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민(감이당)

‘궁하면 통한다’, 독서모임의 시작

아이가 태어난 지 만 5개월쯤 되었을까. 맘 카페에서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에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과 책을 읽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가던 카페에 ‘온라인 책 읽기 모임’을 만들었다. 텍스트는 감이당에서 많이 읽는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아쉬운 대로 각자의 집에서 같은 분량을 읽고 돌아가면서 발제를 하고 댓글을 달기로 했다. 나는 이제껏 공부를 하면서도 자발성이 부족했다. 그런데 맘 카페에 공지를 올리고 사람을 모아 일정을 조율하고 발제자를 정하다니! ‘궁하면 통한다’고 하더니 책을 읽고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긴 했나 보다. 신청 댓글이 달릴 때마다 오랜만에 공부할 생각에 두근두근 신이 났다. ‘온라인 책 읽기 모임’은 13명이 참여했고 여러 명이 중간에 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책을 끝까지 읽었다.

온라인 책 읽기 모임과 동시에 사촌동생들과도 독서모임을 하게 되었다. 엄마 혼자 아이를 보는 것도 힘들지만 아빠가 같이 있어도 조금 더 쉴 시간이 있을 뿐, 상황은 마찬가지다. 우리의 세 끼를 챙겨먹고 치우고, 아이의 이유식을 만들고 먹이고 씻기고 잠깐이라도 산책 다녀오면 어느새 자야 할 시간이다. 힘들다고 매번 외식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돈도 많이 들뿐더러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먹으려면 짐을 또 한 보따리 싸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와 함께 갈 곳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 집에서 한 시간 조금 넘는 거리에 사시는 작은 삼촌댁에 자주 가게 되었다. 삼촌, 외숙모, 사촌동생들은 갈 때마다 우리를 반겨주었다. 무엇보다 밥을 따로 안 해도 되어서 감사하기도 하고 행복했다. 가족들이 잠시나마 아이를 돌보아주니 그동안 10분이라도 잠을 더 잘 수 있었다. 그래도 매번 이렇게 받기만 할 수는 없었다. 우리도 뭔가 해드리고 싶었다. 그러다 생각해낸 게 사촌동생들과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근처에 사는 사촌동생까지 불러 모아 사촌동생 3명 그리고 나 이렇게 총 4명이 독서모임 멤버가 되었다.

몇 달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책으로 골라 읽고 나도 책을 추천해서 번갈아가며 읽었다. 사실 평소에 사촌동생들과 만나도 할 얘기가 딱히 없었다. 다들 방에 들어가서 스마트폰을 할 뿐이었다. 그런데 책을 가지고 이야기하니 자기의 생각을 하나둘씩 풀어놓았다. 독서모임을 하는 동안은 외숙모께서 아이를 봐주셨다. 나는 간식을 준비했고 사촌 동생들이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거나 책 내용을 필사하는) 과제를 해오면 용돈을 주었다. 가족들과 책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한 사촌 동생이 다른 친척의 결혼식장에 가서 “가족끼리 책 읽기 모임을 하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단다. 그랬더니 친척 분 왈, “너네 무슨 스카이캐슬 독서모임이니?”라고 하셨단다. 재작년에 유행했던 드라마 스카이캐슬에는 아이의 입시 준비를 위해 독서 토론 모임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는 스펙을 쌓으려 독서모임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책 읽기 모임을 한다는 명분으로 아이를 데리고 당당히 작은 삼촌 댁을 드나들었다. 덕분에 사촌동생들의 고민도 듣고 무엇보다 그들과 대화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생겨 좋았다.

1. 독서모임

네트워크와 공부의 힘으로

아이가 조금씩 커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같이 갈 수 있는 곳도 많아졌다. 남편 따라 감이당에 나가고 글도 연재하고, 온라인 책 읽기 모임도 하고 사촌동생들도 만나러 가고. 바쁜 일상이 이어졌다. 그러자 어느새 우울한 생각이 서서히 옅어졌다. 내가 얼마 전까지 종종 우울했었다는 사실조차 잘 기억나지 않았다. 답답했던 집을 벗어나 다른 사람을 만나기 시작해서였을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갑갑함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일까? 무엇보다 할 일이 있으니 우울해질 시간이 없었던 것일까? 그저 막막했던 생활이 조금씩 밝아지는 기분이었다. 나를 힘들게 하던 산후 우울감은 어디로 간 걸까? 그때의 고민과 막막함은 무엇이었을까?

확실한 건 아이와 둘만의 고립된 상황을 벗어나는 순간 우울감은 사라진다. 하루만 가던 감이당에는 곧 1박 2일을 지내다 오게 되었다. 아기가 10개월일 때부터 청년 학사를 떠돌며 잠을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눈앞에 3~4명의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들은 일찍 일어난 아기와 놀아주었다. 이 모습을 한켠에서 지켜보면서 나 혼자 아기를 돌보지 않아도 된다는 상황이 놀랍고 너무 편하고 행복해서 감격스러웠다. 또 아이를 일찍 재우고 난 뒤 친구들과의 수다는 또 다른 힐링 포인트였다. 감이당의 소식을 전해 듣고 또 멀리 지방에서 수업을 들으러 오시는 선생님들과도 오랜만에 만나 수다를 떨었다.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별 일은 없는지 이제야 사람들과 연결되어있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나는 살기 위해 그렇게 독서모임을 만들고 감이당을 드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2. 함백에서 겸제

우연히 청강하게 된 수업과 글쓰기도 우울감을 없애주는 데 특효약이었던 것 같다. 매달 글을 연재하기로 하면서부터는 아이를 빨리 재우고 육퇴(육아퇴근) 후 글을 써야 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우울해질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날도 역시 글 마감시간을 앞두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이제는 거의 사라져 가는 산후 막막함과 갑갑함에 대해 생각 중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불현듯 얼마 전 정화스님의 책에서 읽은 문장이 떠오르면서 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원래 ‘나’라는 존재를 어떠해야 한다고 정해놓아서 지금껏 힘들었던 게 아닐까?’

