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연(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우리는 남산 자락 아래, 필동 골목 저~끝에서 놀멍쉬멍 살고 있다. 놀고먹는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놀고먹는 시간이 대부분인 게 함정이다^^;;) 요즘 글을 몇 편 쓰다 보니, 읽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과 눈빛교환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글쓰기는 영 쉽지 않다. 글이 안 써지는 건, 내가 잘 ‘읽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럴 때 수많은 핑계가 생기고, 스스로 착각을 일으킨다. 시간이 많으면 잘 쓸 것 같고, 천천히 정성들여서 읽으면 좀 나을 것 같고, 잠을 더 잘 자면 잘 써질 것 같고 등등. 하지만 이유는 단순하다.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은 잘 ‘읽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잘 읽는다’는 건 뭘까? 분명, 텍스트와 케미가 생길 때가 있다. 책 속의 인물에 뿅~가서 “저렇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거나 책 속에서 별로인 ‘나’를 발견하거나 새로운 세상에 눈이 번쩍 뜨이거나 하는 때가 분명 있다! 우리는 어떨 때 이런 케미를 느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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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이 말하는 ‘읽기’는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다. 단순히 책 속의 글자만을 읽어 내려가는 것은 ‘읽기’라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글쓴이의 마음을 간파하는 것이다.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어떤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은 것인지. 그 마음을 읽어낼 때, 책과 나 사이에 케미가 생긴다.

  그대가 태사공太史公의 『사기』史記를 읽었으되 그 글만을 읽었을 뿐 그 마음은 읽지 못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항우본기」를 읽고서 성벽 위에서 전투를 관망하던 장면이나 생각하고, 「자객열전」을 읽고서 고점리가 축을 치던 장면이나 생각하니 말입니다. 이런 것들은 늙은 서생들이 늘 해 대는 케케묵은 이야기로서, 또한 ‘살강 밑에서 숟가락 주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어린아이들이 나비 잡는 것을 보면 사마천司馬遷의 마음을 간파해 낼 수 있습니다. 앞다리를 반쯤 꿇고, 뒷다리는 비스듬히 발꿈치를 들고서 두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만들어 다가가는데, 잡을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에 나비가 그만 날아가 버립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기에 어이없이 웃다가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성을 내기도 하지요. 이것이 바로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할 때의 마음입니다.

(박지원 지음, 「경지에게 답함3」,『연암집(중)』, 돌베개, 367~368쪽)

『사기』史記를 읽으면서 장면들을 떠올리고, 줄거리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실의 나열 혹은 재미난 이야기를 읽는 것으로는 계속 읽어나갈 수 없다. 금방 지루해지고, 지치게 된다. 그럴 땐, 역사 속의 인물이 되어보거나 혹은 글쓴이가 어떤 마음으로 이 이야기들을 써내려갔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연암은 어린아이들이 나비 잡는 모습으로 사마천의 마음을 읽어낸다. 나비를 잡으려고 온 신경을 집중해서 조심스레 다가간다. 잡을까 말까 그 때를 보고 있는 사이에 날아가 버린 나비. 주변을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고, 혼자 분에 못 이겨 화를 내기도 하고 어이없는 너털웃음을 짓기도 한다.

사마천은 어떤 마음으로 『사기』를 써내려갔던 걸까. 이릉을 끝까지 변호해주다가 결국 본인이 궁형을 당하고 만다. 온 마음을 다했지만, 나비는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때의 화로 『사기』를 쓴 걸까?

그 마음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는 자신에게 닥친 힘겨운 시간을 세상의 이야기를 기록하여 남기는 것으로 견뎌낸다. 비록 화도 나고, 어이가 없어 웃음도 새어나왔지만. 나비를 잡기 위해 손을 뻗는 그 마음, 집중해서 조심스레 다가가는 그 마음으로 글을 써내려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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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연암을 ‘읽는다’는 것 또한 연암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일 것이다. 연암이 어떤 마음으로 세상과 만났는지, 어떤 걸 보고 느끼며 살았는지, 어떤 일에 분노했는지, 어떤 일을 안타까워했는지. 그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 진정 연암을 읽는 것이다.

연암은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워 이런 글을 썼을 것이다. 저자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 텍스트를 잘 읽어내는 것은 케미를 만들어간다. 책을 잘 읽는 사람은 아마 연애도 잘 할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는 사람이니! 연애가 고민이라면, 책을 찐-하게 만나는 것을 연습하는 것도 훌륭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내 마음을 알아주는 상대에게 누가 마음을 뺏기지 않을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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