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복

별가(鼈瘕) 자라고기를 먹고 소화가 되지 않아 가병(假病)이 된 것이 명치 끝에 있어서 만져보면 머리와 발 같은 것이 나타나고 때때로 움직여서 아픈 경우에는 백마 오줌을 마시면 곧 낫는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종과 함께 이런 병에 걸렸는데, 종이 먼저 죽어서 그의 배를 갈라보니 자라가 있었으므로 그것을 마당 한 가운데 두었다. 그때 백마를 타고 온 손님이 있었는데, 그 말이 그 자라 위에 오줌을 누자 그 자라가 녹아서 없어지는 것을 보았다. 주인이 그 신기한 효과를 알고 백마 오줌을 마시고는 곧 나았다.

(「잡병편」, 괴질, 1618쪽)

『동의보감』에서 위의 대목을 보면 우선 ‘옛날엔 자라고기를 먹었나?’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가 먹는 음식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무역이 발달해서 외국 재료들이 들어오고 품종들이 다양해지고 생산량이 많아지거나 적어진 재료가 있고 사람의 입맛도 변해서 전에는 본 적도 없는 재료들이 있는가 하면 예전에 즐겨 먹었던 음식을 안 먹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전복은 예전에는 무척 귀했지만 지금은 양식으로 매우 흔해져서 요리에 자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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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전복은 예전에는 무척 귀했지만 지금은 양식으로 매우 흔해져서 요리에 자주 사용한다.

자라는 지금은 보기도 힘들지만 옛날에는 종종 먹었던 모양이다. 강이나 호수에서 산다고 하니 강에서 잡아 식용이나 약으로 사용했을 수 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라는 속담도 있고 『별주부전』의 주인공으로도 등장하는 걸 보면 사람과 친숙한 사이였던 모양이다.

『동의보감』에도 자라의 성질과 약성이 나와 있다.

별육(鼈肉, 자라 고기) 성질은 차고, 맛은 달다. 열기(熱氣)와 습비(濕痹) 및 부인의 대하(帶下)를 치료하는데, 기를 보하고 부족한 것을 보해준다. 잘게 썰어서 양념을 넣고 끓여서 먹는다. 그러나 오랫동안 먹으면 사람을 상하게 하는데, 그것은 성질이 차기 때문이다.

(탕액편, 충부 1923쪽)

자라는 등딱지도 약으로 사용된다. 또한 산 채로 잡아 등딱지에서 고기를 발라낸 것이 좋다’(1923)고도 나와 있다. 그런데 소화가 되지 않을 경우, 가병(假病)이 된다는 게 문제다. 가병이란 음식이 몸에 들아가 소화되지 않고 원래의 생명체로 살아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헉! 생각만 해도 오싹하다! 자라고기를 먹었는데 그것이 몸속에서 자라로 자라서 머리와 다리가 생기고 명치 끝에서 만져지다니!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생긴다니! 설마! 했는데 실제로 죽은 종의 배에서 자라가 나왔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하지만 동의보감엔 가병(假病)의 종류가 여럿 나와 있다. 수정된 도마뱀알이 묻은 미나리를 먹었을 때 배에서 도바뱀이 생기는 교룡가(蛟龍瘕), 뱀고기를 먹고 소화가 되지 않아 뱀이 생기는 사가(蛇瘕), 삶은 계란을 지나치게 먹어 병아리가 생기는 계가(鷄瘕), 심지어 머리카락이 뱀처럼 변하는 발가(髮瘕)도 있다. 환자를 토하게 해서 보니 머리 달린 실뱀 같은 것이 나왔는데 벽에 걸어 두었는데 물이 마르니 한 올의 머리카락이었다는 것. 동의보감에선 이런 가병은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괴상한 병들이라는 의미에서 ‘괴질’이라는 항목으로 묶고 있다. 지금의 우리에겐 낯선 병이지만 지금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의 대부분이 지나치게 먹어서 생기고 있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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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은 이처럼 심각하고 오싹한데 치료는 참 우연하게 이루어져 재미있다. 마당엔 죽은 종의 배에서 나온 자라가 있는데 하필 그때에 백마를 타고 손님이 왔고 백마는 또 우연히 그 자라위에 오줌을 쌌다. 백마의 오줌이 약으로 탄생하는 순간이다. 자라가 녹아 없어지는 걸 보며 주인은 얼마나 신기하고 기뻤을까!

음식의 재료도 그 고장에서 나는 게 가장 좋고 집도 자기 고장의 재료로 짓는 게 가장 좋다는 말이 있듯 약도 가까운 데서 찾으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가까워도 이처럼 가까이에서 약을 찾을 수 있다니! 그것도 우연히! 백마 오줌의 성분이 어떠하기에 자라를 녹여내는지는 모르지만, 병과 약의 서사가 신기하고 정겹다. 자라-손님-백마-오줌. 언뜻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 별개의 것들이 하나로 꿰어지는 연결의 서사. 이 연결이 이루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으며 사건들이 있었겠는가.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필연적으로 펼쳐진 서사다. 이처럼 약은 약으로 등록되려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연이 중첩되어야 한다.’(고미숙,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그린비, 341)

이 스토리에서 그 수 많은 인연의 최종 매니저는 백마를 타고 온 손님이다. 약의 탄생에서 최종으로 기여하는 매니저이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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