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영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연암의 나이 서른 다섯 때의 일입니다. 연암의 절친한 친구 이사춘이 참수형을 당합니다. 온 몸이 찢겨져 버린 친구의 시체, 노비가 되어 살아가야 하는 그의 처자식. 당시 가장 무거운 죄인 역모 죄 취급을 받았던 것이죠. 하지만 역모라니요. 이사춘이 한 일은 역모는커녕 향간에 떠돌고 있던 책 한 권을 빌려보았던 것이 다였고, 이사춘의 죽음 전까지만 해도 누구도 그 책을 읽는 것이 감옥에 갈 정도로 불경한 일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연암의 삼종형이자, 화평공주의 남편인 박명원도 그 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혀 납득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친구의 죽음에 연암은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모조리 끊어버립니다. 경조사에도 일체 발길을 끊어버리고, 최소한의 밥 지을 물과 불을 얻을 때 빼고는 집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이러한 처사로 미친놈이라는 욕을 들어도 연암은 교제가 끊기는 것을 오히려 달갑게 여깁니다. 연암은 왜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요? 친구를 죽음으로 몬 사회에 대한 분노였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더 이상의 아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그는 그의 절친한 친구 유언호, 황승원이 유배되어 섬에서 죽게 되었어도, 안부 한 글자 묻지 않는데요.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이 처참한 일을 겪는 것을 더 보다가는, 자신이 무너져버릴 게 뻔히 보여서 일종의 방어본능처럼 인연을 끊어버리는 쪽을 택한 게 아닐까요.

하지만 홀로 살아가길 택한 연암에게 친구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은 듯합니다. 그 중 연암보다 12살 어린 제자이자 벗인 이몽직이 있었습니다. 몽직은 달 밝은 저녁과 함박눈이 내린 밤이면 술을 잔뜩 가지고 와 연암과 거문고를 퉁기고 그림을 평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연암이 문득 달빛 아래에서 몽직이 생각나면, 몽직은 어김없이 문을 두드렸다고 할만큼 서로마음이 통하는 친구였는데요. 그런 이몽직마저 어처구니 없게도 화살에 맞아 죽습니다. 젊은 나이, 스물 다섯에 말이지요. 연암은 이 죽음 앞에서는 어떤 심경이었을까요. 몽직의 향한 그의 애사문은 덤덤한 듯 하면서도 슬픔이 뚝뚝 새어나옵니다.

대개 생각은 다 망상이요, 인연은 다 악연이다. 생각하는 데서 인연이 맺어지고, 인연이 맺어지면 사귀게 되고, 사귀면 친해지고, 친하면 정이 붙고, 정이 붙으며 마침내 이것이 원업(冤業)이 되는 것이다. 그 죽음이 사춘처럼 참혹하고 몽직처럼 공교로운 경우에는, 평생 서로 즐거워 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데 마침내 재앙과 사망으로 고통이 혹독하여 뼈를 찔러대니, 이것이 어찌 망상과 악연이 합쳐져서 원업이 된 게 아니겠는가. 만약에 몽직과 애당초 모르는 사이였다면, 아무리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더라도 마음이 아프고 참담한 것이 이처럼 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박지원, 『연암집』(중), 「이몽직에 대한 애사」, 돌베개, 252쪽)

사람을 사귈 때 얼마나 마음을 다해야, 그의 죽음이 뼈를 찔러 댈 만큼 온 몸으로 아플 수 있을까요. 얼마나 친해지고 정이 붙어야 그 인연 자체가 악연이라고 말할 만큼 괴로운 것일까요. 저는 사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어본 적이 없어 사별의 아픔에 대해서 얘기할 순 없지만, 누군가와의 이별에도 그리 괴롭다고 여기지 않을 만큼 덤덤했었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아파하는 연암을 보며, 사람들과 그동안 적정선을 치고 살아왔던 걸 더 이상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좋은 게 있으면 나쁜 점도 있다고, 관계도 변하기 마련이라며 적당히 선을 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마음을 다하지 않아서 그간 이별의 아픔도 잘 알지 못했던 게 아니었을까요? 그냥 적당히 사람을 만나는 걸로는 악업조차도 될 수 없습니다. 애당초 모르는 사이였다면 아프지도 않았을 거라 말하는 연암의 말처럼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인연이 사귐이 되고, 친해지고, 정이 붙어 그 찰나의 정 때문에 괴로워져도, 그 인연을 맺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lights-788903_640

그렇게 마음을 쏟고,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연암을 배우고 싶습니다. 연암이 묘비명, 애도문 등 죽은 이를 위해 쓴 글을 씨앗문장으로 쓰면서요. 연암은 당시 정해진 형식에, 업적이나 전형적인 모범행실을 적었던 기존의 묘비명 거부합니다. 대신 일기장에 적지 않으면 그냥 지나쳤을 법한 사소한 장면을 담으며 파격적인 묘비명을 짓습니다. 죽은 이와 관련없어 보이는 모르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인연을 맺고 정을 붙인 벗으로서 지은 그의 글을 보며 그의 마음을 따라가고자 합니다.

4
댓글

avatar
최근 항목 오래된 항목 인기 항목
예민한코끼리
Guest
예민한코끼리

모든 인연을 다 악연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아프고 괴롭더라도
마음을 다해 사람을 사귀고, 그런 관계들이 자기 생의 씨앗 문장이 되는 연암의 삶,
그런 연암을 깊숙하게 만나고 있는 다영샘…
모두 부럽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다영
Guest
다영

감사합니다 쌤^^ (사실 ‘깊숙하게’라기보단, 연암의 겉면만 보는 건 아닌지, 계속 그냥 큰소리만 치고 있는건 아닌지, 이렇게 말해도 되는 것인지 온갖 의심과 막막함으로 연암을 만나고 있어요ㅋㅋㅠㅠ)

moon彬
Guest
moon彬

연암이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을지…
저도 연암처럼 깊은 관계를 만들려면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네요~

다영
Guest
다영

그러게요!! 어쩌면 우리에게는 ‘우와!’하고 특별하게 여겨지는 그 깊은 관계가 연암에게는 참 지극히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관계일텐데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