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호(강감찬 글쓰기학교)

길의 의미 그리고 기억

나는 걷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달리기도 좋아하지만, 나는 내가 걷는 것에 최적화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걷는 것을 편하게 느끼고 좋아한다. 어지간한 거리는 가급적 걸어 다니려고 노력하고, 도보 여행을 계획하면 보통 2~3일을 걷는다. 한달 가까이 온전히 내 두발에만 의지하여 길을 걸은 적도 있다.

걷는다고 하면 대개는 ‘만남’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린다. 길을 걷다 보면 정말로 만나는 것들이 무척 많다. 당장 내가 발을 내딛고 있는 길을 만나고, 그 길을 통해 연결되는 마을들과 뭇 생명들을 포함한 많은 것들을 만난다. 만나는 것들 중에는 내가 모르던 또다른 나도 있다. 만나는 것들의 대부분은 낯선 것들이다. 전에 가보았던 길을 다시 가게 되고, 보았던 것들을 다시 보게 된다 해도 이전과 똑같지는 않다. 일어나는 사건까지 동일한 ‘Time Loop’라는 것은 영화에나 나오는 이야기이고 어제와 동일한 오늘, 이전과 동일한 지금이란 없다.

사람들에게 시골길을 이야기하면 대부분은 그림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들과, 순수하고 착한 천사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들만 만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차라리 안 보았으면 하는 모습들도 많이 보고, 가끔은 내 자신이 좋지 않은 어떤 사건의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나는 ‘걷고 나면 무엇을 만났는지 잘 기억나지 않고, 그냥 생각 없이 걸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좋은 걷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이런 바람과는 상관없이 내 머리와 가슴 한구석을 차지하고 절대 떠나지 않는, 떠난 줄 알았지만 불현듯 갑자기 나타나 어슬렁거리는 만남의 기억들이 존재한다. 그 만남들은 따스한 것들과 아픈 것들 두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따스한 만남들의 대부분은 사람과 관련된 것이고, 아픈 기억들은 동물들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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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모든 중생의 어리석음과 삶에 대한 애착이 오래되었듯, 이 병 또한 생긴 지 오래 되었답니다. 멀리 과거에서부터 생사를 거치면서 중생이 병들었기에, 저도 병이 든 것입니다. … 중생이 병들면 보살도 병들며, 생명 있는 모든 중생의 병이 나으면 보살 또한 낫습니다. … 보살의 병은 대비심에서 일어났습니다.

『낭송 금강경 외』, 신근영 풀어 읽음, 북드라망, 45~47쪽

언젠가 우연히「유마경」에 나오는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처음 그 글을 읽으면서 나는 ‘공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렸고, 그 글은 그냥 내 마음의 한자리를 차지하였다. 아마 세월호 사건으로 온 나라가 아픈 상황에 처해 있을 때였던 것 같다.

어느 시골 마을의 굴다리 아래를 지나가다가 나는 화물칸에 철장들이 몇 개 실려 있는 작은 트럭 한 대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혹시 개장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물칸을 들여다보니 중간 크기의 개 두 마리가 맨 아래 철장안에 기가 죽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잠시 인기척을 느낀 개들이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면서 몸을 일으켰고, 그 순간 그들의 눈길과 내 눈길이 마주쳤다. 본능적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있던 녀석들은 그때 나에게 희망을 보지 않았을까 싶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잠시, 나는 몸에 표현하기 힘든 전율을 느끼면서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그때 내가 너무도 비겁했다는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잠시 마주쳤던 그들의 눈길은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내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다른 어느 날 나는 남도의 아름다운 강가를 걷고 있었다. 조금 전에 맛있는 점심을 먹고 난 후라 내 몸은 포만감에 젖어 있었고, 오후의 따스한 햇볕에 마음마저 평온한 시간이었다. 갑자기 내 발자국 소리에 놀랐는지 강변 풀섶에서 고라니 한 마리가 뛰쳐나왔다. 보통 고라니들은 뭔가에 놀라게 되면 전후좌우를 살피지 않고 안심이 될 때까지 내달리는 습성이 있다. 강둑을 따라 정신없이 달리던 녀석이 갑자기 강 옆에 있는 나지막한 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강둑과 그 산 사이에는 자동차 전용 도로가 있었고, 많은 차들이 빠르게 그 길을 오가고 있었다. “어어~” 하는 사이 순간적으로 그 녀석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에 흰색 승용차 한 대가 급정거를 하였다.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급습했다. 달려 가보니 녀석은 입가에 붉은 선혈을 흘리면서 길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내가 손으로 아무리 흔들어도 녀석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손바닥에 그의 따스한 체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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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문에 그 녀석이 그리 되었다는 심한 자책감이 나의 마음을 파고 들었다. 나는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 심한 무기력증이 느껴졌다. 나는 조금 더 있다가 녀석의 몸을 길 한쪽으로 치워 놓은 후 조용히 그 곳을 떠났다. 어디선가 그의 어미가 여기를 바라보면서 울부짖고 있는 것 같았고, 길 가는 내내 그 녀석과 어미의 시선이 내 뒤를 따라왔다.

