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하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얼굴 한 번 보지 않고도 친구가 될 수 있고, 한 명이 죽고 나서야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여기 그런, 기이하지만 여느 ‘우정담’만큼 아름답고 벅찬, 연암과 그의 친구 이야기가 있다.

조선 후기, 문장이 너무 뛰어나 그것을 쓴 종이에서 펴보기도 전에 빛이 나고, 재주가 벽과 같아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이가 있었다. 이름은 우상(虞裳) 이언진, 빛나는 시를 썼고, 중인이었고, 역관이었다.

천재인데, 신분에 따라 할 일이 나뉘어있는 조선에서, 중인으로 태어났다, 이것은 이미 ‘비운’을 예고하는 배치다. 인정받지 못한 천재, 읽히지 않는 불후의 작가! 그는 이런 일종의 형용모순을 만들어냈다.

Portrait_of_Yi_Eon_Jin

우상은 ‘일개 역관’에 불과했고, 조선에서 그의 이름은 마을 밖을 나오지 못했다. 그러다 역관 일로 일본에 갔다가 이름을 크게 떨치고 돌아온다. 그곳에서 우상은 일본인들이 시문을 지어보라며 어떤 그림을 보여주건, 어떤 주제를 내주건, 즉석에서 운을 맞춰 시를 지었는데, 외워놓은 시를 읊듯이 막힘이 없었다. 사신단 중 누구보다 주목을 받았지만 조선으로 돌아왔을 때 그가 문장가로서 설 자리는 없었다.

이인(異人)끼리는 알아본다고 하던가. 우상은 동시대에 명문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나, 역시 뛰어난 문장을 썼던 연암과 각별하고도 어긋난 인연이 있었다. 우상은 유독 이분만이 나를 알아줄 수 있을 것이다.”라며 사람을 보내 연암에게 자기 시를 보여줬다. 그러나 우상의 시를 본 연암은 이거야 말로 오농의 간드러진 말투이니 너무 잗달아서 값나갈 게 없다고 답했다. 한마디로, 별로라고 깐 것이다^^;

그 말을 전해들은 우상은 처음엔 성이 났다. 그러나 이내 눈물을 흘리며 낙담했다. 연암마저 읽어주지 않는다면 내가 어찌 세상에 오래갈 수 있겠는가?” 얼마 후 자기 말처럼 그는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 그는 누가 다시 알아주겠느냐며 자기 손으로 자기 시들을 모조리 불태웠다. 그 소식을 듣자 연암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그의 전기를 쓰기 시작한다.

! 나는 일찍이 속으로 그 재주를 남달리 아꼈다. 그럼에도 유독 그의 기를 억누른 것은, 우상이 아직 나이 젊으니 머리를 숙이고 도로 나아간다면, 글을 저술하여 세상에 남길 만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와 생각하니 우상은 필시 나를 좋아할 만한 사람이 못 된다고 여겼을 것이다.”

(박지원, 『연암집』(하), 「우상전」, 돌베개, p214)

남에게 훔쳐가라고 소리치듯 휘황하게 빛나는 재주, ‘세상’을 은근히 비꼬면서 뻗어나가는 기개. 연암은 우상을 분명히 알아봤다. 젊은 청년의 삐죽삐죽 뻗치는 기운, 속부터 차오르는 당당함, 어쩌면 연암은 우상에게서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성균관 시험을 치러가서 시험지에 돌과 나무나 그려놓고 나오고, 「양반전」, 「마장전」 같은 글로 온갖 욕심 범벅 양반들의 실태를 풍자해대던 자신의 모습 말이다.(이렇게 쓰긴 했지만 둘은 겨우 세 살 차이 난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상이 머리를 조금 숙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세상을 비꼬고 있는 자기 마음을 돌아보면 어떨까, 그 뛰어난 재주로 세상에 무엇을 말할지 더 생각해보면 좋지 않을까. 그렇지만 이런 연암의 마음을 따라오기엔 우상의 병이 깊었다.

우상이 죽은 뒤, 연암은 그가 자기에게 보여 왔던 시를 모두 모아 자신의 글에 한 줄 빠짐없이 적어 넣었다. 역사의 바깥으로 사라질지도 모를 우상을 자신의 ‘외전外傳’(「우상전」은 연암의 문집 「방경각외전」에 실린 열 편의 글 중 하나이다)에서, 그러니까 역사의 바깥에서 다시 살려내고자 했다.

재밌는 건 글의 제목이 「우상전」이라 해도 실제로 우상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보다 우상의 드높은 재주를 기리는 내용, 연암 자신과 어긋난 인연에 대한 내용이 주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글이 죽은 우상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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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이 연암에게 글을 보인 것은 그저 자신의 글을 같이 읽어주고 이야기해줄 친구가 필요해서였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려 미안한 연암이 쓰는, 이제야 당신의 마음을 알았다고, 그래서 이렇게 당신의 글을 읽고 있다고, 나는 이제 당신의 친구라고, 당신이 죽고서야 당신의 친구가 되어서 안타깝다고, 말하고 싶은 연암이 쓰는, 편지 말이다.

굳이 이 아름다운 이야기에 첨언하고 싶다. 친구는,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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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
Guest
시원

어긋났지만 아름다운 우정의 이야기네요. 글을 보아달라는 것은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감하는 벗을 얻는 데서 오는 기쁨이지요. 우상도 연암하고 그 기쁨을 누리고 싶었을텐데. 우리도 글 코멘트 해주고 받으면서 우정이 익어가잖아요. 연암이 한 땀 한 땀 우상의 글을 적어가며 자신의 생각을 적어가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