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정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澤風大過   

大過 棟 橈 利有攸往 亨. 대과 동 요 이유유왕 형.

큰 것의 과도함이란 들보기둥이 휘어진 것이니, 나아갈 바가 있는 것이 이롭고, 형통하다.

初六 藉用白茅 无咎. 초육 자용백모 무구

초육효는 흰 띠 깔개를 사용하니, 허물이 없다.

九二 枯楊 生稊 老夫 得其女妻 无不利. 구이 고양 생제 노부 득기여처 무불리

구이효는 마른 버드나무에 새로운 뿌리가 생긴다. 늙은 남자가 젊은 아내를 얻는 것이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

九三 棟 橈 凶. 구삼 동 요 흉

구삼효는 들보기둥이 휘어지는 것이니 흉하다.

九四 棟隆 吉 有它 吝 구사 동륭 길 유타 린

구사효는 들보기둥이 높아지는 것이니 길하지만, 다른 마음을 가지면 부끄럽다.

九五 枯楊 生華 老婦 得其士夫 无咎无譽. 구오 고양 생화 노부 득기사부 무구무예

구오효는 마른 버드나무가 꽃을 피우며, 늙은 부인이 젊은 남자를 얻는 것이니, 허물도 없지만 영예도 없다.

上六 過涉滅頂 凶 无咎. 상육 과섭멸정 흉 무구

상육효는 과도하게 건너다가 이마까지 빠져 흉하니, 탓할 곳이 없다.

과유불급(過猶不及). ‘과한 것은 부족함만 못하다.’ 중용(中庸)의 도를 강조한 고사성어로 우리가 하나의 명제처럼 받아들이는 말이다. 헌데, 주역의 택풍대과(澤風大過)괘에서는 과도함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과도함을 행하는 게 형통하다고까지 말한다. 어떤 이치에서 비롯된 해석일까? 우선 ‘대과’라는 단어는 ‘큰 것의 지나침’을 의미한다. ‘큰 것의 지나침’이란 성인과 현자가 행하는 과도함이다. “성인의 지나침은 ‘공적인 사업(功業)’에 해당하는 일을 과도하게 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로 도올 선생은 계사전 풀이에서 사업을 “변하고 통하는 자연의 원리를 인간 세상에 시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연의 원리란 스스로 균형을 맞추며 조절해나가는 능력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자연은 어떤 개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 우연의 법칙처럼 찾아오는 이상 기후나 질병을 통해 그 수를 조정한다. 성인도 그런 자연을 본받아 한쪽으로 지나치게 힘이 쏠려 본말이 흔들리는 위기가 오면 그 순간을 벗어날 방편으로 ‘과도함’을 행한다는 논리이다.

본래 성인이나 현자는 사사로운 일에 마음을 쓰지 않고 정도를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않으니 그들이 과도하게 행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본 것이다. 결국 “잘못을 바로잡을 때는 조금 과도하게 한 뒤에야 중도에 이를 수 있으니 이러한 과도함은 곧 중도를 얻으려는 작용.”이라는 말이다. 대과 괘를 공부하면서 평소 사주를 봐도 별자리를 해석해도 한쪽으로 치우쳐서 기운을 쓴다는 나에게 지침이 될만한 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대과 괘의 구사효를 중심으로 내가 과하게 쓰는 기운은 무엇이고 그것을 조절해가는 과정에서 어떤 점을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지 알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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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괘 상을 살펴보면 아래에는 나무에 해당하는 풍괘(風卦)가, 위에는 연못을 상징하는 택괘(澤卦)가 있다. 이는 나무가 물에 푹 잠겨 곤경에 처한 모습이다. ‘택멸목(澤滅木)’. 존재를 촉촉하게 길러내야 할 물이 지나쳐 결국 그 대상을 함몰시킨 상황. 아주 흉한 형국이 아닐 수 없다. 몇 년 전 우리 가족도 이런 경우를 맞닥뜨린 적이 있었다. 가족들은 사랑이란 명목으로 과한 개입과 관심을 쏟는 나를 무척 힘들어했고 그들의 그런 반응에 나 역시 상처를 받았던 것. 그때는 그게 가족을 위한 사랑이고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자기들을 위해 어떻게 했는데’라는 원망과 억울함이 컸다.

감이당에서 공부를 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가족’이라는 환상에 의미를 부여하며 그걸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애면글면했는지를. 그것이 틀렸다거나 잘못된 일이라고 얘기하는 건 아니다. 가족이 서로를 돕고 지원하는 건 인지상정. 문제는 너무 과했기 때문. 그리고 거기엔 남편과 자식을 통해 좋은 아내, 착한 며느리, 현명한 엄마로 인정받고 싶다는 나의 삿된 욕망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과도한 사심으로 고군분투하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 목을 맨 결과 아이는 스트레스로 병이 나고 나도 과로로 쓰러지는 지경이 됐다. 정말 정수리가 물에 잠기고 집의 들보 기둥이 휘어지는 것과 같은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던 것. 서로를 생기 있도록 돕고 윤택하게 살리기는커녕 시들시들하게 만들어 위기에 빠트린 꼴이 된 것이다. 바로 이럴 때 필요한 극약처방이 ‘과도함’.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욕망의 벡터를 바꿔야 한다. 그것도 과도하게. 그럼 무조건 다른 쪽으로 막 밀어붙이면서 힘을 쓰기만 하면 되는 건가?

구사효에서는 과도함을 써서 조절할 때 경계해야 할 부분에 대해 충고한다. “들보 기둥이 높아지는 것이니 길하지만, 다른 마음을 가지면 부끄럽다.” (九四. 棟隆 吉 有它 吝 구사 동륭 길 유타 린) 아래로 심하게 휘어져 있던 기둥을 높여 수평을 취하는 것이니 길할 수밖에. 헌데 다른 마음을 가지면 부끄럽다(有它 吝)는 건 어떤 의미일까? 구사효는 양강한 자이지만 유한 위치에 자리하여 유연한 태도로 일을 처리해나가는 현명하고 책임감이 강한 존재이다. 정이천은 “구사효에서 ‘높아진다.’라는 말은 아래로 휘어지지 않는 뜻을 취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에 대해 풀었다. 이 말은 과도함으로 위기를 혁신할 때 시의적절한 융통성을 갖되, 상황을 변화시키겠다는 중심은 강건하게 지켜가야 한다는 뜻이다. 무조건 힘을 쓰는 것보다 늘 경계하는 마음으로 균형을 맞춰가는 운용의 묘를 발휘하라는 것. 헌데, 이때 아래에 있는 음(陰)한 존재인 초육효와 만나는 건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구사효가 아래로 내려가 초육효에 호응하는 것은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버리고 다른 마음 즉, 사심을 품는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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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내가 몰입했던 배치를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아내라면, 엄마라면 가족들 부지런히 챙기고 잘 돌봐야지.”라는 주변의 구태의연한 지적들. 이기적인 며느리, 아내, 엄마라는 꼬리표에 대한 자의식까지. 이런 사사로운 생각에 얽매이면 “정수리가 물에 잠기는 것(過涉滅頂)”과 같은 위태로움으로 돌아가는 건 한순간이기 때문이다. 구사효의 「상전」에서도 들보 기둥을 높여 균형을 잡을 때 중요한 것은 아래의 뜻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이 비난하지만 비난을 개의치 않고 홀로 서서 두려워하지 않는다. 온 세상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는다. 이러한 뒤에야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다.”라는 대과 괘의 가르침처럼 사회적 통념에 맞설 수 있는 용기야말로 과도함이 필요한 때에 갖춰야 할 덕목이고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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