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하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연암은 안의 현감 임기를 마치고 다음 해 여름, 면천 군수 일을 맡아 다시 지방(충청남도)으로 파견된다. 이것은 정조의 세심한 배치였는데,(면천은 당시 천주교도가 많은 문제 지역이었고 정조는 연암을 이곳 수령을 맡길 적임자라고 생각한 듯하다.) 연암은 첫해부터 수령 일을 때려 치려다가 도로 잡혀온다.

사건의 시작은 연암의 실력을 잘 알았던 공주의 판관 ‘김응지’가 충청 감사였던 한용화에게 연암을 추천한 것. 당시 한용화는 가뭄을 원인으로 충청도의 당년 세금을 낮춰줄 것을 요청하는 글을 조정에 올렸는데 여러 번 거절을 당했다. 그래서 (응지의 추천대로) 연암에게 대신 글을 써줄 것을 청했다. 연암의 간곡한 문장은 역시 프리패스! 조정으로부터 세금 감면을 허락받는 데 성공한다.

연암이 마음에 든 한용화는 이후 충청도의 옥사를 재심해줄 사람으로 연암을 지목한다. 명대로 연암이 감영에서 옥사를 재조사하고 있는데, 한용화가 연암을 은근히 불러냈다. 도내 수령의 근무성적이 적힌 종이를 보여주며 함께 의논하자고 한 것이다. 다른 수령들의 근무 성적을 같이 의논하려 한 것인지, 연암을 승진시켜주겠다는 말을 돌려 한 것인지, 그의 의도는 모르겠다. 어찌 됐든 연암은 이 은근한 회유에 몸서리치며(연암은 젊었을 때부터 이런 회유에 학을 뗐다) 병이 났다고 급히 면천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자기를 무시했다고 생각해 화가 난 한용화는 연암의 근무성적을 깎아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연암을 따라왔던 아전을 잡아다 벌을 줬다. 이에 염증이 난 연암은 자기 병이 깊어져서 일을 그만두어야겠다며 여러 차례 사표(!)를 냈다. 수락을 받지 못하자 급기야 병가를 내고 서울로 올라와 버린다. (그리고 곧 정조의 명으로 다시 면천으로 잡혀 돌아온다.^^) 연암, 권세와 이익으로 사람 사귀는 행태를 미워하는 건 환갑이 되어서도 여전하다.

이 소동 이후, 둘(연암과 한용화)의 만남을 주선했던 응지가 본인이 잘못한 게 아닌가 하며 안절부절, 변명조의 편지를 연암에게 보낸다. 그에 연암은 이렇게 대답한다.

따져 보면 애초에는 교제가 아직 옅은데 흠모가 지나치게 깊었고, 끝내는 마음이 아직 미덥지 못한 상태에서 의심과 노여움이 마구 생겨났으며, 병이 이미 뜻밖에 생겼으나 대접이 처음만 못했고, 의심한 것은 본심이 아니었지만 연膝淵(‘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지나치게 변덕스러움’(역주))이 너무도 갑작스러웠던 거요.

(박지원 지음, 「응지에게 답함2」,『연암집(상)』, 돌베개, 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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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동이 일어나게 된 건, 응지 당신 잘못도 아니고, 한용화의 잘못도 아니고 연암 본인 잘못도 아니라는 거다. 이건 둘의 관계가 생각보다 덜 깊었던 탓이다. 아니면 깊다고 오해했던 탓이다. 지금까지 둘은 서로 잘 알지 못한 채로 서로에게서 자기가 기대하는 모습을 보아왔고, 이런 일이 일어나고 보니 서로를 막상 믿지는 못했다는 것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연암 본인도 한용화를 의심하려고 한 건 아닌데, 그의 (좋아했다 싫어했다 하는) 마음이 갑작스러워서 당황했던 것 같다 말한다.

누가 잘못된 것도 아니고, 누가 의도적으로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일어나는 일들이 있다. 그건 그냥 ‘누가’ 아니라 어떤 인연이 만든 일이다. 서로 믿지는 못하는데, 흠모하는 (줄 알았던) 관계가 만든 일이다. 좋아하는 마음, 또 싫어하는 마음에서 한 발 멀어진 연암이 하는 말은 담백하기 그지없다. 우리가 서로를 못 믿었군요. 서로를 잘 모르면서 좋아했군요. 그렇다면 지금은, 서로를 잘 모르면서 싫어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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