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변태 도덕론자, 호미미 - 2)

이호정(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뿌리 깊게 새겨진 도덕, 혼전순결

나에게는 특정한 종교는 없었지만, 몇 가지 굳은 신념들은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혼전순결’이다. 종교도 없는데 그걸 왜 지켜야 했냐고 물어보면, 나 스스로도 답할 수 없다. 그냥 내 머릿속에서 ‘그건 반드시 지켜야한다’는 명령이 세차게 내려졌을 뿐.

하여간 그것은 나의 크나큰 도덕적 이상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깨끗한 존재’로 그리는 것에 일종의 자부심 같은 것이 있었다. 10대 시절, 개방적인 친구들이 교실에서 ‘성(性)’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나는 옆에서 눈살을 찌푸리며 손사래를 쳐댔다. 내 마음과 달리 나의 귀는 손사래 너머로 온 힘을 다해 쫑긋거리긴 했지만.

20대가 되고 친구들이 성에 있어 더욱 더 자유로워지면서부터, 나는 그런 ‘성-혐오’에 대해 촌스럽게 티를 내지는 않았다. 겉으로는 아주 나이스하게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마치 그런 것쯤은 나도 다 이해를 한다는 듯이. 의식적으로도 그러했다. ‘나는 네가 그렇게 개방적이게 성관계를 하는 걸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너’의 일이었다. 그것은 ‘나’에게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혼전순결, 결혼 전에는 성관계를 하지 않아야 ‘순결’하다는 그 생각은, 성관계를 ‘더러운 것’으로 보는 시선을 전제한 것이었다. 그렇담 난 어쩌다가 성과 관련된 일들을 ‘더럽다’고 느끼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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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공부하는 서양철학팀과 중국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우린 그날 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청년들이 열광하는 ‘힙합’ 문화와 8-90년대를 뒤흔든 ‘락’ 문화…그리고 힙합에 깃든 성(性)…우리가 느끼고 있는 성……. 그러다가 문득 나의 중학교 때 이야기가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왔다. 몇 년 동안이나 끄집어내질 일 없던 그 기억이, 그 순간의 배치를 만나 놀랍게도 정말 불쑥-! 솟아오른 것이다.

남녀공학이었던 우리 중학교의 한 반에는, 2차 성징이 한창 진행 중인 남자애들과 여자애들이 초등학교 때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와글와글 섞여있었다. 남자애들은 수염이 나기도 하고 목소리가 동굴에서 나는 소리처럼 변했으며, 여자애들은 가슴이 봉긋해지고 이제 막 나기 시작한 여드름이 신경 쓰인다는 듯 하루에도 수백 번씩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점점 눈에 띄는 외형적 차이들이 남녀 사이에서 생기고 있던 때, 남자애들 중에 ‘변태’로 불리는 애가 나타났다.

그건 다시 생각해도 정말 짜증나는 일인데, 그 애(엇, 남자친구랑 호칭이 겹치네..)가 썼던 수법은 정말 한 사람으로 하여금 존재적인 모욕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 수법을 잠깐 묘사해보자면, 일단 그 애는 남자애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 그 애는 남자애들을 방패막이이자 호응 좋은 관객들로 이용한다. 자신의 위치가 어느 정도 확보된 것을 확인하고 나면, 그 다음으로 표적 고르기에 돌입한다. 교실을 삥 둘러보고 스캔을 하다가 한 여자애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그러고는 정말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그때 그 애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여자애의 얼굴이나 머리카락 같은 데가 아니다. 정확히, 성기다. 거기를 계속해서 보는 거다.

옆에 있던 남자애들이 시시껄렁한 주제로 웃고 떠드는 동안, 걔는 그 할 일을 한다. 그러다보면 옆에 있던 남자애들이 곧 눈치를 채고는 킥킥 대며 말한다. “야 얘 또 변태 짓 한다~ㅋㅋㅋ” 그 애는 전교에서 소문난 변태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건, 그 애가 마치 다른 남자애들의 욕망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 남자애들 사이에서는 꽤 인기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 애에게 불만을 품은 여자애들이 여러 번 쏘아댔지만 별로 먹히지 않은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남자애들의 성적 유희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교실 곳곳에서 벌어졌는데, 자기들끼리 속삭이듯이 ‘섹스~’라고 말하고는 엄청 좋아한다든가, 쉬는 시간에 사물함 쪽 구석에서 유사성행위 같은 이상한 자세를 취하며 신음소리를 낸다든가…. 하여튼 다시 생각해도 그곳(교실)은 뭐 거의 동물원이나 다름없었다.

성에 대해서 막 눈을 뜨기 시작한 그때의 나에게는 성이, 그리고 남성이 아주 더럽게 느껴졌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왜 저런 이상한 소리를 내는 걸까…. 쟤는 지 친구 무릎 위에 앉아서 뭘 하고 있는 걸까….’ 그때부터 나는 나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성이 저렇게 저급한 것이라니. 난 저런 것들에 더럽혀지고 싶지 않아. 난 영원히 깨끗할 거야!’

그런 각오를 다진 내게 ‘혼전순결’은 아주 매혹적이고 마음에 쏙 드는 슬로건이었다. 성에 대해 무지했던 내가 거칠게 이해한 성은 디럽고, 유치하고, 모멸적인 것이었기에, 나는 정말로 결혼 전에 성관계를 하면 존재적으로 심각하게 타락할 것이라 믿었다. 그리하여 결혼 전에는 절대로 성관계를 하면 안 된다는,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성에 의해 더럽혀지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는 강력한 도덕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그 도덕은 나를 ‘순결한’ 존재로 지켜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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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중학교 남자애들은 확~~실히! 뭣 모르고 날뛰는 천둥벌거숭이들이었다. 그건 다들 동의할 거다. 하지만 그때의 그 경험으로 인해 나 스스로가 ‘혼전순결주의자’를 자처하게 된 건, 분명 쉽게 납득하기는 어려운 부분일 것이다. ‘사춘기 남아들이 그럴 수도 있지 뭐~’ 하고 단순하게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만약 우리 학교 여자애들이 전부 나와 같았다면, 우리 학교는 수녀원이 되지 않았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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