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스님 12월 선물강좌 중

'기억한다'는 착각

오늘 주제가 ‘유머란 무엇인가’ 라는 것인데 아마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유머가 아니겠는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유머를 기대하셨다라고 생각하신 분들은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저의 유머니까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시라고 이야기를 드립니다.

여기 이제 큰 울타리를 쳐놓고 원숭이 여섯 마리를 이틀간을 굶깁니다. 그런 다음에 이제 그 중에 두 마리를 이쪽 우리로 옮겨요. 그럼 이쪽 우리는 이제 나무에 바나나가 걸려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이틀을 굶었으니까 두 마리 원숭이가 와가지고 이 바나나를 막 따먹으려고 나무를 올라갑니다. 그러면 여기에 있는 어떤 실험하는 사람들이 원숭이에다가 소방호스로 물을 뿌립니다. 그럼 원숭이가 물을 싫어하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 물을 맞고 나면 그 원숭이가 이 바나나 까먹기를 포기합니다.

그렇게 포기한 두 마리가 시무룩하게 앉아있는데 다시 여기서 또 두 마리를 여기에 보냅니다. 이 두 마리는 새로 와서 배가 고파서 다시 바나나를 따먹으려고 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그러면 가만히 앉아있던 이 원숭이가 결사적으로 바나나를 못 따먹게 막습니다. 전에 실험할 때 심지어 싸워가지고 상처가 날 정도까지로 가로막는다고 합니다. 나중에 온 두 마리는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먼저 온 자기 동료가 못 따먹게 해서 못 따먹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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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난 다음에 처음에 왔던 두 마리 원숭이를 다른 우리로 옮깁니다. 그럼 여기 남아있는 두 마리 원숭이는 자기가 왜 첫 번째에는 물이라고 하는 것을 맞았기 때문에 (따먹지 않는 것이) 이유가 됩니다. 바나나를 따먹으러 가면 물이 쏟아지니까 안 가야지 이래요. 근데 두 번째 원숭이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동료가 말려서 못 따먹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두 마리를 보냅니다. 또 따먹으라고 보냅니다. 그 때도 마찬가지로 두 번째 온 원숭이 두 마리가 결사적으로 반대를 해서 바나나를 다 못 따먹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온 원숭이들은 아무런 연유를 모릅니다. 왜 이 상황에서 우리가 바나나를 따먹어야 되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즉 우리가 아는 것 속에는 이처럼 전혀 무엇인지 연유를 모르면서도 그것이 굉장한 지식인 양 담고 있는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지식을 답습된 지식이라고 그럽니다. 이렇게 한번 강화된 답습된 지식은 우리 뇌의 여러 곳에서 기억의 자모음으로 저장됩니다.

기억의 자모음이라고 하는 것은, 기억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사건을 통째로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니고, 제가 이렇게 보고 있는 사건 속에 들어있는 많은 정보들을 조각조각 냅니다. 그래서 어떤 것은 A영역, 어떤 것은 B영역 이렇게 해서 굉장히 많은 영역으로 나눕니다. 예를 들어 제가 여러분을 보고 있는 이 시지각이 완성되는 데에는 뇌의 30개 영역이 참가를 합니다. 뇌에는 그런 영역들이 180군데 정도로 나뉘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각은 현재까지 발견된 것에 의하면 한 30여 군데가 참여를 한다고 해요. 바꿔 말하면 제가 여러분을 보고 있는 이 시지각은 기억으로 갔을 때 30여 군데의 영역으로 흩어집니다. 즉 이 기억은 사라지는 거예요. 남아있는 것은 기억의 자모음밖에 없어요.

