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성준입니다.

함백을 가려고 집을 나서니

집 앞에 노란 꽃이 핀 나무와 새싹이 돋아난 나무가 눈에 들어왔어요.

 

날씨가 따듯해지자 생명들도 긴 겨울을 지나 이제야

기지개를 펴며 본격적인 봄을 알려주는 듯합니다 ^^

 

청량리역에서 정미누나를 만나 기차에 탑승!

이번에 바뀐 새로운 기차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책상이 있다는 게 참 좋습니다.

책을 여러 권 올려놓고 읽을 수도 있고 주역을 쓸 수도 있거든요 ㅎㅎ

특히 요즘은 사람이 없어서 누나랑 좌석을 두 개씩 쓰는데

책상도 두 개라 기차에서 편하게 공부하며 가고 있답니다.

 

기차에서 내리니 함백도 완연한 봄이네요~

이번 주 세미나는 다시 정이천의 『주역』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뒤따름을 뜻하는 수(隨)괘와 개혁을 뜻하는 고(蠱)괘 였습니다.

먼저 수 괘에서는 대상전이 인상적이었답니다.

「상전」에서 말했다. 연못 가운데에 우레가 있는 것이 수괘의 모습이니,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어둠이 내리면 들어가 휴식을 취한다.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어둠이 내리면 들어가 휴식을 취한다”는 것은 군자는 낮에는 쉬지 않고 스스로 힘쓰다가 어둠이 내리면 집에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면서 그 몸을 편안하게 하니, 모든 행동거지를 때에 따라 마땅함에 적합하게 한다. 『예기』에 “군자는 낮에 집 안에 거하지 않고 밤에 집 밖에 있지 않는다”라 했으니, 때를 따르는 도다.

-정이천 저, 심의용 옮김,『주역』, 글항아리, 387쪽

저는 요즘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공부하고 있는데 그 책에서는 인식을 4가지 단계로 나누고 있습니다.

감각을 통한 인식과, 정보를 통한 인식, 이성을 통한 인식과 제 3종 인식이라 부르는 신의 속성으로부터 타당한 관념을 형성하는 직관적 인식입니다.

 

여기서 감각과 정보를 통한 인식은 오류를 가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참된 관념을 형성하는 것에 부적절합니다.

스피노자는 참된 관념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이성과 신의 속성에 대한 직관적 인식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3종의 인식이 무엇인지가 저한테는 의문이었습니다.

스피노자에게 신은 자연과 같은 것인데 이 자연의 속성으로부터 추론하는 이 인식은 과연 무엇일까요?

 

위의 인용문이 이 질문에 대한 힌트가 되어줬습니다.

해가 뜨면 밖에 나가 활동하고,  밤이 되면 집에 돌아와서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자연의 질서에 맞게 행동하고 자연의 이치로부터 생각을 형성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그것은 인간도 이 신이라는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스피노자는 다수의 개체가 모두 동시에 한 결과의 원인이 되도록 협동한다면 그 다수의 개체를

하나의 단일한 개체로 간주합니다.

 

즉 우리의 신체에 수많은 세포가 있지만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를 하나의 개체로 여기는 이유는

이 수많은 세포들이 이 인간이라는 우리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협동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세포라는 ‘부분’들은 인간이라는 ‘전체’와 합일 돼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자연의 운행과 이치에 맞게 행위하고 사유할 때

인간이라는 ‘부분’이 자연이라는 ‘전체’와 합일됩니다.

 

이렇게 합일이 되는 순간 왜소한 인간이라는 개체는 자연과 접속하게 되면서

존재는 무한히 확장되고 충만감이 차오르게 됩니다.

 

참 어려운 이야기지요? ㅎㅎ

아직 저도 스피노자를 공부하는 중에 있기에

아직 어렴풋한 느낌만 가지고 쓰다 보니 쉽게 쓰여지지가 않네요 ㅜㅜ

 

다음 고괘를 보면서도 또 스피노자가 떠올랐답니다 ^^;

“선갑 3일 하며, 후갑 3일 해야 한다”는 것은 끝마치면 시작이 있는 것으로, 하늘의 운행이다.

