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복

양자강(揚子江) 이남 지방의 숲속 시냇물에는 벌레가 있는데 그 이름을 단호(短狐) 또는 사공(射工), 또는 역()이라고 한다. 그 벌레는 눈알이 없으나 귀가 밝아서 잘 듣기 때문에 물속에서도 사람의 소리를 듣고 문득 입안의 독으로 사람을 쏜다 하여 사공(射工)이라고 한다. 또는 모래를 물었다가 사람의 그림자를 보고 내쏜다고 하여 사공(射工)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그 독에 맞으면 오한과 신열이 나고 답답해 날뛰며, 머리와 눈이 다 아프며, 또한 시체 독에 상한 것처럼 갑자기 말을 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수독(水毒)을 일으키는 벌레가 또 있는데 이것을 계온(溪溫)이라고 한다. 이것으로 생긴 병은 사공의 독으로 생긴 병과 비슷하나 헌데가 생긴 것은 사공의 독으로 인한 것이고 헌 데가 생기지 않은 것은 계온의 독으로 인한 것이다. 또한 사슬(沙虱)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독사의 비늘 속에 있는 벌레이다. 사공이나 계온의 독은 다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치료하는 방법은 끓는 물 두어 섬에 마늘 5되를 넣고 따뜻하게 하여 몸을 씻는다. 이때 몸에 벌건 반점이 생기면 그것은 수독에 상한 것이다. 또한 소수독음자(消水毒飮子)도 이런 것을 주로 치료한다.

(잡병편, 해독, 1606쪽)

절기로 청명(淸明)이 되었다. 4월 중순, 따뜻한 햇살에 움츠렸던 몸이 펴지고 창밖으로 흐드러진 꽃들이 보이니 절로 마음도 밝아지며 밖으로 나가게 된다. 바야흐로 꽃의 계절이다. 아직 부풀어 오르는 꽃봉오리들도 있지만 연한 꽃송이들이 검은 가지에 촘촘히 붙어서 더는 감출 것이 없다는 듯 꽃잎을 펼 대로 펴고 있다. 바람이 불면 꽃잎을 잔뜩 매단 가지들이 물결처럼 넘실거린다. 먼저 핀 꽃들은 바람에 날리며 꽃비까지 내려주고 있으니 이 계절 꽃구경 안 하면 제대로 사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자연이 베풀어준 축복을 흠씬 누리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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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무심코 꽃이 진 자국을 보면 어느새 쬐그만 알맹이가 맺혀있다. 열매다. 그렇다. 꽃은 우리에게 아름답게 보이려고 혹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핀 게 아니었다. 열매를 맺기 위해 벌과 나비를 꾀어 수정하려고 그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를 뽐낸 것이다. 자기 살 궁리로 청명을 맞아 마음껏 피었던 거다. 꽃뿐이랴. 자연의 만물들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 자기 살 궁리로 살아간다. 다만 자신이 살려면 타자가 없어선 안 되겠기에 그들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꽃이 자기가 살기 위해 햇살과 바람, 나비와 벌들과 인연을 맺듯이. 그들의 관계 맺음이 우리 인간에게 도움이 되면 우리는 그것을 인간을 위한 것이라 착각하고 우리를 아프게 하거나 병들게 하면 독이나 재해라고 부른다. 인간은 인간 위주로 생각을 한다.

양자 강 이남 지방의 숲속 시냇물에 사는 벌레도 인간에게 해를 입히려고 독을 인간에게 쏘아대지는 않는다. 그저 그게 자기가 사는 방식일 뿐이다. 눈이 없는 탓에 상대적으로 귀가 더 발달해서 사람이든 동물이든 소리만 들어도 독을 쏘아대야 자신을 방어하여 살 수 있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자연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노자도 ‘천지는 불인(不仁)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자연(自然)은 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한 세계이다.

하지만 사람의 입장에선 재수 없는 노릇이다. 공격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보지도 않고 단지 물가를 지나갔을 뿐인데 물속에서 독을 쏘아대다니. 이럴 땐 아무래도 자연은 매정하고 무서워 보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자연엔 그 독을 해독할 수 있는 약재도 반드시 있다는 거다. 위의 경우엔 소금물과 마늘만으로 해독시킬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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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동의보감』엔 평범하지 않은 약재들도 많이 나온다. ‘벼락 맞아 죽은 짐승의 고기’, ‘뽕나무에 자란 사마귀알집’, ‘소나무 그을음으로 만든 먹’, ‘임질 있는 사람의 오줌에서 나온 돌’ 등. 신화 속 주인공이 부모를 위해 몇 년씩 헤매어야 겨우 구할 듯한 약재들이 많이 있다.

그래도 하나의 약재로만 이루어진 단방(單方)들이 많고 대개는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단풍나무 버섯을 먹으면 계속 웃다가 죽게 만드는데 이럴 때는 지장(地漿水)을 마시는 것이 제일 좋고 사람의 똥물은 그다음이다. 다른 약으로는 구할 수 없다.’(1601) 버섯의 독이 사람을 웃게 만든다 하니 우습다가도 웃다가 죽는다 하니 심각해진다. 증상은 이처럼 심각한데 약은 구하기 쉬운 것이다. 지장수와 똥물. 지장수란 비온 뒤의 흙구덩이에 고인 물이다. 한의학에서 웃음은 심장이 주관하는 양기(陽氣)의 활동이다. 계속 웃는 것은 양기가 치성한 상태다. 비 온 뒤의 흙탕물은 음기(陰氣)가 녹아 있는 물. 양기에 음기를 섞어주면 치료가 된다. 똥물도 얼마나 구하기 쉬운가.

어떤 경우엔 심지어 사람의 비듬이 약이 되기도 한다. 저절로 죽은 새나 짐승의 간을 먹고 중독된 때는 사람의 비듬 1돈을 뜨거운 물에 풀어 복용한다.’(1604) 이쯤 되면 ‘천지 만물이 다 약이다’라고 할 만하다. 그 약재들은 우리 인간을 구해주기 위해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가 약으로 쓰는 순간 약으로 탄생한다. 그래서 병으로 고통받다가도 자연의 축복인 양 감사하게 된다. 병 주고 약 주는 자연, 병과 약의 궁합. 이 좋은 봄날 꽃 나들이 갔다가 봄나물 캐러 갔다가 불시에 자연으로부터 어떤 공격을 당할지 모를 일이다. 사공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독을 쏘아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동의보감』을 방문해보시기를. 병에 대한 설명 바로 밑에는 병보다 많은 처방들과 약재들이 촘촘히 등장한다. 거대한 ‘원더랜드’의 세계이다. 별별 독에 별별 해독제가 궁합을 맺는 것을 볼 수 있다. 내 몸에서 그들의 인연이 펼쳐지고 있으니 신기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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