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연(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며칠 전,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와!!!하고 탄성이 나왔다. 하늘이 정말 파랬다. 너무도 또렷한, 정말 찐-한 하늘이었다. 햇볕은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듯했고, 하늘은 그 볕을 여과 없이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온 세상 만물들이 이곳에 있음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한껏 매력을 뽐내고 있는 기분이었다.

같이 걷던 한 친구가 물었다.

“이렇게 하늘이 파란 게, 정말 중국 공장이 멈춰서 그런 거예요?”

진위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이정도로 따뜻한 봄날이면 황사며 미세먼지며, 난리가 났어도 진즉 났어야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것들이 멈추었다. 인간도, 인간이 움직이는 기계도, 인간이 타고 다니는 차도.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던 명동 한복판도 지금은 훵~하다. 할리우드 재난영화가 생각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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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는 중국을 시작으로 일본, 한국. 이제는 미국과 유럽까지 퍼졌다. 순식간에 세계 일주를 한 셈이다. 덕분에(?!) 우리의 일상이 멈추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던 인간의 욕심에 코로나가 브레이크를 걸어준 것이다.

하늘만 제 색을 되찾은 건 아니었다. 한 기사를 보니, 베니치아 항구에는 60년 만에 돌고래가 돌아왔다고 한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겨, 물이 깨끗해지고,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돌고래가 다시 찾아온 것이다. 수로의 물고기가 훤히 보이고, 때때로 백조도 그곳에서 노닌다고 한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들은 제자리를 찾은 듯, 제 빛을 발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두려움 앞에서 스스로 몸을 감추고 있을 뿐이다. 두려움과 불안에 휘감겨있을 때, 우리의 눈에 다른 것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저 나를 숨기고, 조심하고, 그것만으로도 버겁다. 지금이 그렇듯이.

연암의 편지글 중 재미난 이야기 하나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코끼리 발가락 사이에서 솟아난 흙. 땅속에 있다가 영문도 모르고 쏙 튀어 올라온 개미. 코끼리가 땅을 세게 밟아서 개미자신이 땅위로 쏙 튀어나와 버렸다. ‘어떤 놈이지!’ 싸워보겠다고 씩씩대며, 두 눈을 부릅뜨고 찾아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랏!

  지금 저 코끼리가 서면 집채만 하고 걸음은 비바람같이 빠르며, 귀는 구름이 드리운 듯하고 눈은 초승달과 비슷하며, 발가락 사이에 진흙이 봉분같이 솟아올라, 개미가 그 속에 있으면서 비가 오는지 살펴 보고나서 싸우려고 나오는데, 이놈이 두 눈을 부릅뜨고 보아도 코끼리를 못 보는 것은 어쩐 일입니까? 보이는 바가 너무 멀기 때문이지요. 또 코끼리가 한 눈을 찡긋하고 보아도 개미를 보지 못하니, 이는 다름이 아니라 보이는 바가 너무 가까운 탓이지요.

(박지원 지음, 「아무개에게 답함」,『연암집(중)』, 돌베개, 411쪽)

안 보이기로는 코끼리도 마찬가지다. 발등이 근질근질해서 쳐다봐도, 코끼리의 시선에서 개미는 보이지 않는다. 코끼리가 할 수 있는 합리적 의심은 ‘피부병이 생겼나?’ 정도일 거다.

코끼리와 개미의 상대적인 사이즈와 거리, 그것에 따라 전혀 체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무지가 어디에까지 힘을 미치고 있는지, 지금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알 필요는 있다.

항구에 돌아온 돌고래 덕분에, 이렇게 따뜻한 봄날 새파란 속살을 보여준 하늘 덕분에, 우리는 한 번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의 무지가 얼마나 많은 짓을 해왔는지 말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정말 다양한 생물종, 다양한 개체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 사이즈며 생김새는 천차만별이다. 우리 몸 안에도 수십만 종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고 하니, 엄청난 수의 삶들이 세상에 있는 것이다. 코끼리가 개미를 보지 못하고, 개미가 코끼리를 보지 못하는 것처럼 그저 내 세상에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엄청난 두려움을 가져왔고, 우리 스스로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는 시야가 더 좁아지고 경직되기 마련이다. 시선을 달리 해보면 어떨까? 이를테면 코끼리의 시선에서 개미의 시선으로. 우리의 잠시 멈춤이 세상에 어떤 일들을 가능하게 했는지 봐보자는 거다. 코끼리의 시선에서는 전혀 보지 못했고, 알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수많은 생물들의 시선에서는 거꾸로 인간이 바이러스고, 코로나가 그 백신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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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
Guest
소민

오랜만에 아침 일찍 일어나 보게 된 자연의 글ㅎㅎ 잘 읽었소~
글 보면서 나는 코끼리인가, 개미인가 생각했다는^^ 두려움의 크기로 보면 코로나가 엄청나게 쎄(!)보여서ㅎㅎㅎ

우리도 슬슬 일상을 찾아가는 듯 해ㅎㅎㅎ
공부의 힘이 코로나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어 다행인 것도 같고^^
베네치아 항구에 돌고래가 돌아왔다는 소식은 정말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