그래서 자식을 회상을 하게 되면 흩어져 있던 기억의 자모음들이 다시 모여야 됩니다. 근데 잠깐 지나고 나면 방금 이렇게 했기 때문에 떠오르기가 쉬운데 약간만 지나기 시작하면 참여하는 부위에서 방금 심어놓은 것이 나오지 않고 다른 엉뚱한 것이 막 나옵니다. 그러면 방금 기억하고 다른 기억이 됩니다. 우리가 굉장히 무엇을 잘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고 내가 기억하건대 틀림없다고 말하는데 사실상 아닐 확률이 굉장히 높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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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타이밍

두 번째, 기억을 끄집어내는 데는 얼마만큼 현재 내 상황이 거기에 개입하는가를 보여주는 통계가 하나 있습니다. 미국에서 ‘유치장에 갇혀있는 사람들을 감옥으로 보낼 것인가, 임시로 잘못을 저질러서 잡혀오면 이 사람을 바로 유치장으로 보낼 것인가, 아니면 석방을 해주고 재판을 받게 할 것인가’라는 것을 판단하는 그런 위원회들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아침 열한시 반쯤에 온 사람들은 온 사람 중에 한 25프로정도만 임시로 석방이 됩니다. 그런데 반대로 두시에서 한 세시쯤에 오는 사람들은 75프로가 석방이 됐어요.

이유는 거의 배가 고프냐 배가 부르냐의 차이랍니다. 얘가 지금 열한시 반인데 배가 고파가지고 빨리 일을 끝내고 나가야 할 때는 온 사람이 좀 짜증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어지간하면 그냥 석방 안 하고 정말 석방해야 할 사람만 석방하는 쪽으로 되는데, 배가 부르고 마음이 편안해지면 ‘왜 이런 사람을 잡아놨어’라고 하면서 잘 석방해줘요. 3배를 석방해요. 그러니까 한두 명 하는 게 아니고, 11시 반쯤에 온 사람 몇 백 명, 두세 시에 온 사람 몇 백 명을 계속 조사해봤더니 거의 3배를 (석방)하고 있어요.

내가 어떤 것을 보고 ‘야 너 왜 그래’라고 하는 순간 배가 부른 사람은 굉장히 그것을 좋은 쪽으로 해석을 할 확률이 높아지고, 배가 고픈 사람은 그걸 듣고 짜증을 낼 확률이 훨씬 높아집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세 가지 것을 고려해서 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자주 쓰고 있습니다. 시간,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 어느 곳에서 할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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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 있는 기억의 채널들이 움직여서 하는데 배가 고프면 엉뚱한 책을 읽게 되기 시작합니다. 배가 너무 너무 피로하면 그 때는 좀 잘해야 되는데도 다른 기억이 끼어 들어와서 사람이 마치 다른 사람처럼 그렇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외부에서 들어오는 또는 내부에서 들어오는 감각 정보가 출력할 때 이 안에 우리가 말하는 기억의 알고리즘이 막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 기억의 알고리즘이 움직여서 어떤 생각과 말과 행동이 밖으로 나오는데, 다른 동물하고 달리 사람은 이 과정에서 내가 알고리즘의 과정에서 자기가 가졌던 기억이 정보가 하나 들어오면 끼어드는 기억이 여섯 개 내지 열 개가 됩니다. 그래서 이 입력을 최종적으로 이미지로 만듭니다. 심상을 만드는 거죠. 심상을 만들어놓고 편도체라고 하는 곳으로 보냅니다. 편도체는 이제 만들어진 심상에서 저 심상을 대했을 때 어떤 감정이 거기에 있었던가 라고 하는 감정의 해석을 던져주는 거예요.

방금 말한 대로 전에 했을 때 별 것이 없었는데 지금 내 상태가 안 좋으면 ‘맞아, 그것이 안 좋은 것이었어.’라고 벌써 말과 행동과 톤이 안 좋게 나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것이 만들어질 때 자기 기억이 들어온 정보보다 여섯 배 내지 열 배 강력히 개입을 해가지고 최종적으로 출력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보면 거의 우리는 지금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자각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기억이 우리를 부리고 있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가 굉장히 자율적으로 이 사건을 바르게 판단한다고 말하고 있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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