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명 순 (글쓰기학교 수요반)

내가 가장 꺼리는 것 중의 하나가 대가 없이 생기는 돈이다. 언젠가 어떻게든 갚아야 한다는 부채감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백수가 된 나의 소식을 듣고서 한 친구가 그동안 직장생활에 수고가 많았다며 선뜻 백만원을 주었다. 예전의 나라면 결코 받지 않았을 것이나,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짠순이인 그 친구의 그 행동은 예사롭지 않았기에 일단 받아 놓고 정말 받아도 되는 돈인지, 받는다면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아봐야겠다 싶어서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고미숙, 2014)를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돈이란 축적과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잘 써야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사람들은 대개 벌어서 쓴다고 순서를 생각하지만, 저자는 잘 쓰기 위해서 잘 벌어야 한다고 선후를 뒤집어 놓는다. 사람들이 돈을 버는 가장 큰 이유는 나중에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다. 한마디로 노후대책이다. 이때 돈을 버는 것과 행복이 분리되어 있다. 이와 달리 저자는 돈을 버는 과정도 쓰는 과정도 삶이며, 돈을 벌고 쓰는 지금이 행복해야 노후도 행복하다고 주장한다.

그럼 어떻게 벌고 써야 행복한가? 먼저 버는 과정이다. 번 돈과 나의 자존감이 분리되지 않아야 한다. 아마도 비굴하게 혹은 인색하게 버는 돈은 그렇지 못하리라. 이때 한방을 노리지 말고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말고 일상적으로 차곡차곡 모으라고 한다. 온갖 소비의 유혹이 넘쳐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삶의 명확한 비전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저자가 허투루 쓰지 않고 알뜰하게 모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사람과 공부에 대한 욕망이었다. 책과 사람으로 연결된 세상, 사람과 더불어 무언가를 탐구해 가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고 자신의 비전을 설정하니 돈은 저절로 모이게 됐다는 것이다. 돈을 많이 모으겠다는 돈의 비전이 아니라 그 돈으로 어떤 삶을 살겠다는 삶의 비전이 저자와 현대인 간의 가장 큰 차이다.

 

이렇게 알뜰하게 모은 돈을 저자는 어떻게 썼을까? 공부공동체를 열고 청년백수를 품었다. 자신의 비전을 위해 증여를 한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증여는 세테크의 일환으로 부모가 자식에게 미리 유산을 물려주는 개념이다. 이런 상식과 달리 저자는 가족도 아닌 타인에게 돈을 썼다. 이때 증여는 기부와도 다르고 교환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오히려 주는 사람이 더 기쁜 선물에 가깝다.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할까에 대한 답으로 자기의 욕망과 비전이 일치되는 현장을 찾은 저자는 돈이 필요한 곳에 쓴 것이다. 이때 알뜰히 차곡차곡 모은 돈을 쓸 수 있었던 제1의 원동력은 타인에 대한 호의나 베풂이 아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제일 재밌게 하는 방법을 찾다가 공동체를 위해 사용한 것이다.

엇! 그럼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경제체제인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 저자는 자본주의는 사적 소유에 너무 집착해서, 사회주의는 사적 소유를 부정하고 사회적 분배에 집착하면서 증여가 들어설 공간이 없음을 지적한다. 이 사이에서 소유와 증여가 함께 움직이는 제3의 길을 찾고 싶었다고 한다. 저자는 돈을 내놓을 때 타인을 위해 돈을 쓴다는 생각도 쓴 만큼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도 없었다. 그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위해, 즉 나를 위해 돈을 썼는데 결과적으로 그 돈의 혜택을 받는 공동체의 구성원보다 자신이 가장 행복해지더라는 것이다.

교환과 계약에서 증여와 순환으로! 돈은 궁극적으로 이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돈의 운명이다. … 증여가 되려면 삶을 창조하는 데 써야 한다. 내용이 뭐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 사람이 오면 더불어서 많은 것이 함께 온다. 밥과 공부, 그리고 또 다른 사람과 활동, 기타 등등. 현대인은 이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하려 든다. 그러니 평생 죽어라고 벌어도 항상 모자라는 것이다.

(고미숙, 『돈의 달인 호모코뮤니타스』, 북드라망, 2014, 153-155쪽)

교환은 종료되면 상대와의 관계를 분리하지만, 증여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연결한다. 처지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모임에서 증여는 마중물이 되어 각자 지닌 유형·무형의 다양한 능력과 잉여를 주고받게 한다. 예컨대 나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지만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물건을 나눠 줄 수도 있고, 청소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기꺼운 마음으로 청소를 주도할 수도 있다. 돈, 능력, 잉여 등이 한데 어우러져 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일상과 삶이 재배치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교환관계에서는 맛볼 수 없는 풍성한 삶의 공간이 열리는 것이다.

책에 의하면 내 친구는 내게 ‘증여’를 한 것이다. 짠순이 그녀에게 세상 가장 재밌는 일은 돈을 모아서 불리는 것이고, 심지어 돈을 써야 할 때는 화가 많이 난다고 했다. 나의 소비에 대한 잔소리도 때론 엄마보다 심하게 늘어놓아 만나기를 꺼리던 친구였다. 그런데 작년에 이런저런 공부를 하면서 돈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며, 내게 선뜻 거금을 내민 것이다. 그날 밤 그녀에게 변화가 시작되었다. 내게 돈을 주고나자 자신에게조차 인색했던 모습을 본 것이다. 지난겨울 난방비가 아까워 온갖 궁상을 떨며 지낸 그녀는 다음날 철지난 온풍기를 한 대 샀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쓰지 않는 전기장판과 뜯지 않은 내복을 나눠주었다. 교환가치로 따지면 말도 안 되지만 짠순이의 추운 밤이 따뜻해지는 일상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급기야 나는 “이게 다 내가 그 돈을 받아줘서 가능한 일이라고, 내게 고마워하라”고 외려 큰소리까지 쳤다.

그녀는 정말 그랬다며 어설픈 위로도 자기과시도 아닌, 자기가 변해서 그 돈을 내놓았다는 것을 알아채고 받아줘서 고마웠다는 말까지 하였다. 『돈의 달인』 덕분에 나는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그 큰돈을 받게 되었고, 둘 사이에 이전과는 다른 우정의 관계가 열리게 되었다. 나는 그녀의 변화에 마음을 열게 되었고, 함께 식사도 산책도 하고 무엇보다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로 바뀌었다. 친구가 그 돈을 내놓지 않았다면 내가 받지 않았다면 누릴 수 없는 존재의 마주침을 경험하고 있다. 증여는 더 이상 내게 세테크도 기부도 아니다. 그것이 만들어내는 흐름과 순환이 타인과의 관계성을 만들어내는 마중물이며, 내 삶을 창조하는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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