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민(감이당)

다시 공부의 장으로

2019년 2월의 어느 날, 감이당에서는 장자스쿨(장년의 자립을 위한 감이당의 장기 프로그램)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었다. 남편이 장자스쿨에 신청했고, 나는 선생님들께 인사도 드릴 겸 아기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기저귀, 손수건, 물티슈, 물 등등의 짐을 챙기고 거기에다가 아기띠까지 멨다. 남편과 함께 준비한다고 해도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아기와 움직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매번 그렇지만 나가기도 전에 지쳐버리기 일쑤였다. 큰맘 먹고 택시를 탔는데 또 길이 막혀 중간에 내리고 지하철을 타고 다시 택시를 타기를 반복. 휴~ 겨우 OT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이렇게까지 힘들게 가야하나?’라는 약간의 후회가 들기도 했다. 한 켠에 앉아 쉬고 있는 우리를 보고 장자스쿨 담임인 고미숙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기랑 집에 둘이 있는 거 힘들지? 앞으로도 계속 아기 데리고 와서 공부해라~”

사실 임신하고 출산하면서 ‘빡센’ 감이당 공부를 잠시 쉬게 되어 좋았다. 그런데 막상 육아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차라리 아이와 집에 단둘이 있는 것보다 나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그때 마침 선생님께서 장자스쿨 청강생으로 받아주신 거다. 나는 맨 뒤에 앉아 기저귀도 갈고, 재우고, 수유도 하고 아기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면서 수업을 들었다. 몇 년 만에 공부하고 있다는 게, 또 아기와 같이 감이당에 있다는 게 어색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쉬는 시간에 선생님들은 돌아가면서 아이를 봐주셨다. 휙휙 뒤집기만 해도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아기가 선생님들께 둘러싸여 오히려 엄마인 내가 아기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장자스쿨 조모임에 출몰한 겸제

그렇게 뜻밖의 자유 시간 생겼다. 매주 갈 곳이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이었다. 구청에서 운영하는 육아종합지원센터도 평일 6시면 문을 닫아 갈 곳이 없었다. 우리는 매번 살 것도 없으면서 수유실이 잘 되어 있고 유모차를 빌려주는 백화점과 마트를 떠돌곤 했다. 오랜만에 선생님들도 만나고, 육아의 힘듦을 공유하고… 거기에 학인들의 공부를 옆에서 주워듣는 즐거움까지. 매주 우리를 반겨준 선생님들이 감사했다.

어느새 달라진 일상

그날도 역시 감이당에 나가 아기와 같이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러다 MVQ 홈페이지(글쓰기로 자립하기 위한 학인들의 글쓰기 수련장)에 육아일기를 연재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사실 매일 집에 있으며 하지 못한 말들이 너무나 많았다. 답답하기도 했고, 아이와 지내는 시간이 그냥 흘러가 버리는 게 아쉬워 혼자서 블로그에 어떤 말이라도 웅얼거리고 있었던 터였다. 나는 이 기회를 덥석 잡았다. 그런데 육아일기 말고도 감이당&남산강학원 48명의 학인이 함께 만드는 『나는 왜 이 고전을』 책 작업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공부 복이 갑자기 넘쳐흘렀다. 아이를 보면서 두 가지의 글쓰기 작업을 함께 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글 마감일이 다가오니 마음이 급해졌다. 처음에는 아기를 보면서도 글을 써보려 했다. 하지만 그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기와 놀면서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고민하고 있으니 아이를 보는 것도 아니고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이래저래 피곤했다. 작전을 바꿨다. 차라리 아기가 깨어있을 때는 온 힘을 다해 놀아주어서 일찍 잠이 들게 하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을 때는 시간이 참 많았던 것 같다. TV 영상도 보고 편하게 밥도 먹고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고 나서도 공부할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육퇴(육아퇴근) 후 내게 남은 시간은 단 두 시간뿐! 설거지할 것인지, 쇼핑할 것인지, 글을 쓸 것인지 등등 여러 가지 할 일 중에서 한두 가지만 할 수 있었다.

