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스님 12월 선물강좌 중

유머, 사고의 흐름을 바꾸다

그래서 이제 자기 입력이 돼서 안에서 움직이는 것들을 바로바로 하지 않고 지켜보는 훈련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명상이라는 훈련입니다. 남편이 아내한테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는데 잠깐 정리를 하고 그 말이 어떻게 흘러가는 과정과 그 다음을 연상해보는 훈련이에요. 그러면 ‘아’로 갈 말이 ‘어’로 가면서 다음 사건이 현저히 바뀌기 시작합니다. 즉 그런 것을 우리가 말하는 코딩이라고 하죠, 코딩. 인간의 언어를 컴퓨터 언어로 바꿔주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인간의 언어로 해석을 하는 겁니다. 근데 실제로 모든 정보 처리는 저렇게 일어나고 있어요. 여러분들께는 컴퓨터를 매개로 하지 않고 인간 대 인간으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여기 안에 컴퓨터가 있는 거하고 똑같습니다.

여러분과 저 사이의 컴퓨터는 뭡니까? 여기에는 굉장히 제 언어의 떨림에 따라서 아주 잘 조율되어있는 공기라는 컴퓨터가 있습니다. 이 컴퓨터로 제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공기라고 하는 파장으로 번역을 합니다. 번역된 저의 공기 떨림을 여러분의 귀가 듣고서 다시 그것을 여러분의 정신으로 다시 번역합니다.

자 그런데 번역되는 순간 저의 삶과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들이 약간씩 다른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사람이라고 하는 건 다 같지 않느냐는 착각을 전제로 합니다. ‘왜 내 말을 못 알아들어?’ 못 알아먹는 것이 답이에요.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알아듣는 것처럼 착각을 하는 거예요. 어떤 착각이 일어나냐면 멀쩡한 사람을 앉혀놓고 여기다 이렇게 박스를 하나 만들어놨습니다. 그래놓고 제 오른손을 거기 넣어서 오른손이 안 보이게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실험자가 제 오른손과 닮은 손에 고무팔을 옆에 놔두고 실험자가 고무판과 두 팔을 계속 이렇게 긁습니다. 그렇게 한참 긁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눈으로 보고 있는 고무팔과 보이지 않는 내 팔이 있어요. 한참 긁다가 이 실험자가 실제 팔을 긁지 않고 고무판만 긁고 있는데 제 느낌은 완벽하게 고무판이 자기 팔의 느낌처럼 느낍니다.

우리가 저 앞에 고무팔을 보고 그냥 하고 있는데 감각적 느낌은 고무팔이 아니고 자기 팔이라고 얘기를 해요. 지금 여러분들이 제 말을 이해한 것하고 이거하고 크게 차이가 없어요. 체험을 해도 뇌는 자기가 직접 외부를 느끼고 보고 냄새 맡지 못하니까 안에서 기억의 자모음을 가지고 그런 식으로 해석하면 그것이 자기의 실제가 됩니다.

그래서 이제 여기에서 이 알고리즘이 교육받는 대로 다 되어있어요. 어떤 사람은 이제 약간 지나가다가 약간 특수하게 일반적인 교육의 루틴을 흘리고 있는데 그 흐름에 약간의 변형을 줍니다. 그러면 A라고 하는 것에서 알고리즘이 코딩이 이뤄져가지고 B로 나오는데 어떤 사람의 뇌는 그런 말을 들으면 약간 비튼 거예요. 비틀면 뭐가 됩니까? B가 안 나와요. 그럼 우리는 뭘 합니까? 그냥 웃음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예측된 대로 나오면 별로 웃을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약간 다른 식으로 나오면 우리가 거기에서 웃음이 나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어떤 의미에서 일상의 루틴한 사고 흐름을 약간 바꾸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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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엄청나게 바꿔가지고 인간 전체의 사유 체계를 뒤흔들면 뭐가 됩니까? 니체가 되는 거예요. 니체는 그야말로 서구 사유의 중심축인 신을 죽여요. 즉 신을 매개로 하지 않는 사유를 하는 거예요. 이때는 웃음이 나오는 게 아니고 심각한 사건이 나오는 거예요. 그 전까지는 아무도 신을 매개로 한 이 코딩에서 벗어난 사람이 없어요. 갑자기 니체가 그 알고리즘 속에 계획된 신을 빼버린 거예요. 그래서 니체는 우리로 하여금 초인이 되라고 말해요. 사람을 벗어나라. 사람은 뭡니까? 정해진 알고리즘대로 사유하는 사람이에요. 니체가 말한 사람은. 이런 사람은 제대로 자기를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가 만들어진 학습, 답습된 학습이 마치 자기인 양 살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 것으로부터 벗어나라, 넘어서라, 사람을 넘어서라. 뭘 넘어섭니까? 코딩을 새로 하라는 거예요. 무엇을 통해서? 신을 죽임으로써.