이 사건들은 나에게 이 세상에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받게 되는 아픔과 상처가 의외로 많고 크다는 것과, 어떤 아픔은 사람에게 큰 고통을 가져올 수 있음을 알게 하였다. 이후 나는 이 사건들로 인하여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한동안 길로 들어서지 못했다.

나의 병을 치유하는 방법

작년 말 나는 며칠의 일정으로 일년 가까이 끊겼던 길을 다시 이어 걸었다. 자꾸만 움츠러드는 몸과 마음 때문에 이런 저런 핑계를 만들어 두어 번 출발일을 미루기도 했지만 이러고 있으면 안된다는 간절함이 나를 끌어냈다. 무사히 다녀왔다. 심호흡을 하면서 편안히 길을 만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지난 기억들은 그런 나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특히, 마을을 지날 때면 요즘도 자주 보이는 개사육장과 여기 저기 뒹구는 빈 철장들이 나를 바라보던 그들의 눈길을 떠오르게 했다. 심지어 강변의 풀섶들의 사소한 움직임에서도 나는 마음이 상당히 불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 마음 한 구석에 은근한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걷기를 마친 후 숙소에 누워 하루를 되새김하다가 문득 내가 가진 이 상황이 궁금해졌다. ‘아직은 이 길이 불편하다는 것은 이해되는데, 왜 두려움이 느껴질까? 내가 병들어 있는 것일까?’ 찬찬히 다시 글을 들여다보았다. 나의 “어리석음과 삶에 대한 애착”이 내가 앓고 있는 병의 원인이라고 했다.

나는 지금까지 나에게 했던 질문을 바꿔 보았다. ‘나는 왜 그토록 비겁하고 무기력한가?’라는 질문 대신에 ‘왜 개들은 그렇게 끌려가야 하는가?’ ‘왜 고라니들은 옆에 있는 산과 강을 마음대로 안전하게 오가지 못할까?’ ‘어떻게 해야 이 문제들이 해결될까?’

질문을 다르게 하니 다른 종류의 아파해야 할 것이 있음을 알았고, 나에 대한 분노 말고도 분노할 다른 것이 보였다. 그것들은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이제는 바꿔야 하는 이 사회의 문화였고, 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같이 성장하지 못한 생명에 대한 인식의 부족에 기반한 물질적 삶에 대한 애착’이었다. 그러나, 여태껏 나는 당장의 나의 연민에 기인한 아픔에만 집중하고 본질적인 구조적 문제에 대하여는 무감각했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만 분노하면서 세상과 통하는 문을 닫고 도피를 선택했다. 나는 과거에서부터 생사를 거쳐 쌓여온 것들 위에 또 하나의 ‘업보’를 보태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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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앓고 있는 병을 치유하는 방법은 ‘공부를 제대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란 “세계인식과 자기성찰”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앓는 병의 원인인 ‘나의 어리석음과 잘못된 애착’을 인정하고 깊이 성찰하고, 이제부터라도 내가 살아가는 이 세계와 길에 대한 인식과 길을 만나는 방법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만남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픔에 기꺼이 참여하는 용기로 내 가슴이 두근거리기를 원한다. 생명 있는 것들이 편안해질수록 나의 병도 차도를 보일 것이며, 나로 인하여 병이 든 보살의 병도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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