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남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風天 小畜   ䷈

풍천소축

小畜, 亨, 密雲不雨, 自我西郊. 소축, 형, 밀운불우, 자아서교.

작은 것으로 길들이는 것은 형통하니, 구름이 빽빽이 모였지만,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은 내가 서쪽 교외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初九, 復, 自道, 何其咎? 吉. 초구, 복, 자도, 하기구? 길.

초구효는 회복함이 스스로의 올바른 도로 행한 것이니,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길하다.

九二, 牽復, 吉. 구이, 견복, 길.

구이효는 서로 이끌어 회복함이니 길하다.

九三, 輿說輻, 夫妻反目. 구삼, 여탈복, 부처반목.

구삼효는 수레에 바퀴살이 빠진 것이니, 남편과 부인이 반목한다.

六四, 有孚, 血去惕出, 无咎. 육사, 유부, 혈거척출, 무구.

육사효는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하면 피해를 없애고 두려움에서 벗어나, 허물이 없다.

九五, 有孚, 攣如, 富以其鄰. 구오, 유부, 연여, 부이기린.

구오효는 진정한 믿음이 있다. 사람들을 이끌어 부자가 이웃들을 도와준다.

上九, 旣雨旣處, 尙德載, 婦貞厲. 月幾望, 君子征凶. 상구, 기우기처, 상덕재, 부정려. 월기망, 군자정흉.

상구효는 비가 내려 조화를 이루어 제자리에 멈춘 것으로 덕을 숭상하여 오래도록 쌓인 것이니, 부인이 올바름을 고집하면 위태롭다.

무모한 일에 도전하는 어리석음을 얘기할 때 흔히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을 언급한다. 약한 것이 강한 것에 힘으로 맞서면 백전백패다. 그러나 부드럽고 약하기 그지없는 물은 바위를 뚫을 수 있다. 물은 계란처럼 힘으로 대응하지 않기에 가능하다. 대신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인문학 공부를 초반에 시작할 때, 나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 무모하게 공부에 덤볐던 것 같다. ‘시간을 썰어가면서’ 근면하게 공부하면 책 읽기나 글쓰기도 그에 비례해 빨리 능숙해질 것이라는 착각이 있었다. 좌절의 경험을 거듭하면서 작년에는 약간의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연구실을 오픈해서 이웃 주민들과 나누고 순환하는 공부 재미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공부는 바위를 뚫었던 물처럼 끈질기고 겸손하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그렇게 지속적으로 실천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작은 성취 앞에 우쭐해하다 즉시 열등감에 빠져 괴로워하기 일쑤였다. 주역의 소축괘(小畜卦)는 우리가 조그만 성공 후 빠지게 되는 교만함을 일깨워주는 괘라 관심이 갔다.

plant-3585490_1920

소축(小畜)은 말 그대로 작은 규모의 축적이다. 대축(大畜)이 축적의 극에 이르러 모두 흩어버리는 큰 도를 얘기하고 있다면, 소축은 우리가 일상에서 성취하는 소소한 성과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소축괘의 구성은 하나의 음과 다섯 양들로 이루어져 있다. 「단전」에는 이렇게 풀고 있다. “柔得位而上下應之, 曰小畜. 유득위이상하응지, 왈소축. 유(柔)가 마땅한 자리를 얻고 위아래가 서로 응하니 소축이라고 했다.” 소축괘에서 유일한 음효인 육사효가 바른 자리를 얻었고 위아래의 모든 양효들이 그에 호응하므로 약간의 축적이 생겼다는 말이다. 음과 양이 서로 호응한다는 말은 두 기운이 소통해 비를 뿌리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음의 역량이 양에 비해 작고 양과 조화를 이루는데 작용도 미미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홀로 음효인 육사효가 양기를 충분히 축적하지 못해 비를 이루지 못했기에 소축의 괘사가 ‘密雲不雨 自我西郊(밀운불우 자아서교)’다. 검은 구름이 빽빽하게 모여 응결만 한 상태. 하늘 위에서 바람이 불고 있지만, 천둥이 치면서 시원스레 비가 되어 내리려면 때를 기다려야 한다. 이럴 땐 육사효가 하괘인 건괘(乾卦)의 강건한 양들과 제대로 만나는 것이 관건이다. 즉 육사효가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 양의 기운을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그들의 도움을 얻어낼 수 있을까? 다행스럽게 상괘인 손괘(巽卦)는 유순하고 공손하다. 그래서 유순한 도리로 하괘인 건괘(乾卦)에게 다가가야 한다. 정이천은 이것을 ‘작은 것인 음으로 큰 것인 양을 길들여 키운다’고 했다. 다시 말하자면 소축의 시기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역량이 부족하지만 힘을 빼고 유순한 방식으로 강한 상대를 감화시켜 그들의 도움으로 능력을 키워가는 때다. 글쓰기 하나만 생각해도 도반들의 코멘트가 얼마나 소중한지 절감한다. 도반들의 코멘트를 받아들여 수정한 글은 이전의 내 글이 아니다. 협소했던 나의 생각을 열어주고 나의 현재 상황을 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도반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겸손함이 바로 나를 성장하게 해주는 원리인 것이다. 성취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비결을 나는 육사효에서 찾았다.

“有孚, 血去惕出, 无咎. 유부, 혈거척출, 무구. 육사효는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하면 피해를 없애고 두려움에서 벗어나, 허물이 없다.” 구오효는 군주의 자리에 있고 네 양효들을 이끌고 있다. 육사효가 군주를 보좌하는 임무를 맡았지만, 자칫 피(血)를 볼 수 있는 위험천만한 자리다. 피가 걷히고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면(血去惕出) 유순하게 강건함을 따르는 방식으로 그들의 마음을 천천히 얻어야 한다. 서두르거나 조급하게 힘으로 밀어붙이면 의심받기 십상이다. 만약 육사효가 ‘진실한 정성(有孚)’의 마음을 내지 않는다면 그들을 감화시킬 수 없다. 소소한 성과라 하더라도 성취를 이루는 과정은 이토록 치열하고 어렵다.

hand-4806608_1920

작년 봄, 떨리는 마음으로 연구실을 처음 오픈해 홍보하고 사람들을 모아 세미나를 했던 과정들을 떠올려보면 절대 내 힘만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도움을 받았을 때가 많았다. 연구실에서 만나게 되는 소중한 공부 인연들. 경험 부족에서 오는 미숙함을 일깨워주는 도반들의 충고나 든든한 정서적 지지. 곳곳에 포진해있는 공부 도반들의 이런 조력이 없었다면 내가 어찌 작은 성취를 이룰 수 있었을까? 공부를 통해 변화하고 성숙해지겠다는 진실한 마음(有孚)을 내자, 그것을 알고 호응해준 공부 도반들의 협력으로 가능했다.

바위를 뚫었던 물이 위대하다고 보는 이유는 조그만 성취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흐르고 흐름만으로 이뤄낸 결과다. 우리 인생에서 혹여 작은 성취가 찾아온다 하더라도, 그 성취는 혼자 힘으로 절대 이뤄지지 않았음을 기억하자. 그러니 내가 이뤘다고 교만함에 빠질 까닭도 없다. 오직 겸손함으로 갈 뿐. 이 사실을 잊는 순간, 우리는 피를 부르고 두려움이 엄습해오는 자리에 놓이고 말리라.

댓글

ava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