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 슬기로운 유배생활

2장 슬기로운 유배생활(1) - 유배의 재구성

문리스(남산강학원)

완역와(玩易窩) (2) : 운명, 왜가 아니라 어떻게!!

완역와(玩易窩)! 완은 놀다, 희롱하다는 뜻입니다. 역은 <주역>입니다. 와는 동굴, 토굴입니다. 그러니까 ‘완역와’란 주역을 희롱하며 노는 동굴, 이라는 뜻입니다. 용장은 당시 원주민들이 혈거생활을 했고 양명도 동굴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완역와’는 현재 용장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일반 동굴과 달리 지하의 굴처럼 된 곳인데, 양명 선생을 브랜드화 시키려는 귀주성(현 귀양성)의 지속적인 개발로 인해 현재는 아주 근사한 지역 명소로 개축되었습니다. 다산 초당이 다산이 유배하던 당시와 달리 기와집으로 단장하고 잘 관리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덕분에  당시의 정취랄까 분위기 같은 것은 당연히 날아가버렸고, 맥락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아 유배지에서도 깨끗하고 편안하게 잘 지냈구나’라고 오해하기 딱 알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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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하게(!!) 왜곡 보수된, 현재의 완역와!!!

여하튼 완역와는 양명이 용장에서 거주했던 거처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일종의 별장처럼 위치해있습니다. 용장 소재 양명 개인 연구실 혹은 오피스텔인 셈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뭘 했느냐 하면, 공부를 하신 겁니다. 구체적으로는 <주역> 연구를 하신 거죠. 완역와를 좀 더 평범하게 표현해보면 ‘주역 연구실’입니다. 그런데 왜 <주역>일까요? 그것은 <주역>이 자연과 우주의 질서와 이치를 밝히는 책(경전)이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운명에 대한, 운명을 위한, 운명적인 책입니다. 그러니 결국 완역이란 ‘운명을 궁글리다!’ 혹은 ‘운명과 어울리다!’ 라는 뜻입니다. 왜 운명이었을까요? 당연히 그건 왕양명의 처지가 추방자(유배자) 신세였던 것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양명에게 <주역>은, 자신의 실존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준이었습니다.

저는 몇 년 전에 귀주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10월이었고 중국 최고 명절 중 하나인 국경절(10.1-10.7)이 막 끝난 직후여서 생각보다 차분한 분위기였습니다. 저에게 귀주(貴州)는 전적으로 양명 인연입니다. 양명이 아니었다면 그곳을 여행할 이유가 없었을 거란 뜻입니다. 귀주는 일반적인 인문학 여행지로 그렇게 특별한 곳은 아닙니다. 중국은 역사가 유구하고 유적이 수도 없지만, 베이징을 중심으로 열하를 다녀오거나, 산동(山東) 곡부땅의 공자 유적, 혹은 시안(西安)에서 사마천과 <사기>를 중심으로 한 역사 테마 기행 등을 다니기에도 많이 바쁩니다. 양명이 아니었다면 귀주는 딱히 우선시 될만한 고장은 아니었을 거란 뜻입니다.

이 말은 귀주가 별 볼 일 없는 곳이란 뜻이 아닙니다. 오늘날 귀주는 관광지입니다. 관광지로서의 귀주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황과수 폭포가 있고, 중국 최고 명주(名酒)라는 마오타이주의 본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중국 내 소수민족 자치구로 독특한 생활문화가 유지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황과수 폭포와 마오타이주 때문에라도, 묘족, 광족, 동족 등의 소수민족들의 문화와 삶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기꺼이 여행할 만한 곳인 그곳이 저로서는 양명이라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다른 어떤 지역보다 꼭 가보고 싶은 특별한 곳이 되었습니다. 양명학이 시작된 곳, 양명이 2년여간 살았던 곳, 으로서의 귀주.

또 하나, 귀주에 도착하기 전까지 제 머릿속 귀주는 온갖 관념과 환상들의 결합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귀주를 가보지 못했다면 아마도 저는 아직도 그런 귀주를 떠올리고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어떤 이미지로서의 귀주입니다. 양명이 상한 몸을 이끌고 자객을 피해가며 천신만고 끝에 오지인 귀주로 입성하는 모습? 무협 드라마 같은? 정글의 법칙을 보는 티브이 바깥의 관객 같은 심경이었달까요? 그렇듯 귀주는 제게 양명에게 낯선 유배지이기 이전에, 그런 귀주를 낯설어하는 양명까지를 낯설게 봐야한다는, 마치 창 너머의 풍경 아니 액자 속의 그림 같은 것이었습니다.

