 흘렀고,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남편의 입장에서도 일을 갑자기 그만두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일단 그때는 절대 안 됐는데 지금은 그가 원한다면 OK다. 상황도 바뀌었다. 아이들이 자라 경제적으로 독립한 상태이고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이런 일이 주변에서 종종 일어나서인지 면역이 생긴 것도 같다. 생장소멸(生長消滅)하는 자연의 이치도 이해했다. 어찌 우리 집만 예외이기를 바라겠는가. 성장하고 늘릴 때가 있으면 멈추고 덜어낼 때도 있기 마련이다. 집안 분위기를 우울하게 하거나 험악하게 만들지도 않았다. 평소의 평온한 생활을 변함없이 유지했다. 친구들과도 상의했다. 숨길 일도 창피할 일도 아니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사건의 추이를 하나씩 되짚어보니 예상외로 선방하고 있었다. 사심은 어디에?

‘사심’과 ‘양지’

나는 이번 사건을 대하면서 내가 옳다고 판단한 것들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피하고 싶은 사건이 아니라 내가 하는 공부의 구체적인 실천의 장으로 삼고 싶었다. 애초에 ‘사심’으로 주제를 잡은 것은 치양지(致良知)의 ‘양지’는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심을 찾아내어 제거하는 것으로 시작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애초에 전제가 잘못되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어느새 ‘양지’와 ‘사심’을 분리했던 것이다. 양지를 실천하는 것 따로, 사심을 제거하는 것 따로. 나의 바름을 실천하는 것이 치양지라면 그건 사심을 없애는 것과 다르지 않다.

원하는 대로 사건을 끌고 가려는 의지, 반드시 이러해야 한다는 고집, 지금까지 해오던 익숙한 방식으로 감정 쓰기…이런 마음과 싸우는 것 자체가 치양지였다. 지금 현재에 머무르지 못하고 자꾸 미래로 내달리는 마음도 보았다. 그건 불안과 두려움을 만들어 현재를 계속 결핍으로 느끼게 하고, 사건 자체보다는 ‘좋은/나쁜’이라는 선입견을 만들어 사건을 대하게 한다. ‘좋고 나쁨’이란 따로 있지 않다. 모든 사건을 배움의 측면에서 보면 위계가 없어지는데 생각의 습관은 잠시만 방심하면 그 틈을 파고든다.

더 무서운 건 감정을 쓰는 습관이었다. 늘 해오던 방식대로 감정은 어느새 움직인다. 우울한 감정이나 자기연민 같은. 이런 감정들은 특별한 이유나 인과관계보다는 그저 습관적인 반응일 경우가 많았다. 가만히 놔두면 마음은 자주 부정적이고 나를 괴롭히는 쪽으로 움직이곤 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 내게 그런 식으로 사건을 대하는 습관이 있다는 걸 알아채고, 그것이 문제해결이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제대로’ 알면 된다. 처음에 그런 감정이 찾아올 때 알아차리고 빠지지 않는 것, 몇 번 반복되면 어느 순간 다시 왔을 때 똑같이 반응하는 자신이 싫어진다. 더 이상 그런 방식으로 사건을 대하고 싶지 않다는 양지가 나를 일깨우기 때문이다. 양지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며, 옳음을 좋아하고 그름을 ‘싫어하는’ 마음이다.

‘왜 남편만 돈을 벌어야 하나, 이제 역할을 바꿔 네가 벌면 되지. 언제까지 경제적으로 의존할 거야? 용돈 정도는 너도 벌어’라는 생각도 든다. 경제적으로 계속 의존하고 기대는 마음 또한 사심일 것이다. 중요한 건 모든 일을 다 해결하는 데 있지 않다. 치양지는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나의 양지를 다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정직하게 시작하면 된다. 당장은 그러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나의 앎이 지금 가진 것에서 아끼고 줄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게 한다. 앎이 점점 커지면 나의 삶도 거기에 맞춰 변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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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성인을 품고 있다

  사람은 가슴에 각자의 성인을 품고 있다. 다만 스스로를 믿지 못해 모두 묻어 버리고 있을 뿐이다.

양지良知·양능良能한 마음은 제 속에 있는 것이어서 스스로 잃어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구름이 태양을 가릴 수는 있어도, 태양 자체를 사라지게 할 수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낭송 전습록』, 왕양명 지음, 문성환 풀어 엮음, 북드라망, 22쪽/24쪽)

누구나 품고 있다는 성인,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양지와 양능. 애써 부정할 필요도 겸손할 필요도 없다. 성인과 양지에 대한 믿음이 양명을 이해하고 그의 철학을 실천하는 첫걸음이다. 내 안의 성인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제자처럼 ‘내가 감히 어떻게 성인을!’이라는 마음은 계속 사심을 좇아 살겠다는 말의 다름 아니다.

‘치양지(致良知)는 언감생심, 사심(私心)부터 제거하자’는 겸손(?)한 마음으로 시작한 프로젝트. 하지만 나의 양지는 순간순간 내가 가야 할 길과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었다. 그건 그대로 사심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매 순간 사건을 통해 양지를 실천하기 혹은 사심을 제거하기. 이번 사건을 통해서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단번에 되는 것도 한번 했다고 계속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품고 있는 성인에 대한 믿음, 이 점에 있어서만큼은 결코 물러서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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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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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

생각의 습관, 마음의 습관이라는 말이 확 와닿아요. 내가 당장 돈을 벌러 가는게 아니고, 아끼고 줄이는 것부터 해야겠다는 깨달음! 행하지 않는 건 모르는 것이라고 양명 선생이 말했듯, 소소한 것부터 시작하려는 샘ㅎㅎ 이미 사심을 제거하고 양지에 이른 듯 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