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하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요새 연구실은 탁구 열풍이다. 운동을 안 좋아하는 나도 덩달아 탁구를 배우고 있다. 연구실에서 친구들과 탁구를 치다보면 재밌는 건, 똑같은 선생님한테 똑같은 자세를 배워도 각자 참 자기스러운(?) 자세로 치고 있다는 것이다. 탁구를 가르쳐주는 형은 그중 나의 탁구 스타일을 보고는 ‘lazy’ 탁구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나의 신체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만 공을 넘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게으른’ 행태는 탁구뿐만이 아니라 많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대사를 유지하는 것부터(운동 안함), 애인과 싸울 때 감정적 마찰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습관(뭐가 됐든 일단 싸움을 빨리 종식시키고자 함), 친구의 이야기를 들을 때 저항감을 느끼지 않는 습관(다르게 느끼면 피곤해서인가?),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것들이 잘 기억이 안 나고(뭔가 ‘느껴지면’ 넘겨버림) 불편한 감정은 없던 것처럼 생각하며, 불편한 말은 잘 안하고…등등.

그런 일들을 돌아보며 ‘그래서 내가 뭘 하고 싶었던 거지?’를 생각해보면, 공부를 헛했나 싶을 정도로 내 안은 텅 비어있는 느낌이다. 나는 그저 갈등이 싫고, 힘쓰기가 싫고, 편하게 살고 싶었던 거다. (편하다는 단어를 이렇게 모독해도 되나 싶다;;) 그 밖엔… 뭐가 크게 없다! 사유도, 철학도, 심지어 욕망도…(거의)

이런 사람이 필연적으로 다다르는 질문 아닌 질문이 하나 있는데, 바로 ‘왜 사나?’다. ‘편함’에 대한 욕망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다 보면, (논리적으로는) 죽는 게 가장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 때 ‘귀찮다’를 입에 달고 살던 나에게 엄마는 그렇게 귀찮으면 관 짜줄 테니 들어가라고 하셨다^^;;)

(맹자)에 이르기를, “사람은 제 몸을 골고루 사랑하니, 제 몸을 기르는 것도 골고루 하려 한다. 그러나 몸의 작은 부분으로써 큰 부분을 해치지 말고 천한 부분으로써 귀한 부분을 해치지 말라” 하였다. 그러므로 왕응의 아내는 도끼를 가져다가 자신의 팔목을 끊어서 그 몸을 깨끗이 하였던 것이다. 팔목이 이미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라면, 그 대소와 귀천이 어찌 한 점의 살이나 한 올의 머리털에 비할 바이랴. 그런데도 장차 자기 몸에 오물이 묻을 듯이 여겨, 이를 악물고 잘라 내어 조금도 연연해하는 마음을 갖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팔목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를 사랑하기를 왕씨의 아내같이 한다면 이는 사랑할 바를 안다고 할 것이다.

(「애오려기」,『연암집下』, 돌베개, p105)

「애오려기」는 집에 ‘애오려愛吾廬’(나를 사랑하는 집)라는 이름을 붙인 한 선비에게 연암이 준 글이다. 이 글에서 연암은 ‘나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말하면서 왕응의 아내가 자기 팔목을 자른 이야기를 언급한다. 그녀가 그렇게 했던 것은 죽은 남편의 유해를 들고 고향으로 오던 길, 중간에 묵으려고 들어간 여관 주인이 그녀를 수상히 여겨 쫓아낼 때 팔목을 잡아당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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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같이 ‘편하게’ 살려는 사람에게 이 이야기는 상당히 충격적이면서도 벅차다. 대체 어떤 힘이 스스로의 팔목을 끊게 하는 걸까? 그 팔목을 ‘사랑’하는 힘이다. 연암은 그녀야말로 ‘사랑할 바’를 아는 사람이라고, 맹자는 ‘몸의 작고 천한 부분’이 아니라 ‘몸의 크고 귀한 부분’을 사랑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내가 ‘게으르’지만 아주 애써서 사수하고 있는 ‘편안함’은 아무리 생각해도 ‘몸의 작고 천한 부분’이다. 그렇게 살다 보면 떳떳하지 않은 일들(겨우 나 편하자고 이랬다고? 싶은 일들)이 계속 생기고, 삶은 관을 짜서 누워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나날이 된다. 그보다 못하다면 못하고.

사람에겐 ‘몸의 크고 귀한 부분’이 필요하다. 그것을 기를 때 살맛이 난다. 공부를 하면서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확신이 들면 기쁜 것처럼. 왕응의 아내처럼 ‘몸의 작고 천한 부분’을 연연하지 않고 잘라내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삶을 사랑하고, 그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 평생을 관 속에서 살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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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영
다영
7 months ago

오옷! 관탈출이라니 반가워라ㅋㅋ 윤하얼굴에 화색이 돌겠군여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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