시작이 있다면 반드시 그 끝이 있고, 그 끝이 있으면 또 다시 새로운 시작이 있으니, 이것이 하늘의 도다.성인은 이러한 시작과 끝의 도리를 알기 때문에 시작을 근원적으로 탐구하여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궁구하고,  그 끝을 예측하여 앞으로 일어날 일을 대비한다. ‘선갑후갑’을 통해서 사려하게 하니, 부패를 다스려 크게 형통할 수 있는 이유다.

-정이천 저, 심의용 옮김,『주역』, 글항아리, 405쪽

시작을 근원적으로 탐구하여 일어난 원인을 궁구하고, 끝을 예측한다는 것은

결국 ‘인과’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만 하면 과거도 미래도 얼마든지 알 수 있다는 이야기로 해석이 되었습니다.

 

이 부분을 누나와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철학을 하고 공부를 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원인과 결과’를 올바르고 정확하게 구성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답니다.

 

그 방식은 제가 작년에 공부하던 양명처럼 실천과 마음의 탐구를 통해서 이루어지기도 하고

스피노자처럼 논리학을 통해서나, 불교에서처럼 명상을 통해서 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아내가 설거지하고 제가 아들 겸제를 보다가 다친 적이 있는데

분명 제 잘못인데도 불구하고 아내를 탓하고 싶은 감정이 올라오는 걸 경험했었어요.

‘왜 지금 설거지 해가지고, 왜 이 물건을 여기다 놔가지고’ 하면서 이상한 인과를 만들더라구요.

어떻게 해서든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감정이 그런 이상한 원인과 결과를 만들어 내더라구요 ㅎㅎ

그런 잘못된 원인과 결과를 바로 잡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공부의 힘 아닐까요?

 

정미 누나는 이번에 방학 동안 명상을 통해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이상한 인과를 구성하면서 여러가지 사건들을 부정적으로 인식 했었는지 경험담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작년과 다른 태도로 공부하고 생활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어주었다고 합니다.

(위에 누나의 사진이 뭔가 깨달음을 얻은 사람 같지 않나요? ㅎㅎ)

 

누나와 즐거운 세미나를 끝내고 산책을 나갔어요.

 

텃밭에는 초록 풀들이 돋아나고

나무들은 싹이 움트고

하늘은 따듯한 햇볕을 비추고

찰랑찰랑하게 빛나는 냇가의 모습들이 봄을 실감 나게 해주지요?

 

오늘의 간식은 바로~바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정미누나표 떡볶이랍니다.

그런데 성민이 어머님께서 어떻게 아셨는지

떡볶이와 찰떡궁합인 만두 튀김과 치킨너겟을 선물로 보내주셨습니다.

덕분에 아이들과 저희는 맛있는 떡볶이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어요 ㅎㅎ

 

오늘은 선물이 들어오는 날일까요?

명진이 지수도 아이들과 먹을 간식과 함께

겸제를 위한 장난감 선물을 들고 왔네요 ㅎㅎ

 

수업은 다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기 위해

멀~찍이 떨어져서 개인 접시로 간식을 먹었답니다 ㅎㅎ

 

명진이 지수와는 곰샘의『읽고 쓴다는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를 읽기 시작했어요.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다름 아닌 무지다. 세계의 이치를 알지 못하면 늘 길을 헤맨다. 한발 내딛기도 벅차다. 동시에 마음의 구조를 알지 못하면 늘 충동과 망상에 휘둘린다. 그때 브레인은 삶의 지도가 아닌 번뇌의 원천이 된다. 어느 쪽이건 무지는 단절과 적대를 낳는다. 외로움과 괴로움에서 헤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생을 잘 보존하려면 무엇보다 무지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고미숙 저, 『읽고 쓴다는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북드라망,  40쪽

명진이는 이 대목을 보고 “배움의 고통은 잠깐이지만 무지의 고통은 영원하다”라는 말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게 너무 많아서 배우는 것, 공부하는 게 쉽지가 않다고 하네요 ㅎㅎ

그러면서 감이당에서 하는 공부가 뭐냐고 물었습니다.

