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하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세상에는 다양한 삶만큼이나 다양한 죽음들이 있습니다. 병원에서의 죽음, 교통사고 및 추락 등의 각종 사고사, 천재지변으로 인한 몰사, 전쟁을 비롯한 정치적, 종교적, 온갖 살인으로 인한 죽음… 그리고 개중에는 사람들이 유난히 슬프고 애통하게 느끼는 죽음들이 있죠. 조선 시대에는 이런 죽음(주로 요절) 앞에서 ‘애사哀辭’를 지어 추도했습니다.

연암의 제자이자 벗이며, 박제가의 처남이자 벗이었던 이몽직은 스물여섯이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연암은 그가 죽고 「이몽직애사」를, 박제가는 절절한 「제이몽직문」을 씁니다. 스물여섯이라는 나이가 ‘죽음을 말하기엔’ 참 이른 나이라 애통하기도 했지만, 그의 죽음이 너무나 공교롭고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몽직은 이렇게 죽었습니다.

하루는 몽직이 남산에서 활 연습을 하고 활쏘기 장을 나서는 중이었습니다. 돌연히 한 화살이 날아가야 할 곳이 아닌, 잘못된 방향으로 날아와 몽직의 머리에 맞았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쓰러진 몽직은 앓다가 일주일 뒤에 숨을 거둡니다. 전쟁통도 아니고 뜬금없이 화살을 맞다니요. 그 좁은 화살촉이 어찌 또 일부러도 맞추기 어려운 사람의 머리를 꿰뚫다니요. 그것도 총명하고 마음 씀이 넉넉한, 어여쁜 청년에게 날아오다니요. 이런 죽음은 우리를 애통하게 하고, 원망하도록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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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박제가의 제문은 원통함으로 꽉 들어차 있습니다. ‘대체 몽직이 왜 죽어야 됩니까’하는, 듣는 이 없는 원망 섞인 질문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연암의 글은 좀 다릅니다. 연암의 ‘애사’는 이렇게 시작하거든요.

대범 사람의 삶은 요행이라 할 수 있는데도 그 죽음이 공교롭지 않게 여겨지는 것은 어째서인가? 하루 동안에도 죽을 뻔한 위험에 부딪치고 환난을 범하는 것이 얼마인지 모르는데, 다만 그것이 간발의 차이로 갑자기 스쳐가고 짧은 순간에 지나가 버리는 데다가, 마침 민첩한 귀와 눈, 막아 주는 손과 발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그렇게 되는 까닭을 깨닫지 못하는 것일 뿐이며, 사람들도 편안하게 생각하고 안심하고 행동하여 밤새 무슨 변고가 없을까 염려하지 않는다.”

(박지원 지음, 「이몽직에 대한 애사」,『연암집(중)』, 돌베개, 248쪽)

실상 도처가 죽음으로 가는 길이고, 하루에도 몇 번을 간발의 차이로 죽음이 스쳐 갑니다. 지금 당장 건물 지붕이 무너져 내려 깔려죽지 않으리란 법이 있나요? 알 수 없는 이유로 원한을 품은 이가 내일 나를 찔러 죽일 수도, 전화를 하던 중 핸드폰이 갑자기 귀 옆에서 폭발해버릴 수도, 누군가 말 한마디 잘못해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평소에 그것을 감각 하지도, 생각하지도 않고 사는 우리에게 그런 죽음은 ‘부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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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가 합리적이고, (부당하지 않아서) 받아들일 만하다고 생각하는 죽음에 대해서는 어떤가요? 몽직이 여든 살이 되는 날 죽었거나, 잘못 날아온 화살이 아니라 전쟁터의 화살을 맞아 죽었다면 좀 나았을까요. 아마 ‘애사’를 쓸 정도는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말 스물보단 여든이 ‘죽을만 하’고, 모르는 사람보다 적의 화살을 맞아 죽는 게 더 마땅한 일이라 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 삶을 놓아버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모든 죽음이 ‘공교롭’습니다. (정확히 자살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고 연암의 말대로 “높은 산에 오르지 아니하고 깊은 물가에 다가가지 않고, 언어를 조심하고 음식을 조절하며, 나의 생각이 속에서 생겨나는 바를 경계”하는 것 등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죽음도 합리적이고 ‘그럴 만한’ 방식으로 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부당한 일도, 원통한 일도 아닙니다. 매번의 죽음을 용케도 피해간 그 삶도 참 공교로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이유 없이 거듭된 우연을 통해 찾아온다면, 삶도 이유 없이 거듭된 우연을 통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부당한 죽음이 없으니 당연한 삶도 없습니다. 삶과 죽음의 기묘한 꼬리잡기! 그러니 이 삶은 죽음이 만들어준 것이지요. 그것을 알 때, 우리는 죽음을 원망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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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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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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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아

그러네요 저는 참 공교롭게도 살아가고 있었네요 무려 22년 동안이나! 시원하게 창문이 하나 열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요. “부당한 죽음이 없으니 당연한 삶도 없습니다.” 잊지 않으려고 노력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