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복

사수(邪祟)병일 때는 노래도 하고 울기도 하며, 중얼거리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혹은 개울에 앉아 졸기도 하고, 더러운 것을 주워 먹기도 하며, 혹은 옷을 다 벗어버리기도 하고, 혹은 밤낮으로 돌아다니기도 하며, 혹은 성내고 욕하는 등 종잡을 수가 없다.

사람이 정신이 강하지 못하고 심지가 약하여 두려움이 많으면 귀신이 붙는다. 귀신이 붙으면 말을 하지 않고 멍하니 있거나 헛된 말이나 헛소리를 하며, 비방하고 욕설을 하며, 남의 잘못을 들추는 데 체면을 가리지 않으며, 앞으로 있을 길흉화복을 입으로 잘 내뱉는데 그 때가 되면 털끝만한 오차도 없고, 남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척척 알아맞히며, 높은 데 오르고 험한 데 다니는 것을 마치 평지를 걷듯이 다닌다. 그리고 혹은 슬프게 울고 앓는 소리를 내며, 사람을 보려고 하지 않고, 술에 취한 것 같기도 하고 미친 것 같기도 하여 그 증상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사수(邪祟)의 증상은 전증(癲證) 같으나 전증은 아니며, 때때로 정신이 밝아지기도 하고 흐려지기도 한다.

(「잡병편」, ‘사수’, 1464쪽)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지만 내가 어릴 때는 길을 가다 보면 희죽희죽 웃는 사람들이 가끔 있었다.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고 뭔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어디 가냐고 물으면 “어?” 하고 놀라며 또 희죽 웃고. 마냥 유순해 보이다가도 어떨 때는 과도하게 불쑥불쑥 화를 내며 대들기도 하는 아이나 어른. 좀 심하면 옷차림새도 지저분하고 맥락 없이 엉뚱한 말도 하여 정신이 나간 듯하지만 그렇다고 일상을 꾸리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물론 좀 모자란 사람 취급을 받기는 했지만 식구들과 섞여 살고 혼인하여 가정을 이루기도 했다. 동네마다 이런 사람 한 두명씩은 거의 있었다.

『동의보감』에선 이들의 증상을 ‘사수(邪祟)’라는 병으로 보고 있다. 수(祟)는 ‘덧씌운다’는 뜻. 사악한 기운에 씌웠다는 뜻이다. 그 사악한 기운을 보통 ‘귀신’이라 부르고 이런 증상을 ‘귀신 씌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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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에 따르면 내가 어릴 때 가끔 동네 분들에게서 봤던 그런 증상들은 미약한 경증이다. 심하면 귀신과 교접을 하기도 하고 폭력을 쓰기도 했다가 미친 듯 웃어 제끼기도 하고 미래의 길흉화복을 점치기도 한다. 그때 가보면 ‘한 치의 오차도 없’고 남의 생각을 척척 알아맞히기도 했으니 신기가 있어 보였으리라. 한편 아무 데서나 소 대변을 보고 높은 곳을 평지처럼 날고 옷을 벗어 다니곤 하니 이 종잡을 수 없는 증상에 아연해 졌으리라. 특히 여우에게 홀렸을 땐 증상이 더 심하다. “사람이 여우나 삵에게 홀리면 산과 들을 돌아다니거나, 손을 마주 잡고 아무에게나 예를 표하거나, 조용한 곳에서 혼잣말을 하거나, 옷을 벗고 사람을 대하거나 손을 들어 수없이 읍()을 하거나 입을 꼭 다문 채 손을 마주 잡고 앉아서 지나치게 예절을 차리거나, 대소변을 아무 곳에서나 본다.”

