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하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장석(匠石돌 다듬는 장인)과 기궐씨(剞劂氏돌에 글씨를 새기는 사람)가 둘이서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장석은 돌이 천하의 물건 중에 가장 단단하다, 묘지로 가는 길에 돌로 만든 거북이와 새 머리를 세워 ‘영원히’ 없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나의 공이다, 라 하고, 기궐씨는 새긴 글자보다 오래가는 것은 없다, 돌이 있다고 해도 비명碑銘을 새겨 넣어야 쓸모가 있지, 라 한다. 그렇게 투닥투닥하다가 누구의 공이 더 큰지 무덤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이때 옆에 있던 석옹중(무덤 앞에 세워놓은 석인石人)이 껄껄대고 웃으면서 “비록 그러하나 돌이 정말 단단하다면 어떻게 깎아서 빗돌을 만들 수 있겠으며, 닳아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글자를 새길 수 있겠는가. 그것을 깎아서 새길 수 있는 이상 부엌을 만드는 사람이 가져다가 솥을 앉히는 이맛돌로 쓰지 않으리라 어찌 장담하겠는가.” 하였다.

양자운은 옛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기자(고문의 변체)를 많이 알았다. 한창 『태현경』을 저술하다가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변하더니, 개연히 크게 탄식하기를, “아! 오(아들)야, 너는 알고 있어라. 석옹중의 풍자를 들은 사람들은 장차 이 『태현경』을 장독의 덮개로 쓰겠지.” 하니, 듣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크게 웃었다. 

(박지원, 『연암집』(하), 「영재집서」, 돌베개, p88)

무덤 앞의 석옹중이 껄껄 웃으면서, 둘의 허점을 짚었다. 돌이 ‘영원히’ 보존될 수 있다면 어떻게 깎아서 비석을 만들지? 글씨는 돌이 닳아지니 새길 수 있는 건데, 그럼 새긴 글자도 얼마든지 닳아질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돌덩이들이 언제까지 비석으로 서 있을 수 있겠니? 그걸 누가 솥 밑에 받치는 데에다가 쓰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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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우리도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잘 안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을 거고,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언젠가는 끝날 거고, 지금의 인연도 언젠가는 끊어질 거고…. 그럼에도 장석과 기궐씨처럼, 모든 게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산다. 그러다 문득 이것이 영원하지 않을 거란 걸 깨달으면 슬퍼지는 것이다. (물론 빨리 끝났으면 하는 일도 있겠지만)

그러니 ‘양자운’이 자기가 쓰고 있던 『태현경』에 대해 하는 말을 들으면 자못 씁쓸해진다. 열심히 쓴 책이 언젠가는 장독 덮개로 쓰일지도 모르겠구나! 그렇지만 양자운은 아들에게 탄식하면서도 『태현경』을 끝까지 썼다. 주위 사람들은 양자운의 말을 듣고 씁쓸해하기보단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끝’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렇게 가벼울 수 있다니?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니!

『태현경』은 세상에 나와 연암의 시대에는 명성을 높였고 이후 (현대) 사람들에게는 거의 읽히지도 알려지지도 않은 책이 됐다. 알다가도 모를 운명! 앞으로 시간이 더 지나면 어떻게 될까? 갑자기 베스트셀러가 될 수도 있고, 인류가 멸망한 뒤 영영 해독할 수 없는 종잇조각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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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렇게 가벼울 수 있다니?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니!

우리는 쉽게 ‘영원’이라는 말을 쓰지만, (영원히 함께하자,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랐다 등등) 정말 ‘영원’을 감각할 수는 없다. 무언가의 끝을 생각할 때 슬프다면, 혹은 무언가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답답하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10년 뒤, 50년 뒤, 100년 뒤, 인류가 멸망하고, 지구가 가루가 되는 어느 날, 그때까지 우리가 그 무엇이 계속되기를 바랄지, 그 무엇이 계속될 수나 있을지.

그렇기에 언젠가 『태현경』이 장독대 덮개로 쓰일지라도, 또 언젠가 무덤의 비석이 다 닳아 없어질지라도 슬픈 일은 아닌 것이다. 그밖에 다른 것도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슬퍼할 나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존재하는 것은 지금 이때, 이 조건 위에서뿐이다. 그러니 담담히, 양자운은 『태현경』을 쓰고, 유득공은 『영재집』을 쓰고 연암은 『연암집』을 쓴다. 우리도 담담히, 밥 먹고, 산책하고, 친구와 싸우고, 공부하면서, 지금의 내가 만들어지는 조건을 만끽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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