아이를 보면서 집안일도 하고 글도 쓰려니 자연스럽게 맘 카페에 접속하는 횟수가 줄었다. 카페 앱 한 번 클릭하는 걸 참았더니 어느새 한 번도 보지 않고 하루가 흘렀다. 습관적으로 접속하던 맘 카페였는데 안 하게 되는 날이 늘어나자 뭔가 소비 욕망을 조절할 수 있게 된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동시에 운동을 시작했다. 아이가 커갈수록 체력이 떨어졌다. 늘어가는 아이의 체중과 온종일 뛰어다니는 아이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아이를 재우다 옆에서 같이 잠드는 날이 늘어갔다. 글 마감일이 다가오니 점점 불안해졌다. 나도 모르게 신경이 날카로워져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났고 남편과도 자주 부딪치게 되었다.

글쓰기와 집안일 등등 이 모든 것을 해내려면 운동을 해서 체력을 기르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어딘가에 가서 요가나 필라테스를 배워볼까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돌이 조금 지난 아이를 두고 꾸준히 밖에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결국, 아이가 잠든 틈을 이용해 108배를 하고 유튜브에서 요가와 스트레칭, 아령 운동 영상을 보며 따라 했다. 아기가 깨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해가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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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시작, 글쓰기

예전에는 아이가 낮잠을 잘 때 같이 쉬었다. 선배 엄마들은 조언했다. 집이 난장판이더라도 일단 무조건 아이 옆에 누워있어야 한다고. 나는 잠든 아이 곁에서 스마트폰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이제껏 쉰다는 것을 그렇게 이해했다. 그런데 낮잠을 아무리 자도 피로는 풀리지 않았다. 또 자고 난 뒤에도 집이 어지러워져 있으면 아이와 잘 놀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어야 상쾌한 기분이 들고 아이 스스로도 장난감을 하나씩 꺼내서 놀았다. 어지러워진 집안에서는 기운이 꽉 막혀 서로 힘들 뿐이었다. 집안일도 육퇴 후 한꺼번에 하려면 더 지쳤다. 밀린 설거지와 빨래 등을 하고 나면 어느새 잘 시간이 다가왔다.

아이가 낮잠을 잘 때 쓰윽 빠져나와 운동을 한 지 며칠이 지났을까. 스트레칭과 108배를 고작 30분 정도 했을 뿐인데 몸이 가뿐해졌다. 오히려 낮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보다 더 개운한 느낌이랄까? 충전된 체력으로 아침에 먹은 설거지를 하고 책을 읽었다. 아이가 먹을 반찬도 만들고 점심까지 챙겨 먹었다. 시간이 없다고 대충 피자나 빵으로 때운 적이 많았다. 별일도 아닌데 괜한 일로 남편과 크게 다투었다. 감이당 학인들과 함께한 정화 스님의 멘토링 기록을 보다 그 이유를 알았다. 스님은 말씀하셨다. “밥을 어떻게 먹는가가 중요하다”고. 채소를 많이 먹으면 뱃속 미생물들이 좋아하고, 또 이런 미생물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고 한다.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빵이나 밀가루로만 밥을 먹었을 때 남편과 나는 더 예민해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귀찮았지만 살기 위해 운동했고 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아이가 깨기 전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일을 하려면 설거지를 할 때나 책을 읽을 때, 그때마다 ‘집중’하는 수밖에 없었다. 불가능해 보이던 육아일기 연재와 책 작업도 어떻게든 진행되고 있었다. 육아하며 살림하고 거기에 글까지 쓰고 있는, 이 모든 걸 해가는 내가 놀라웠다. 이렇게 ‘밀도 있는 삶’을 살고 있다니! 글쓰기는 내 일상 전부를 바꾸어 놓았다. 맘 카페에 빠져 지냈을 때와 운동하며 조금이라도 글을 쓰고 책을 읽는 하루는 분명 달랐다. 전자는 항진되어 마치 영혼이 카페 앱에 둥둥 떠돌아다니는 느낌이었다. 사면 살수록 다른 것도 더 필요한 것만 같은 결핍감에 시달렸다. 그런데 글쓰기는 하면 할수록 충만한 기분이 들었고 불안감이 점점 사라졌다. 뭔가 글을 쓰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해가면서 무작정 흐르던 일상의 중심이 잡혀가는 느낌이었다. 집에서 아이와 지내지만, 내 생활을 공유하고 또 친구들과 댓글로 소통하는 것이 즐거웠다. 글쓰기는 이렇게 점점 내 생활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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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민
Guest
이여민

글쓰기가 ‘수행’이라는 곰샘의 말씀이 샘의 육아일기를 읽어보니 마음에 콕 와 닿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