저희가 하는 공부는 무엇일까요?

앎과 함께 인간의 길이 시작된다. 인생이란 길 위에서 ‘길’ 찾기다. 길을 찾으려면 지도가 있어야 한다. 앎이 바로 지도다. 앎이 없으면 정처없이 방황할 수 밖에 없다.

-앞의 책,  46쪽

위의 인용문처럼 저는 삶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라는 답을 했습니다.

 

사회에서 주어진 가치와 길에서 벗어나

진정 행복할 수 있고 자유로울 수 있는 나의 길을 찾는 것!

그게 제가 생각하는 공부입니다.

읽기는 듣기의 변주라고 했다. 신의 목소리를 듣고 우주의 진동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다. 들었으면 응답해야 한다. 정직하고 진실하게. 이것이 인간의 길이다. 알라는 “인간을 창조했으며 그에게 명확성을 가르쳤다”. (칼둔, 「무깟디마」2, 141쪽) 그런데 지금 교육은 책을 읽되, 책에 담긴 존재의 원리와 세계의 이치를 완전히 무시한다. 신의 목소리를 듣고도 응답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질문이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의 계시를 듣고 천지의 이치를 알았는데 어찌 질문이 없을 수 있는가. 안다는 건 질문한다는 뜻이다. 묻고 답하고 다시 묻고 그것이 앎이다. 그러니 질문이 없다는 건 책에 담긴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 하여, 책에 담긴 원리와 이치, 삶의 서사 등은 허공을 맴돌고 있다. 아무에게도 가닿지 않는 메아리가 되어.

-앞의 책 61쪽

이건 지수가 뽑은 대목인데요. 지수는 이걸 읽고 ‘안다는 게 뭐지?’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인용한 문장을 읽고 든 제 생각은 ‘모른다는 걸 아는 것’이었습니다.

 

위의 인용문을 읽으면서 바로 전날 장자스쿨에서 곰샘이 저에게 코맨트해 주신 말이 생각났답니다.

 

“성준이는 문제의식이 잘 스며들지 않는 것 같아.”

그리고 나서 조원들이 곰샘의 지적이 왜 그런 것 같냐고 질문했을 때

제대로 답을 못했는데 저 문장을 읽고 나니 아마도 제가 ‘안다고 여겼기 때문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에 양명을 공부하면서 제가 양명을 안다고 생각하고, 아는 것을 설명하려고만 했지

내가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하면서 파고 들어가지 못했던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올해는 스피노자를 공부하면서 하나하나 물어가면서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해 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답니다 ㅎㅎ

 

수업이 끝날 때 쯤 옥현이모가 오셔서 오랜만에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명진이 지수를 배웅하며 같이 산책을 갔어요.

 

산책하며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을 보고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에는 겨우 하나 보이네요 ㅎㅎ

 

찰랑찰랑 빛나던 냇가의 밤 풍경도 참 분위기 있죠?

다음 날 아침에는 옥현이모가 바쁘셔서

오랜만에 누나와 함께 예미역까지 걸어갔어요.

따듯한 햇볕을 받으며 걸으니 기분도 좋고 몸도 개운하더라구요.

가면서도 열심히 주역을 외우고 있는 정미 누나의 모습!

 

이번 후기가 어쩌다 보니 평소보다 많이 길어진 것 같네요 ㅎㅎ

정미누나와, 아이들과 세미나를 할 때

주거니 받거니  질문과 답, 이야기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촉발 시키며 즐겁게 공부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럼 다음 주에도 즐거운 공부와 활동으로 또 찾아 뵙겠습니다~^^

 

다들 건강하세요~!

 

P.S 겸제 이야기가 잠깐 나온 김에
코로나 때문에 연구실도, 함백도 못 가고 있는 겸제 근황 전해요~^^

이제는 훌쩍 커서 놀이터도 놀러 가고 고양이도 잡으러 다닌답니다 ㅎㅎ

피자 장수 겸제

마리오 겸제

코로나가 얼른 끝나서 겸제와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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