인간은 부지불식간에 동물을 지배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만의 망상이고 실제로는 동물이나 인간이나 다 자기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서로의 관계에서 다 자기 생명에 유익하기 위해 힘을 쓴다. 인간은 여우를 공격하여 털과 가죽을 얻기도 하지만 때로는 여우에게 습격을 당하기도 한다. 여우는 특히 영리한 모양이다. 자신보다 약한 어린 아이들이나 허약한 사람들에게서 기운을 뺏어 가는 수가 종종 있다. 동화에 나오는 숱한 이야기들이 허구만은 아니다. 그럴 때 여우에게 기혈을 빼앗긴 사람은 이런 증상을 보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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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동의보감』에선 이 사수라는 병이 전증(癲證 정신병)이 아니라고 한다. 귀신에 씌웠을 뿐이다. 그런데 그 귀신도 실체가 있는 게 아니다. ‘이것은 기혈(氣血)이 몹시 허()하고 신기(神氣)가 부족하거나 담화(痰火)가 몰려서 그런 것이지 정말로 요사스러운 귀신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위의 책 1464)’ 결국 내 몸의 문제다. 원기가 극도로 쇠약해져서 정신이 소통되지 못하고 소통되지 못한 기혈이 뭉쳤기 때문에 생긴 현상일 뿐 실제로 귀신이나 헛것이 있지는 않다는 것. 기혈이 흐르지 못하고 뭉치면 이처럼 이랬다저랬다 종잡을 수 없는 극단적인 증상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증상이 아주 요상하다보니 이렇게 몸의 뭉친 상태를 그냥 ‘귀신’ 혹은 ‘악귀’라는 말로 부르고 있을 뿐이다. 여우의 기운도 인간에게 해를 끼칠 때는 귀신이 된다. 『동의보감』에선 이처럼 해괴한 증상도 미신적으로 보지 않고 몸의 허실에 따른 자연과학적, 합리적 현상으로 풀고 있다.

따라서 치유도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한다. 쇠약해진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 약재로 녹용을 쓰고 사기를 물리치는 주사나 웅황을 먹거나 몸에 지니고 다닌다. 호랑이 눈알이나 호랑이뼈 특히 호랑이의 기운이 몰려있는 앞다리 뼈를 약재로 쓰기도 하고 부적처럼 몸에 지니기도 한다. 민간에서 호랑이가 그려진 민화를 벽에 거는 것도 힘을 받고 악귀를 물리치기 위해서일 것이다. 여우에게 홀렸을 때는 여우고기를 먹이고 여우의 머리, 꼬리, 똥을 태워서 귀신을 물리친다. 여우는 뜨거운 양의 기운을 가졌기 때문이다. 또 귀곡혈(鬼哭穴)에 뜸을 뜨면 환자가 여우 목소리로 “나는 간다”라고 슬프게 말하면서 낫는다고 하니 여우 귀신에게 홀렸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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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여우 귀신에게 홀릴 일이야 없지만 우리를 홀리고 덧씌우는 귀신의 기운들은 결코 옛날보다 덜하지는 않은 것 같다. 연일 터지는 뉴스에는 그것들에 홀리고 덧씌워져서 종잡을 수 없는 증상들이 펼쳐지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기운이 약하고 뭉쳐져서 그런 것이다.

『동의보감』이 내놓은 심리적 물리적 처방. 정신을 안정한 다음 치아를 21번 맞쪼고 공기를 14번 들이마시기를 3백번 하고 그만둔다. 이와 같이 20일 동안 하면 사기(邪氣)가 다 제거되고 1백일 동안 하면 복시(伏尸)가 없어지며 얼굴과 몸에 광택이 돈다. (위의 책, 1468)

우리 몸의 앞, 뒤를 흐르는 경맥은 윗입술과 아랫입술에서 멈추어져 있다. 치아를 맞쪼면 그것이 연결되면서 기혈이 원활하게 흐른다. 뭉쳐졌던 기혈도 풀린다. 또한 치아는 신장과 뼈와 연결되어 있어 맞쪼면 뼈와 신장을 튼튼하게 해주므로 사기를 물리칠 수 있다. 숨만 쉬고 이만 맞부딪히기만 하면 되는 초간단 치료법. 이보다 더 쉬운 치료법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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