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복

어떤 사람이 몹시 취해서 다 토하고 깊은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거꾸로 보였다. 의사가 그의 맥()을 보니 왼쪽 관맥(關脈)이 부촉(浮促)하였으므로 과체와 여로를 써서 아침나절에 토하게 하자 물건이 평상시와 같이 바로 보인다고 하였다. 대체로 이것은 술에 상해서 토할 때 상초(上焦)가 뒤집히고 담()의 위치가 거꾸로 되었기 때문에 사물이 다 거꾸로 보이게 되었던 것이므로 다시 토하게 하여 담을 자기 위치로 돌려놓으면 저절로 낫는다.

(「잡병편」, ‘괴질’, 1619쪽)

술을 지나치게 마실 경우, 종종 토하는 경우가 있다. 술은 화(火)기운을 지니고 있어 위로 솟구치려 하기 때문이다. 토하는 게 고통스럽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쏟아냈으니 얼마간 시원할 테고 잠까지 푹 자고 나면 아침엔 괜찮아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깨어보니 사물이 다 거꾸로 보인다? 얼마나 황당할까?

natural-2790892_640

의사는 그 원인을 전날 밤 토했던 때문으로 보고 있다. 지나치게 토하는 바람에 상초(上焦)와 담(膽)이 뒤집혀 그리됐다는 것. 헉! 장부가 뒤집힐 수 있다는 걸 여기서 처음 듣는다. 상초와 담이 그렇게 헐렁한 장부였던가? 뒤집힐 정도로? 또한, 담이 사물의 상을 바로 보이게 하는 기능을 하나? 토하는 것이 담이 거꾸로 뒤집힐 만큼 격렬한 운동인가?

한의학에서 담은 간에 박처럼 붙어 있으면서 간의 남은 기가 전달되어 담즙을 이룬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눈에는 오장의 정기가 다 모여 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기능을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간과 담의 기운이 크게 작용한다. 눈과 간/담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또한, 눈은 뇌와 연결되어 있다. 오장의 정기는 눈의 맥락(脈絡)과 합병되어 목계(目系)를 형성하는데, 목계는 위로 올라가 뇌에 닿고 뒤로 나아가 목덜미에 이른다.’(외형편, ‘’, 603) 눈-간,담-뇌는 하나의 계열을 이룬다. 눈은 서양의학에서도 뇌의 일부가 변형된 것으로 본다. ‘시각은 뇌의 연장이며 두개골에 싸인 뇌의 일부가 뻗어 나와 밖으로 노출된 것이 우리의 눈입니다’(12감각,알베르트 수스만 지음, 서유경 옮김, 푸른씨앗) 상이 맺히는 곳은 망막인데 망막의 시세포는 그것을 전기적 정보로 전환하여 뇌에 연결된 시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한다.

『동의보감』에는 망막에서 상이 맺힌다는 내용은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의사는 상초와 담이 거꾸로 뒤집혔기 때문에 모든 게 거꾸로 보인다고 생각했을까? 간단하다. 거꾸로 보이는 증상을 보고, 보는 것을 주관하는 장부인 담이 뒤집혔다고 본 것이다. 물론 맥을 보고도 알았다.

맥 중에서 관 맥은 의사들이 손목에 세 손가락을 데고 맥을 짚을 때 가운데 손가락이 닿는 부위인데 상초(上焦)와 목기(木氣)를 진단하는 부위이다. 이 관맥이 부촉하다는 것은 상초와 목기의 장부인 간, 담에 이상이 생겼다는 신호. 의사는 이것을 담이 거꾸로 위치한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그 치료가 토(吐)라는 게 특이하다.

pumpkin-3630614_640 (1)

한의학에서 토(吐)는 병증이기도 하지만 ‘한(汗 땀내기)’, ‘하(下 설사하기)’와 더불어 중요한 치료법이다. 상고시대부터 고명한 의사들이 써 오던 것인데 그 효험은 신묘하여 이루 헤아릴 수 없다(1000) 고 한다. 그러나 잘못 토하게 하면 오히려 환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면서 주의를 요하고 있는데 그 첫째가 될 수 있는 한 봄에, 그리고 날씨가 맑을 때 하라고 한다. 봄이나 맑은 날은 위로 솟는 기운인 목기(木氣)가 왕성할 때다. 그러니까 치료도 우주의 기운에 맞추어 계절과 날씨에 따라 하라는 것. 그래야 무리가 없다. 부득이 계절과 날씨까지는 맞출 수 없다면 시간만큼은 지키라고 했다. 토하는 것은 진시(辰時, 7~9)나 묘시(卯時, 5~7)에 하는 것이 좋다. 이른 아침부터 한 낮까지는 천기(天氣)가 양()에 속하는데 이때는 양중지양(陽中之陽)이다.’(1002) 아침에는 자연의 기도 위에 있고 사람의 기도 위에 있어 양중의 양이라는 것. 우주의 기운과 치료가 호응한다.

신체에서 가장 윗부분을 한의학에선 ‘상초(上焦)’라 한다. ‘머리에서 명치까지’를 말한다. 머리의 뇌까지를 포함하는 게 상초다. 토할 때 소리를 내며 힘을 주는 부위는 상초이다. 상초의 기운을 이용해 위로 뱉어내게 된다.

그런데 위의 술 취한 자는 밤에 토했다. 밤은 활동이 멈추고 기가 아래로 내려가 쉬는 시간. 이러한 때에 위로 토했으니 자연의 흐름과 반대로 한 셈이다. 그러니 상초와 담에 무리가 가서 뒤집혔다고 본 것이다.

의사는 밤에 토해서 병이 생겼다고 보고 아침에 토하게 해서 치료했다. 아침에 다시 토하게 하니 상초와 담이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거꾸로 맺혔던 상이 다시 거꾸로 맺혀서 바로 된 것! 이처럼 간단하게 치료하다니! 신묘하다.^^ 여기서 포인트는 아침나절에 토하게 했다는 점이다. 자연의 순리에 따랐다. 그러니 무리 없이 담이 제 모양과 자리로 돌아왔다.

요즘 현대의학에서는 보기 힘든 치료법이다. 치료가 이러할진대 삶의 태도야 더 말해 무엇하랴. 우주 자연의 순행원리를 알고 그에 따라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의 기술이다. 토할 때 밤에는 하지 않도록 주의할 일이다. 아니 그 전에 술을 자제하여야 밤에 토하지 않을 수 있다.

meadow-811339_640
우주 자연의 순행원리를 알고 그에 따라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의 기술이다.

댓글

ava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