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스폐셜 정리

질문자1: 아이를 교육시켜야 하는 것과 있는 그대로 보면서 사랑해주는 것 사이에 어디에 중심을 둬서 어디까지 가르쳐야 하고 어디까지 훈육을 해야 하는 걸까요?

정화 스님: 사랑한다는 것 가운데는 아까 말한 대로 한 10번씩 사랑을 표현했으면 따끔하게 한 두 번 정도는 제지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제지할 때는 절대 떼를 쓰는 아기에게 져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아무리 울고 해도 절대 지지 않고 그냥 놔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8번 10번은 좋아해야 하고. 이렇게 하면 이때 감정에서 애들은 서운하지만 몇 번 하고 나면 애들은 코드가 바뀌어서 일주일만 지나면 “하지마”라고 하는 것이 주는 불유쾌한 기운들이 다 사라집니다. 확실하게 제지를 하지 않으면 부모가 다 지면서 여기가 연결망이 잘 안 될 확률이 많아요. 기본적으로는 좋아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좋아하는 것을 10번 좋아한다고 표현했으면 한두 번은 따끔하게 견제를 하고 절대 부모가 져서는 안 돼요.

질문자1-2: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어떤 때는 자의식이 올라오고, 어떨 때는 자의식을 잊어버리고 접속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를 잊어버리고 대화하는 것을 어린아이 같은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이렇게 자의식 없이 얘기한다는 걸 어떻게 하면 제가 의식적으로 이룰 수 있을까요?

정화 스님: 사람은 갑자기 자기가 생각을 생각할 수 있는 기관이 하나 생긴 거예요. 눈이 생기니까 눈을 뜨면 보이듯이 조금만 관심을 안 가지면 자기가 올라와요. 너무나 자기가 올라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그것이 올라오면 그것으로 이 사건을 그냥 평화롭게 보는 훈련을 해야 해요.

그것이 사라지는 것은 어떤 사건에 몰입될 때인데 문제는 뭐가 있냐면 몰입을 해서 어떤 것을 신체적으로 잘 만들어가기는 하는데 그것을 아까 말한 대로 융합해서 무언가 통찰력을 기르는 데는 뒤에 있는 자기가 이 전체 사건을 보는 게 필요한 거예요. 그것이 없으면 그냥 현재 그 사건에 몰입해서 일을 잘할 수는 있어요. 불교에서는 이 몰입도 중요하지만, 생각을 생각하는 놈을 깨워서 이 사건을 흘러가도록 보는 것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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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자의식을 가지고 ‘존중받았다, 존중받지 못했다’ 이런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그냥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마치 뒤에서 보고 있는 사람처럼 보는 훈련이 중요한 거예요. 이것을 불교에서는 관찰이라고 해요. 그런데 이것이 일어날 때, 몰입해 있을 때는 그런 자의식이 없으니까, 그냥 거기서 함께 잘 어울리는데 딱 올라오면 사람들은 ‘내가 존중받고 있는가? 비난받고 있는가?’ 이것이 올라오는 거예요.

그 태도에 문제가 있어요. 존중받고 있다고 자기가 판단하면 그때 머릿속에서는 존중받는 사건이 되는 거고, 존중받지 않는다고 말하면 이 정보가 비로소 존중받지 않는 정보가 돼요. 잘못 설정해서 만들어내는 것을 내려놓고, 자기 있는 곳을 그대로 보는 훈련을, 자기 일어난 생각, 흘러간 풍경, 이런 것을 잘 관찰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관수행(觀修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그냥 몰입 상태로서 하는 것도 중요하고, 앉아서 호흡 관찰하고 있는데 그냥 호흡이 하나 되듯이 쭉 흘러가는, 그다음에는 보고 있으면 그것을 아는 놈이 있잖아요. 그것이 잘 깨어 있어서, 그냥 거기에 대해서 특수한 의미를 만들지 않고, 그냥 보고 있는 이런 훈련이 두 개가 다 같이 필요합니다.

질문자1-2: 자의식이 올라왔을 때도 그걸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신가요?