실제 귀주가 아닌 상상의 귀주. 유배지는 그렇게 이미 관념으로 구성됩니다. 그저 멀고 낙후되고 낯선 곳이어서가 아니라, 그런 경험들 이전에 이미 수많은 관념과 망상과 상상과 환상 등으로 구성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유배자들에게 그 유배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 그럴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산천의 경개가 낯설고, 당연히 물맛도 공기도 기후도 풍토도 동물도 식물도 사람들도 사람들의 인정물태며 말투 등도 하나 같이 낯설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산천을 걷고, 물을 마시고, 숨을 쉬고, 동물을 만나고, 바람을 맞으며, 사람들과 교류(혹은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양명과는 분명 다른 의미에서, 제 상상속+관념속 귀주는 귀양공항에서 귀양시내 숙소까지 이동하는 30여분간의 창 밖 모습만으로 이미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전체에서 가장 GDP가 낮은 지역이라는데 귀양 시내는 온통 높은 빌딩과 네온사인이 작렬합니다. 대륙의 스케일이랄까요, 빌딩들의 규모가 일단 거대합니다. 그리고 도시 곳곳이 공사 중입니다. 요컨대 도시 전체가 개발중인 느낌.(수문현 용장 양명 문화원 일대도 아직 공사가 마무리되지 못한 상태였고, 양명이 강의를 다녔던 귀양서원(현 양명서원)에는 입장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이 말은 개발 자체에 대한 어떤 평가를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관념과 현실 사이의 낙차가 어떠한가에 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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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중인 귀주의 빌딩숲

양명에게는 어떠했을까요. 양명에게도 귀주는 아주 낯선 곳이었습니다. 연보에 남겨진 언급들을 보면 막상 직접 맞닥뜨린 귀주에서 양명은 적잖이 당황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양명에게도 귀주는 어쨌든 상상 너머의 세계였다는 뜻입니다. 아마 양명도 유배지를 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운명이 펼쳐질 미래를 향해 최선을 다해 필사적으로 현실적인 감각을 구성하려 노력했을 것입니다. 제가 귀주를 처음 가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아니 그저 호기심의 여행지를 향한 제 마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상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막상 현장에 맞닥뜨렸을 때 겪게 되는 상상치 못한 괴리감은 다른 문제입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 장황하게 실제 귀주에 대한 관념 귀주 등에 대해 말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양명의 시대와 우리 사이에 놓인 500년을 건너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황제 전제정치 시대인 명나라 중기의 사대부와 21세기 국민국가 시대의 개인적이고 시민적인 감각 사이의 차이인 것입니다. 정보통신이 이렇게 발달되어 있는 21세기에조차 동시대의 귀주를 찾아가며 그렸던 온갖 관념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게다가 그 절망적인 현실감은 여행처럼 며칠 뒤면 해제될 불편함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생활해야 하는, 다른 퇴로가 없는 상황에서의 이질감과 낙차를 어떻게 만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게다가 이미 귀주에 이르기 전에 겪었던 수많은 죽을 고비들을 상기할 필요도 있습니다.

왜 운명인가. 유배지와 운명, 양명의 경우엔 특히 이런 배경에서 접근해볼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일단 질문이 조금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거꾸로 물어야 합니다. 출발은 왜 운명인가, 가 아니라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운명이 아닐 수 있는가, 입니다. 다시 말해 유배자가 운명의 문제와 만나는가 아닌가는 문제의 초점이 아닙니다. 그만큼 유배지라고 하는 현실은 운명의 문제와 무관할 수 없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질문이든 운명의 문제 위에서 제기되는 것입니다. 즉 어떻게 운명과 만날 것인가, 입니다. 이 질문은 흥미롭습니다. 운명이란, 어찌 보면 전근대에서 근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현대인들이 가장 크게 잃어버린 감각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죽습니다. 그래서 인류에게 죽음은 늘 실존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근대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진지하게 죽음을 사유할 필요가 없게 된 시대가 아닐까요? 마치 죽음이 없는 것인 양, 아니면 최소한 그것은 남의 문제인 양 여기는 시대, 죽음을 멀리 떼어놓고 사는 시대 같달까요. 말이 자꾸 길어지는데, 한 마디만 더 보태면 그래서 삶이 삶의 에너지를 잃어버리고 삶까지도 죽어가는 시대가 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시대, 우리가 사는 이 근대 말입니다. 반면 전근대까지 삶은 언제나 죽음이라는 문제와 가깝게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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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에게로 돌아와서! 그러므로 특히 유배지 용장에 도착한 양명에게 운명의 문제는 다른 어떤 문제에도 선행하고 또한 다른 모든 문제를 저변에서 관통하는 전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운명과 상대할 것인가. 사대부 유학자 지식인으로, 제자를 둔 스승으로, 과거 시험을 수석으로 패스하고 실력과 인품을 겸비한 일급의 관료 아버지를 둔 아들로서, 일찌감치 문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이를 통해 베이징의 명사들과 친교를 나누던 문인으로서, 말타기와 활쏘기 등 무예까지 겸비한 사내대장부로서, 정의감과 도덕심에 있어서도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모순적인 현실 문제에 대해서도 당당했던 도덕가로서 어떻게 이 운명 앞에서 명예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일단 ‘죽음’은 방법이 아닙니다. 죽음은 가장 간단한(!) 방법이고, 죽음을 통해 운명에 저항하는 건 엄밀히 말해 운명과의 대결이라기보다 운명을 회피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양명이 유근의 횡포에 저항했을 때, 그것은 관료로서 그가 보여준 어떤 태도였습니다. 관직을 사직하거나 외면하거나 그 문제 바깥으로 피할 수 있지만, 그 상황 위에서 그 상황을 끌어안은 채 문제를 제기하는 건 시작부터 완전히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전제왕권과 신분제가 공고한 시대에 황제권이 엄혹한 시기에 그에 대해 정면으로 ‘다른’ 목소리(상소)를 낸다는 것, 국가의 녹(錄)을 받는 관료로서 그 정도야 범상한 일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범상한 일에조차 범상치 않은 용기가 필요한 시대였고, 양명은 바로 그 용기의 대가를 치르는 중인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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