세대 차이; 코딩 차이

지금 젊은이들이 결혼 안 하고, 결혼해도 애기 안 낳고 뭐 이런 거 있잖아요.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에서는 그걸 보면 뭔가 아닌 것처럼 보이죠. 결혼을 해야 되는 것이 사람의 거의 결정적인 코드였다고 하면 지금 10대나 20대들이 ‘왜 결혼하고 살아?’ 전혀 새로운 코드를 코딩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코딩된 사람한테 저 같은 사람이 ‘야, 인간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결혼해서 빨리 애기를 낳아야 해.’ 이러면 뭐라고 합니까? 바로 꼰대가 되는 거예요. 머릿속에 이미 알고리즘이 박혀있어요.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 죽고 한 20년쯤 지나면 전혀 결혼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야 벌써 3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이상한 생각하고 살았네.’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와버린 거예요.

그 애들은 뭘 합니까? 자기 스스로가 아직까지 충분히 독자적으로 의견을 말하고 그럴 정도가 아니니까 그냥 안 들은 척하고 있는 거예요. 안 들은 척. 안 들은 척 하면 우리는 머릿속에 듣고 고민을 하요. ‘어른 말인데 들어야 될까 말아야 될까.’ 그것이 우리까지 시대에 말해졌다고 하면 지금 젊은이들은 탁 듣자마자 ‘저것은 우리 시대의 코딩이 아니네.’라는 느낌이 탁 오면 계속 튕겨버리죠. 들을 생각 자체를 않는 것이죠. 그럼 어른들은 그것에 대해서 네가지가 없는 둥 뭐니 하지만 그 세대는 전혀 다른 식으로 네가지를 만들어가는 거예요.

바꿔 말하면 한 세대가 됐다는 말은 한 세대가 가지고 있는 기억의 코딩이 전혀 다른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이에요. 또 그 이들은 자기들의 시대를 그런 식으로 준비해갑니다. 좀 있다가 다시 그 애들이 5-60대 되면 또 밑에 사람들이 전혀 다른 새로운 코딩으로 되는데 이 속도가 굉장히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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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이 아닌 예측으로서의 기억

바꿔 말하면 디지털이라고 하는 것이 완벽하게 자기 삶의 일부이면서 거의 전적으로 그것에 의존해서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예측과 그 애들의 예측은 전혀 다릅니다. 왜냐하면 기억은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나이 들어서 과거를 회상하면서 ‘나는 이렇게 살아 왔다’라는 생각이 하루 중에 많아지기 시작하면 늙었다고 빨리 인정해야 돼요. 왜냐하면 기억의 쓰임을 전혀 다른 식으로 하고 있는 거예요. 기억은 과거를 회상하기 위해서 기억하는 게 아니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 기억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젊은이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가서 작은 기억이지만 그걸 가지고 모험을 합니다. 어차피 모험이에요. 왜냐하면 기억량도 적지만, 자기 세대는 자기가 만들어가야 되니까 이것저것 해봅니다. 근데 나이가 들면 기억이 양도 많아지면서 그걸 회상하는 일이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미래라는 사건을 맞아들이는 게 아니에요. 급속도로 사유가 궤도를 이탈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사회는 전적으로 뭡니까? 미래를 예측하는 사회예요. 고전을 많이 배운다는 것은 방금 말한 대로 고전을 통해서 미래예측시스템을 위한 기억의 자모음을 굉장히 많이 확보하고 있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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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은 바로 변화된 시대에서 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그런 변화된 시대에서 바로 신체화 된 것이 자기 기억으로 되는 반면, 어른이 되면 밑에서 올라오는 기억들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억의 코드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려고 하니까 훨씬 더 어렵고 힘듭니다. 그래서 어느 때는 그 기억을 내려놔야 되는데 잘 내려놓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절집에 가면 기억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뭐냐면 마음을 비우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비울 수도 없는 마음을 맨날 비우라고 해요. (웃음) 그 말 한 사람도 마음을 못 비웠어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선배 선생님들께서 그렇게 말씀을 해주셨으니까 그 마음을 기억하고 있다가 그렇게 말하면 돼요. 책임이 저한테 없잖아요. 불교경전에 그렇게 써 있다 그러면 뭡니까? 불교경전은 위대한 가르침이라고 여러분한테 코드화 돼있죠. 그래서 제가 그걸 잘못 해석해도 그렇게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갑니다. 왜입니까? 이미 그렇게 답습된 지식들이 머릿속에 들어와서 ‘저 사람이 하는 말은 옳은 말일 것이야.’라고 착각을 하는 것이죠.

한 세대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훈련해서, 즉 따져 물어서 구멍을 내는 게 아니고 이 시대적 변이가 이미 다른 구멍을 내도록 자기한테 만들어져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는 젊은 사람들도 자기가 왜 그런가를 따져 묻지 않는 것은 똑같아요. 자기들은 굉장히 새로운 인류로서 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바로 윗세대 어른들이 축적된 기억의 양상이나 지금 젊은이들이 이 시대가 암묵적으로 던져 준 학습에 대해서도 따져 묻지 않고 받아들인 것이나 모양의 차이는 있지만 그것이 코딩화 되어 있는 과정들은 다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따져 묻지 않으면 답습된 지역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온전히 살아내는 미래를 예측하기가 굉장히 힘듭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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