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영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요즘따라 힘을 빡 주고 있는 나를 더 자주 발견한다. 알바 할 때도 ‘네’라고 한번만 대답 하면 될 것을 ‘네↗네↘네-네!’라고 네 번이나 되풀이해서 말한다던지, 탁구를 할 때도, 제기를 찰 때도 힘이 너무 들어가 탁구는 야구가 되고, 제기는 천장을 뚫을 기세다. 글을 쓸 때에는 힘이 더더욱 들어가, 생각만 꼬이고 계속 흰 화면만 쳐다보고 있다. 내 능력치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자꾸 과해지는 것이다. 이럴 땐 ‘못해도 괜찮다’, ‘할 수 있는만큼 하자’라고 스스로 되뇌어 봐도 별 소용이 없다.

내가 하는 것보다 더 잘 하고 싶다, 더 잘 보이고 싶다라는 마음의 폐해는 이처럼 심각(!)하다. 나처럼 불필요한 힘을 쏟게 만들어 삑사리만 내기도 하고, 지금 내 상태를 너무 보잘 것 없게 만든다. 그래서 내 눈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머나먼 곳에 있는 어떤 것이 더 좋고 낫다고 생각한다. 마치 조선시대에도 사람들은 당대의 말은 천근(淺近,지식이나 생각 따위가 깊지 아니하고 얕다)하다 여기고, 그 시대에도 옛날 옛적인 한나라와 당나라의 문체만을 최고로 여긴 것처럼. 그래서 이때에는 글에 대한 찬사로 꼭 들어가는 말이 ‘한나라의 문(文)을 본뜨고, 당나라의 시를 본떴다’였다. 무슨 말을 하든, 당나라나 한나라의 문체와 비슷하면 좋다고 여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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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이 보기엔, 이런 현상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비슷하다는 건 이미 진짜는 따로 있고 가짜라는 말 아닌가. 그런데 비슷하다는 걸 칭찬이라고 들어도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오히려 그대로 베끼려고 갈수록 용을 쓰고 그걸 기뻐하다니? 자신은 그런 칭찬을 처음 들었을 땐 낯가죽이 에이는 듯 하고, 몇 번 들으니 포복절도 하느라 여러 날 허리 무릎이 시큰거렸는데 말이다. 하도 그 꼴이 우스워서!

웃음을 가다듬고, 연암은 하나하나 이유를 들며 한,당의 글을 그대로 베끼는 사람들을 만류한다. 서시가 아무리 찡그리는 모습이 예뻤다 한들 찡그리는 모습을 따라하면 추할 뿐이다. 훈고의 어휘를 주워 모아 나열해도 겉은 번지르르 할 수 있으나 내 생각 하나 못 말하는 벙어리가 될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베낀 글은 세상에 이름을 날릴 수는 있을지는 몰라도, 밀 조각을 씹는 것처럼 맛도 없다. ‘눈앞 일에 참된 흥취 들어 있는데(286쪽)’ 내 상황, 내 느낌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말이 대체 무슨 맛이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세상은 여전히 한,당의 글만 칭찬하고 인정하니, 연암은 점점 갑갑해진다. 그런 연암에게 글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서유본이 나타난다. 과연 서유본이 쓴 글은 어떤 맛이었을까?

하루아침에 막힌 가슴 쑥 내려가니

입에 가득 매운 생강 씹은 맛일레

평생에 숨겨 둔 두어 줌 눈물

싸 두었다 뿌리노라 가을 하늘에

목수가 나무 깎인 일 맡았지만

대장장이를 배척한 일이 없었네

미장이는 제 스스로 쇠흙손 잡고

기와 이는 놈은 제 스스로 기와 만드네

그들이 방법은 비록 같지 않지만

목적은 큰 집을 짓자는 거야

( 박지원, 『연암집』(중), 「좌소산인에게 주다」, 돌베개, 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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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본의 글은 생강처럼 맵고 생생하다. 자신을 겉치장 하지 않는 말들에, 연암은 서유본과 글 평론을 하다보면 몇 밤이나 등잔 심지를 돋울 정도로 할 말이 계속 올라온다. 자연히 막힌 가슴도 쑥 내려간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멀리 있는 것을 그저 따라하려기보단, 내 눈앞에 일을 부끄럽게도 천하게도 여기지 않는 것이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고, 맛도 좋은 글을 만드는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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