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연(강감찬 글쓰기학교)

나에게는 저절로 뻗쳐나오는 기운이 있다. 과도한 보살핌의 기운. 집에서는 아이에게, 직장에서는 학생들에게 사용한다. 매년 그 대상은 변경되는데 올해의 타겟은 등교거부, 학교생활 부적응 학생이다. 학기 초 배정명단에서 그 학생의 이름을 발견하고 나는 학생에 대한 온갖 정보를 수합한 후, 습성을 나름 파악해서 졸업시키겠다는 신념으로 무한애정을 쏟기 시작했다. 모닝콜을 자처하고, 부모님과의 상호 연대 속에 빈틈을 주지 않고, 눈치작전을 통해 고등학교를 합격시켰다. 그리고 난 만족했다. ‘이만하면 훌륭한 교사이지 않는가!’하며 자만하고 있었다. 그리고 학기말, 이제 학생은 약간의 변화만 보여주면 된다. 고등학교 합격에 대한 감사 인사치례는 필요 없다. 학교에 잘 오고, 학교생활에 약간의 즐거움만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학생은 그러지 않았다. 교칙에 위배되는 핸드폰을 사용했고 나는 그 벌로 핸드폰을 하루 압수했다. 학생은 그 하루를 못 참고 내 서랍장을 뒤져 핸드폰을 훔쳐?간 것이다. 그 사실을 안 순간, 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1년 동안 애썼던 모든 노력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스트레스로 과호흡이 왔고 손과 다리에 마비가 와 119에 실려갔다. 생애 처음으로 응급실을 간 것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어떻게 해서 나는 나의 몸을 제어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를 만들었을까?

보살핌의 무한사격

너는 덕이 충실하고 성실하지만, 아직 다른 사람의 기분을 잘 알지 못한다. 명분을 다투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난폭한 사람 앞에서 인의(仁義)와 법도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 사람의 악덕을 드러내 자신의 미덕을 과시하려는 데에 불과하다. 이런 사람은 재앙을 부르는 사람이다. 남에게 재앙을 끼치면 반대로 남도 너에게 재앙을 끼친다.”

(장자 지음. 낭송 장자, 이희경 풀어 읽음, 북드라망, 43쪽)

위왕의 전횡에 분개하여 위나라로 떠나려는 안회와 그것을 막는 공자의 대화이다. 안회는 현자(賢者)이자 호학자(好學者)로서 덕행(德行)이 뛰어난 공자의 애제자이다. 안회는 고통받는 백성을 불쌍히 여겨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려고 한다. 허나 공자는 안회가 위왕에게 떠나는 것을 막는다. 안회 정도면 흔들림없이 훌륭하게 위왕을 교화시킬 것 같은데도 말이다. 그 이유로, 안회는 명분과 지식에 갇혀 도가 번잡한 상태라는 것이다. 안회는 사람의 기분을 잘 알지 못하고, 그의 훌륭한 인격은 오히려 인의와 법도를 강조하여 적반하장격으로 화를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글은 장자가 안회와 공자의 일화를 통해 자신의 뜻과 생각을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글이다. 이 글을 통해 현재 나의 모습을 본다.

안회의 호학과 인품은 감히 내가 따라갈 수도 없다. 허나 누군가를 가르쳐 변화를 시켜야 한다는 명분에 갇혀 있음은 같다. 그런데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자기 안에 도를 갖추어야 한다. 도를 갖추면 여러 마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불안하지 않으며 일관된 가르침이 생긴다. 허나 안회는 불쌍한 백성을 위해 위왕을 변화시켜야한다는 명분으로, 그의 잘잘못을 시시비비하며 가르치려고 한다. 자신의 명분과 지식을 강조할 뿐, 상황에 대한 이해와 상대의 기분과 감정을 고려하지 못한다. 명분과 성과를 중시하다보니 약간의 변화에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과 생각이 이리 저리 흔들린다. 그 점에서 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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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부끄럽게도 단 한 번도 그 학생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어본 적이 없다. 잘못된 행동에 대한 훈계와 지시만이 있었다. 왜 등교를 거부하며 학교생활을 거부하는지를 그 학생에게 들어본 적은 없고, 그저 부모님과 전 담임과 과거에 경험한 그러한 학생들에 대한 선입견으로 짐작만 할 뿐이다. 그 학생을 이해하려는 만남은 없었다. 다른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별 설계도를 그려놓고, ‘헌신적’으로 그 설계도대로 이끈다. 그리고 내가 기대하는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문제는 학생과 함께 그려야할 설계도를 나 혼자 그렸다는 것이다. 전지전능한 신도 아닌 일개 사람이 소우주인 인간의 설계도를 그린 것이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보살핌을 무한사격하고, 결과를 기대한다. 나는 그 설계도를 수정할 유연성도 부족하고 방향성을 정하기에도 한계가 있다. 중심 없이 협소한 명분만 세워놓고 강요하면서 그대로 행하지 않으면 분노하며 학생들을 대하니 매순간이 좌충우돌이고, 감정이 평온하지 않는 상태이다.

그냥 그대로의 흐름에 맡겨라

이제 조금은 나를 알겠다. 나는 과한 보살핌의 기운으로, 어떤 행위이든 의미 부여를 하며 명분을 세우기를 즐겨한다. 뭐든 애쓰면서 행하고 성급한 성과를 기대한다. 사태의 흐름을 파악하고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기보다는 여타에 다른 정보를 차단한 채, 내가 정한 일만 해내면 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나도 힘들고 관계하는 이들 또한 불편하게 만든다. 이에 공자의 입을 통해 자신의 도를 전하는 장자의 마음 재계 방법을 나에게 적용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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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을 들어보렴. 위나라의 울타리에 들어가 놀더라도 명분 따위에 흔들리지 말아라. 들어주거든 말을 하고 들어주지 않거든 그쳐라. 문을 세우지도 말고 담을 쌓지도 말며, 마음을 한결같게 하여 그냥 그대로의 흐름에 맡겨라. 이게 최선이다” 

(같은 책, 50쪽)

“학교 현장에서 들어가 놀더라도 너만을 드러내려는 협소한 명분와 실리에 집착하지 말아라. 명분에 얽매이면 강요하려들고 학생들을 억압하는 거야. 우선 마음을 텅(虛)비워봐. 그리고 바라보렴. 학생들이 스스로 노닐 수 있도록 도와주렴. 너무 애쓰지 않아도 학생들은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아갈 거야. 상황의 흐름과 상대의 기분을 살피어 들어주거든 말을 하고, 들어주지 않거든 잠시 놓아주렴.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 그냥 그대로의 흐름에 맡겨라. 그게 최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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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시간이다. 학기 말이라 전달사항이 산더미이다. 지도할 사항도 만만치 않다. 화장, 복장, 지각 등 훈계를 늘어놓으려다가 잠시 학생들을 바라본다. 분위기상 훈계의 말을 시작하면, 잔소리로 생각하고 중요한 전달사항조차도 듣지 않을 것 같다. 지난 며칠 힘들었던 상황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숨 고르기를 한다. 학생들 한 명 한 명 바라보며 전달 사항을 간략하게 말한다. 그리고 웃으며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내라는 말로 가볍게 조회시간을 끝낸다. 평상시와 다른 나의 태도에 학생들이 당황해 한다. 그 표정이 귀엽다. 훈계는 종례시간에 분위기를 봐가며 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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