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영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연암은 술을 잘 마셨다. 더불어 술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많이 남아있다. 열하로 가는 길에 들린 주점에서 기선 제압한답시고 술통 한 사발을 통째로 마시고는 후다닥 나오는가 하면, 개성에 살적에는 하룻밤에 술자리를 두 번이나 가졌는데도 취하기는커녕 50잔이나 마셔서 마을에 전설처럼 두고두고 회자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연암의 둘째 아들 박종채에 따르면 아버지는 젊었을 적부터 벗들과 글 짓고 술 마시며 노는 일이 꽤 있었다고 한다. 연암의 글 「취하여 운종교를 거닌 기록」만 봐도 보름날 저녁 친구들이 연암의 집에 방문하여 함께 술을 마시고 걷는데, 유득공이 한밤중에 거위 목을 잡아 돌리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술에 취한 이덕무가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오’라는 종류의 개를 ‘호백’이라 부르며 꽤 독특하게 논 이력들도 보인다.

full-moon-4622324_640

세간 사람들은 이렇게 연암이 벗들과 술 마시고 노는 모습을 보고 번화함을 좋아하고 몸단속하기를 싫어한다고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술을 자주 즐긴 연암은 술에 대한 경계 또한 놓치지 않았다. 박종채의 또 다른 제보에 따르면 연암은 술자리에 어울려도 취하는 일이 없으셨다며 ‘한가롭게 지내며 고요히 앉아 이치를 궁구하고 관찰하기를 퍽 좋아하셨다’(나의 아버지 박지원, 45쪽)고 한다. 그런 관찰의 일부일까? 하루는 술잔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 함께 술을 마시곤 했던 유득공에게 편지 하나를 보낸다.

옛사람의 술에 대한 경계는 지극히 깊다 이를 만하구려. 주정꾼을 가리켜 후(酗)라 한 것은 그 흉덕(凶德_흉학한 행실)을 경계함이요, 술그릇에 주(舟)가 있는 것은 배가 엎어지듯 술에 빠질 것을 경계함이지요. 술잔 뢰(罍)는 누(纍_오랏줄에 묶임)와 관계되고 옥잔 가(斝)는 엄(嚴_계엄)의 가차(假借)요, 배(盃_잔)는 풀이하면 불명(不皿_가득 채우지 말라)이 되고 술잔 치(巵)는 위(危_위태하다)자와 비슷하고, 술잔 굉(觥)은 그 저촉(抵觸)됨을 경계함이요, …(중략)… 술 유(酉) 부에 졸(卒_죽다)의 뜻을 취하면 취(醉)자가 되고 생(生_살다)가 붙으면 술 깰 성(醒)자가 되지요. 『주관』에 “평씨(萍氏)가 기주(幾酒)를 맡았다” 했는데, 『본초』를 살펴보니 “평(萍_개구리밥)은 능히 술기운을 제어한다” 했소. 우리들은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것이 옛사람보다 더하면서, 옛사람이 경계로 남긴 뜻에는 깜깜하니 어찌 크게 두려운 일이 아니겠소. 원컨대 오늘부터 술을 보면 옛사람이 글자 지은 뜻을 생각하고, 다시 옛사람이 만든 술그릇의 이름을 돌아봄이 옳지 않을는지요.

( 박지원, 『연암집』(중), 「영재에게 답함 1」, 돌베개, 317쪽)

연암은 옛사람들의 세심함에 감탄한다. 술 쟁반 무늬 하나, 술잔 하나하나의 명칭, 심지어는 ‘취하다’와 ‘술에 깨다’라는 글자 속에도 ‘술을 마셔 빠질 수 있는 위태로움을 조심 또 조심하라’는 옛사람의 메시지가 줄줄줄 보였던 것이다. 까딱하면 도를 지나치기 쉬운 술의 세계에 경계할 수 있도록 해주는 불빛들이 이토록 많다니 든든한 마음도 들었을 것 같다.

china-2542574_640

어떤 이들은 ‘그냥 마시면 되지, 술잔 하나에까지 뭐 이리 의미부여를 하나’라는 생각에 귀찮고 답답한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혹은 같은 글자라도 아예 반대로 해석하며 더 막무가내로 먹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심삼일로 끝나는 다짐들 대신 연암처럼 이런 해석을 붙여보는 것이 내 행동을 조절할 때는 꽤 재미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식탐이 너무 강해서 ‘조금 먹어야지!’하고 다짐을 하고 참다가 폭발하기를 반복하는 대신에 점심은 ‘마음에 점 하나를 찍는다’라는 뜻을 새기며 내가 정신줄을 놓칠 때 제어해줄 수 있는 하나의 단서를 심어 놓는 게 어떨까. 생활 영역 곳곳에 내 행동을 경계해줄 길잡이들을 있다면, 덜 위태롭고 덜 흔들리며 자신을 경계해 갈 수 있지 않을까.

댓글

ava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