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하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내 일상은 제법 일정하게 굴러간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과 같이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일어나기도 하고, 또 바깥 환경(날씨, 분위기, 누군가의 기분 등등)은 매일 다르니 같은 날이 하루도 없다. 이렇게 나는 온갖 외부들과 뒤섞여 별별 나날들을 보내고, 매일 새로운 날들에 매번 적응하며 사는 것 같다.

그런데 지난 목요일 ‘전습록 읽기 세미나’에서 만난 양명은 나의 이런 일상적 감각을 뒤집는 말을 걸어왔다. 양명은 모든 것을 지금 우리의 ‘마음’에서 출발시키는 철학자다. 내 마음이 움직인 것이 곧 내 행위이자 나이고, 내 마음이 가닿은 곳에 만물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마음 ‘바깥’에는 사물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니, 나의 하루를 매일 다르게 만드는 것은 외부의 무엇이 아니라 내 마음이라는 것이다.

내 마음이 가닿는 것들이 내 우주를 만든다. 내가 마음을 주지 않는 것들은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오늘이 비가 오는 날이라고 해도 내가 화창한 날과 비 오는 날을 분별하지 않는다면, 오늘은 굳이 ‘비 오는 날’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내 세상을 만든다. 어떤 친구가 나빠 보인다면, 그건 내가 그 친구를 나쁘게 해석하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온 우주가 내 해석, 내 마음에 달려있다. 그러니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은 내가 만든 세상이다. 내가 눈을 감으면 사라지고, 내가 고개를 돌리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거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세상. 오직 내가 짓고 허물고를 반복하고 있는 ‘내’ 우주. 양명의 제자 문샘이 말씀하셨다, 우리는 평생 내 우주밖에 몰라요, ‘다른’ 우주는 알 수가 없어요. 네? 평생, 내 우주 속에서, 내가 만든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한다니! 그것 ‘밖’에 없는 절대적인 우주, 그렇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우주에 살아야 한다니, 어딘가 허무하면서 고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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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의 「관재기」에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동자승이 나온다. 「관재기」는 연암이 친구 서상수의 집 ‘관재(觀보는齋집)’에 써준 기문이다. ‘보는’ 집이라니 무엇을 ‘본다’는 건가? 그 대답으로 연암은 금강산 유람 중 한 절에서 듣게 된 치준대사(스님)와 동자의 대화를 옮겨오고 있다. 향을 피우다가 연기가 바람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는 듯 말하는 동자에게 대사가 말한다. 너는 향을 맡았지만, 나는 그 재를 보며, 너는 그 연기를 보고 좋아하지만 나는 그 공을 본다.”

무엇을 ‘보는’가? 향의 냄새나 연기 같은 현상이 아니라 ‘공空’을 본다. 내가 짓지 않으면 이 세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동시에 나도 존재하지 않으니, 따로 어떤 실체가 있지 않다는 ‘공’함을 보는 것이다. 대사의 말을 들은 동자는 눈물을 줄줄 흘린다. 제가 ‘공’이고, 모든 것이 ‘공’이면, 제 법명도 제가 지키는 ‘오계’도, 아무것도 아닌 겁니까(ㅠㅠ). 그때 치준대사가 대답한다.

너는 공순히 받아서 고이 보내라. 내가 60년 동안 세상을 보았는데 어떠한 사물이든 머물러 있는 것이 없이 모두가 도도하게 흘러간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그 바퀴를 멈추지 않으니, 내일의 해는 오늘의 해가 아니다. (중략) 너는 마음속에 머물러 두지 말고 기운이 막힘이 없도록 하라. 에 순응하여 명으로써 나[]를 보고, 에 따라 돌려보내어서 이로써 사물을 보면, 흐르는 물이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는 곳에 있을 것이요 흰 구름이 일어날 것이다

(박지원, 『연암집』(하), 「관재기」, 돌베개, p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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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공’의 세계에서 ‘공’으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실체 대신 흐름이 있는 세계에서, 오는 것은 ‘공순히 받’고, 가는 것은 ‘고이 보내는’ 하나의 흐름으로 사는 것. 실재하는 ‘나’, 실재하는 외부가 있는 세계가 있다. ‘의미’와 ‘가치’도 실재하고, 그것을 찾아서 그대로 살면 ‘의미 있고’, ‘가치 있어’지는 삶이 있다. 반면 ‘공’의 세계는 아무 의미도 가치도 만들지 않는다. 다만 여기에는 ‘나’를 잊고 만물과 ‘하나’가 되는 기쁨이 있다. 내가 아니라 하나의 흐름으로 존재하는 데에서 오는 자유로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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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이유진
1 year ago

아 윤하쌤. ‘사람은 평생 각자의 우주에산다. 나를 비우는 空의 세계에서 나를 잊고 만물과 하나가 되는 즐거움이 있다’ 이렇게 심오한 철학적 화두에 눈을 떴군요.
글 잘 읽고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