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영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연암은 이팔청춘 열여섯에 혼례를 올린다. 그런데 새 신랑 연암을 아내만큼이나 반가이 맞이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장인어른 이보천 처사이다. 급기야 장인어른은 연암에게 생관(처가에서 사위가 머무는 방)에서 머물라고 처가살이를 권유한다. ‘내 아우 글 좋아하여/ 벼슬에는 비록 소홀해도/ 문학에는 몹시 부지런하니’(연암집(중), 234쪽) 자신의 아우를 스승으로 삼으라는 의미에서였다. 연암은 결혼을 함으로써 배움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연암은 장인 이보천에게는 『맹자』를, 장인의 아우 이양천에게는 『사기』를 배우며 문장 짓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연암의 아들 박종채가 아버지는 초년(初年) 문장은 전적으로 맹자와 사마천의 사기에서 힘을 얻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문장에 기운이 펄펄한 것은 그 근본 바탕이 있음을 알 수 있다(『나의 아버지 박지원』, 186쪽)라 할 만큼, 이 두 스승의 가르침은 연암에게 글의 바탕이 되었다. (그래서 올해 동고동락에서 1년동안 『맹자』 배우는데, 연암에 이어 맹자라니 기대가 된다!)

특히 연암에 대한 이양천의 사랑은 각별했다. 연암의 말에 따르면 자신에 대한 이양천의 사랑은 장인보다 더 깊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이 애정이 깊은 만큼, 공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엄격하게 가르치셨다. 경서를 볼 때 사정 안 봐주는 것은 기본이고, 물가로 놀러갔을 때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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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암벽 맑은 샘에서

공은 갓끈을 씻고

기수(沂水)에서 목욕할 제 입을 새옷

그날에 다 지어졌는데

이 소자 돌아보며 이르시길

어찌 물에서 보지 않느냐

웅덩이를 채우고야 나아가니

뜻 이루는 것도 이 같은 법

흘러가는 냇물처럼 바빠야 한다

그 말씀 아직도 귀에 쟁쟁

이제 와서 생각하니

공의 마지막 가르침이셨네

 

( 박지원, 『연암집』(중), 「영목당 이공에 대한 제문」, 돌베개, 236쪽)

하루는 이양천과 연암이 물놀이를 하러 간 모양이다. 열아홉의 연암, 그저 별 생각이 물을 보며 거닐고 있는데 따끔한 스승님의 한 말씀이 들어온다. ‘어째서 지금 배움을 놓은 게냐’라고. 그 말을 들은 연암, 아마 정신이 바짝 차려졌을 거다. ‘아, 내가 미처 못 봤구나. 아직 갈 길이 멀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빈틈을 콕 꼬집어 내는 사람, 수많은 갈림길 앞에서 헤맬 때 등불이 되어주는 사람, 게으르면 잡아주는 사람. 그래서 연암은 스승 앞에서 언제나 ‘노둔하고 어리석은 소자’이다. 스승에게서 연암은 자신의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그 시대를 떠들썩하게 한 문장가인 연암은 스승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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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그 작아짐이 배우는 자세라는 걸 늘 까먹는다. 스승 앞에서 작아짐 대신 혼나지는 않을까, 아님 잘 보이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그래서 연암은 스승 앞에서 작아짐으로 자신의 상태를 직면하는 반면, 나는 스승 앞에서 늘 내 상태를 보기를 회피한다. 내 가 모자라다는 건 그만큼 갈 수 있는 세상이 있다는 걸 말하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제문 끝머리에 연암은 죽은 스승에게 문장 비록 졸렬해도가슴속에서 우러나왔고제물 비록 박하지만 정례(情禮)로써 올린 거니밝으신 영령이시여이 술 한 잔 받으소서(같은 책, 238쪽)라고 고한다. 이 말은 평생을 당신을 스승으로 삼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끝없이 스스로를 깨우치며 가겠습니다라는 뜻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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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팽
이달팽
7 months ago

오.. 이 묘비명이 이렇게 재밌는 글이었다니! 몰라봤습니다 !!

‘그만큼 갈 수 있는 세상이 있다’라는 말 멋있어요!
언니 글 읽으며 스승과 배움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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