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영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연구실에 있다 보면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과 웬만큼 알만한 사이가 된다. 매일같이 얼굴을 보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붙어있을 때도 많고 어디 갈 땐 알려주는 버릇을 들이다보니 온갖 꼴을 다 보며 각자의 생체리듬과 동선이 자연스레 공유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로의 사주와 별자리까지 터놓으며 서로 얼마나 다른 우주에서 사는지도 보게 되고, 글 쓰고 피드백을 하면서는 어떤 패턴들을 지니고 있고 어디서 자꾸 넘어지고 있는지를 같이 고민하며 친해진다.

그런데 점점 알만해진다 싶을 때마다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는 걸 깨닫는다. 단맛을 좋아하는 줄만 알았던 친구가 주위 사람들을 살뜰히 챙길 때, 강해보이고 아무렇지 않게 지낼 거라 생각했던 친구가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왈칵 쏟아낼 때, 어제까지만 해도 묵묵히 제 할 일을 해내던 친구가 크게 앓아누울 때 등등. ‘이 친구는 이렇다’는 굳혀진 이미지대로 친구를 보느라 오히려 지나치게 되고 깜깜 무지할 때가 있는 것이다. 같이 지내는 만큼 서로에 대해 알아가게 되는 면들도 많아지지만, 그와 동시에 알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굳어지는 친구에 대한 편견들. 과연 이 ‘내 멋대로’식 판단을 내려놓을 수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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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평생 어려울 것 같다. 몇 쪽 안 되는 짧은 서문, 「낭환집서」에도 우리가 얼마나 한 쪽밖에 못 보는 사람인지를 드러내주는 이야기가 세 가지나 나온다. 먼저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두 사람이 ‘비단옷을 입은 소경(장님)이 자신을 못 보는 게 나은지, 아니면 밤길에 비단옷을 입어서 남들이 알아봐주지 못하는 게 나은지’를 묻는다. ‘나도 몰라’라는 청허선생의 답처럼 어느 게 더 나은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소경이 자신의 비단옷을 못 보듯, 남들 눈에는 뻔히 보이는 내 모습이 정작 내 눈에는 안 보일 때가 있다. 반대로 밤길에서 남들이 못 알아보는 것처럼, 남들 눈에는 절대로 안 보이는 나의 모습이 있다. 우리 모두 같은 것을 볼 거라고 착각하지만, 각각 볼 수 있는 것은 다르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백호라는 사람이 한쪽에는 짚신, 다른 한쪽에는 가죽신을 신고 말을 타려고 하자 종이 짝짝이라고 지적한다. 백호는 길 오른쪽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가죽신을 신었다 할 것이고, 길 왼쪽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짚신을 신었다 할 것이니, 내가 뭘 걱정하겠느냐.”(『연암집』, 「낭환집서」, 51쪽)라고 되려 종에게 화를 낸다. 천하에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건 발만한 게 없는데도 분간이 어렵다는 연암의 말마따나, 내가 보는 면만으로 다른 사람의 모든 걸 쉽게 지레짐작하는 것이다. 당연히 내가 맞다고 여길 뿐, 틀릴 수 있다고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채.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정답이 없는데도 정답이 있다고 믿는 이야기가 나온다. 황희정승의 딸과 며느리의 논쟁인데, 이가 옷에서 생기는 게 옳은지, 살에서 생기는 게 옳은지 두 의견이 분분하다. 둘 다 정답이 있어서 꼭 하나의 의견이 옳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 하나의 정답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진실에 다가갈 수가 없다. ‘이’는 옷에서 생기기도하고 살에서 생기기도 하지만, 그 어느 한쪽으로도 다 설명할 수 없는 관계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되고 올바른 식견은 진실로 옳다고 여기는 것과 그르다고 여기는 것의 중간에 있다. 예를 들어 땀에서 이가 생기는 것은 지극히 은미하여 살피기 어렵기는 하지만, 옷과 살 사이에 본디 그 공간이 있는 것이다. 떨어져 있지도 않고 붙어 있지도 않으며, 오른쪽도 아니고 왼쪽도 아니라 할 것이니, 누가 그 ‘중간’을 알 수가 있겠는가.

말똥구리는 자신의 말똥을 아끼고 여룡의 구슬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여룡 또한 자신에게 구슬이 있다 하여 ‘말똥구리의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 박지원, 『연암집』(중), 「낭환집서」, 돌베개,  51쪽)

각자가 볼 수 있는 한에서, 내가 보는 것만으로 지레짐작하고, 어딘가에 정답 같은 한 가지가 있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래서는 진실에 다가갈 수도 없고, 내 의견이 맞다고 말똥구리의 말똥을 비웃거나, 다른 사람의 의견이 맞는 것 같다면, 여룡의 구슬을 부러워하게 될 것이다. 그보단, 나에게 당연히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닐 수 있고, 한 가지 정답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불안정적이지만, 내가 여태껏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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