정화 스님: 그렇죠. ‘자의식이 올라왔구나’ 빨리 안 다음에, 거기다 대놓고 이쪽에서 내가 이 관계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저쪽에서 만드는 의미를 내가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살펴서 그냥 일어나는 것을 존중하는 훈련을 자꾸 하는 거예요. 그냥 존중하는 훈련이 이 상황을 존중받는 의미로 만드는 거예요. 들어오는 정보가 의미가 있는 게 아니고 의미가 해석돼야 의미가 있어요. 그래서 아까 말한 대로 부모님께서 10번쯤 잘했다고 존중받고, 한두 번은 확실하게 견제하면서 존중받는 신체를 만든 경험이 많으면, 이 사건을 존중받는 사건으로 해석하는 게 수월해요.

그런데 부모님들은 대부분 자식들에게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를 너무나 많이들 하니까 마치 자기 하는 일을 존중받지 못하는 감정과 기억들이 많이들 있어요. 그래서 실제보다 더 자기가 존중받지 못하다고 정보를 해석할 경향성이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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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까지는 어떡하겠어요, 이미 그런 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올라오면, ‘아 지난 세월 쌓여있던 정보들이 지금의 나를 존중받지 못한 나로 파악하려고 하고 있구나.’ 하면서 ‘감독님 영화를 잘못 돌렸어요.’ 이렇게 빨리빨리 이야기하면서 그 상황을 ‘내가 해석한 거야.’라고 보면서 빨리 존중받지 못한 상황이 아니고 ‘이런 걸 하는 것 자체가 존중받는 상황이야.’라고 해석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질문자1-2: 몰입하는 것 자체도 같이 봐야 하나요?

정화 스님: 몰입했다고 하는 말은 보는 것은 있는데 생각이 없는 상태와 똑같아요. 일을 하는데 안에 보면 생각의 파동이 움직이는 게 아니고 생각하지 않는 파동이 움직여요. 예를 들면 컵 쌓기 대회 챔피언이 있어요. 8살인가 그 애가 컵을 쌓을 때 머릿속에 어디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관찰하기 위해서 연구원들이 그 아이 머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했어요. 컵 쌓은 챔피언이 뭐 몇 초 안에, 한 5초 안에 끝나 버리더라고요. 여기에 있는 연구소의 40대 중년들은 한 40 몇 초 걸려요. 그 일을 다 끝내려면. 연구원들의 머리는 이거를 이렇게 했다가 저렇게 했다가 하는 생각들이 계속 돌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얘는 딱 집중하는 순간 생각이 없어져요. 이 일만 해요. 신체가, 예를 들면 자전거 탈 때 자전거를 한 번 배우고 나면 ‘어떤 각도로’ 하는 생각이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런 식으로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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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 식으로 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고 아까 말한 대로 보통 때는 이제 관찰자를 깨워 성이 나면 성이 난다고 이렇게 생각할 거 아니에요. ‘내가 지금 성나고 있어.’ 이렇게요. 그냥 놔두면 흘러가는데 이때 중요한 것이 딱 올라오는 순간부터 90초를 평정하게 보는 훈련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 90초가 중요하냐면 감정이 안 좋으면 안 좋은 감정을 만들어내는 호르몬이나 신경조절물질이 뇌로 쫙 퍼져요. 그 퍼져서 머무는 시간이 90초에요. 1차로 올라오는 것은 내가 이미 익혔었던 경험 조각이 올라온 거예요. 이것을 내가 알았잖아요. 알고 지켜보면 90초간 지나면서 쓰윽 흘러나가면 다시 안 올라와요.

지켜본다는 말이 있다는 것은 이제 그 감정을, 과거에 또 어쩔 수 없이 이미 올라와 버렸으니까 지켜보면서 다시 화를 내서 그 신경 물질들을 끄집어내지 않는 일이에요. 화 상태로 몰입될 수 있잖아요. 그러면 계속해서 그 물질을 끄집어내는 거예요. 90초가 900초가 되고 900초가 9000초가 막 되는 거예요. 그럼 자기가 막 죽어도 그렇게 하고 있는 거예요. 왜냐면 그것이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평정한 상태가 아니잖아요. 과도한 일을 하고 있는 상태에요. 그래서 몸이 엄청 힘들어요.

그런데 그 상태에 의식이 깨어 있으면, 아까 말한 대로 올라오는 건 할 수 없어요. 올라왔는데 가만히 물러서면 90초만 있다가 사라져요. 그래서 깨어 있음의 가장 큰 의미는 90초 운전이에요. 안 깨어 있으면 90초 할 겨를도 없다니까요. 싸움 그 자체에 몰입하게 되어 있어요. 계속 90초를 연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90초를 연장하지 않기 위해서는 안은 자기가 깨어 있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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