  한번 설정된 좌표는 쉽게 이동되지 않기에 삶의 흐름과 생각의 색깔이 달라지면서 현재를 불만족스럽게 만드는 기제가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지를 내려놓지 못하고 그 이미지를 집착하는 일이 사건·사물을 경계 지어 분별하는 일이 되면서 불만족한 삶을 만드는 토대가 되고 맙니다.

(『나와 가족 그리고 가까운 이들을 그냥 좋아하기』, 정화 지음, 북드라망, 26쪽)

내가 언제 우울했는지 생각해보니 주로 예전처럼 무언가를 자유롭게 하지 못할 때였다. 아이 때문에 카페에서 차 한 잔을 못 마시고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고 밥을 온전히 먹지 못하는 등등… 현실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그 이전의 삶을 기준으로 지금을 판단하게 되었다. 그러니 모든 것을 그전에 하던 것처럼 ‘못한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또다시 우울해지는 것이다. 내가 여전히 과거의 나의 이미지에 붙들려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복잡했던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원래 어떤 존재라는 이미지 또 어떤 존재여야 한다는 이미지가 사라지자 부정적일 필요도 우울해질 필요도 없었다.

아이도 엄마도 성장하는 하루

2018년 8월에 태어난 아이는 어느새 21개월이 되었다. 놀랍게도 육아는 조금은 수월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쉽게 적응되지 않는다. 이제 좀 익숙해졌다 싶으면 예상치 못한 일(갑자기 낮잠을 자지 않는다거나, 잘 먹던 밥을 거부한다거나…)이 발생한다. 반면 아이는 폭풍 성장하는 중이다! 할 수 있는 것도 표현할 수 있는 말도 많아졌다. 혼자 숟가락질을 해서 밥을 입으로 가져간다거나, 자기가 가지고 논 장난감을 제자리에 정리한다거나, 낮잠을 자자고 했더니 스스로 방문을 닫고 옆에 와서 눕는 것 등등. 아이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날수록 ‘꼬맹이가 저만큼이나 컸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엄마인 나도 조금씩 달라지는 느낌이다. 출산하며 공부와 멀어지는 것 같더니 어느새 책 읽기 모임을 시작하고, 매달 글을 연재하려다 보니 마치 수행자와 같이 일상을 조율하며 지내게 되었다. 그 안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생활이 단순하게 바뀌어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맘 카페를 포함해 나를 홀리게 하는 모든 욕망으로부터 마음을 붙잡는 하루하루가 이어질수록 집안도 깨끗해졌다.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밥 먹는 것, 운동, 글을 쓸 시간을 확보하는 것. 이 하나하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어느 한 군데서 문제가 생겼다. 남편과 싸우거나 피곤해서 아이에게 짜증을 내거나 등등. 비록 여전히 여러 욕망들에 흔들리지만, 글쓰기는 내 생활의 필수 조건이 되었다.

정화스님은 “사는 것은 변하면서 되어 가는 사건들의 연속”(『나와 가족 그리고 가까운 이들을 그냥 좋아하기』, 정화 지음, 북드라망, 41쪽)이라고 말씀하셨다. 여러 인연 조건에 따라 순간의 ‘사건’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엄마가 되었더라도 실제로 24시간 엄마의 역할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는 무수한 나의 모습이 있었다. 기저귀를 갈거나 수유할 때는 엄마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글을 쓸 때와 밥을 먹을 때는 또 다른 내가 되는 것이다. 어떤 조건과 만나느냐에 따라 그때 그때의 나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은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서 오로지 ‘엄마’로써 존재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그동안 나를 답답하게 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이 ‘엄마’의 역할도 필요 없어질 때가 올 것이다. 그 순간이 오면 ‘엄마’의 삶에 집착하지 말고 그때의 또 다른 나의 삶에 만족하며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규정해온 과거의 이미지로부터 끊임없이 떠나는 연습을 해야하지 않을까? 이제껏 ‘기억된 나’를 내려놓고 그 순간의 인연들과 오롯이 접속하는 법을 배워나가기. 그것이 나의 공부이자 성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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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연
보연
5 months ago

우아. 너무 멋져요. 육아를 하면서 독서모임에 글까지 쓰다니요? 저는 요새 육아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고립되지 않고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고민중이에요. 그 고민은 넓은 집, 훌륭한 교육 환경이 있는 곳으로 이사간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닐 것 같구요. 아이도 나도 부모도 더욱 더 공동체에서 열린 관계를 만들어 가야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소민샘 글이 많은 도움되네요. 감사해요 ^^

소영
소영
5 months ago

항상 재밌게 읽고 있어요^^ 모든 일상은 공부를 통해 새로 태어날 수 있군요. 이 글을 읽으며 절절히 느낍니다 내 자신이 좀 부끄럽기도 하군요 ㅎㅎ 소민님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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