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희씨(감이당 금요대중지성)

류머티즘을 앓기 시작한 스무 살 이후 내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몸의 항상성 유지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잘 먹고 잘 자고 명랑함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을 중심축으로 일상을 새롭게 구성했고 그 힘으로 40년을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병에 대한 내 태도는 투병에서 동행으로, 다시 병과 몸에 대해 탐구를 해야 겠다는 마음으로 바뀌었고, 감이당(인문의역학 연구소)을 만났다. 이후 동서양의 고전을 읽고 글을 쓰면서 오랜 세월 ‘류머티즘’에 묶여있던 인식의 범위가 ‘삶 전체’로 확장되었다.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자 마음이 여유로워지면서 류머티즘 자체도 훨씬 편안해졌다.

오랜 세월 붙들고 씨름해 온 과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는 안도감을 느낄 즈음 뭔지 모를 공허함이 찾아왔다. 그 무렵 나는 『주역』을 공부하고 있었고, 『주역』은 모든 인생사가 관계와 배치의 산물임을 말해주었다. 즉 다른 존재와의 관계, 다양한 조건들의 배치가 만들어내는 사건들을 통과하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며, 고로 모든 존재는 본질적으로 연결을 갈망한다는 것. 그렇다면 이 공허는 내 인식의 범위가 여전히 ‘나’라는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고, 남은 생을 충만하게 살려면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야 했다.

그 무렵, 중국 우한에서 원인 모를 폐렴이 발생했다. 짧은 시간에 손 쓸 틈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에서도 환자가 발생했고, 신천지라는 종교 집단을 통해 확진자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처음에는 독감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마음 한 편에는 의문이 남아 있었다. 독한 감기 정도라는데 왜 저렇게 많은 사람이 순식간에 죽어 가지? 우리나라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하고 환자의 통계 수치가 가파르게 치솟자 의문 사이로 문득 문득 불안과 공포가 파고들었다.

그즈음 그 원인 모를 폐렴에는 ‘코로나19’라는 공식 명칭이 붙었고, 감이당의 프로그램도 하나 둘 중단됐다. 그놈이 어떤 놈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뚜렷이 밝혀진 게 없었다. 코로나는 원인도 대책도 알 수 없는 상황에 우리 모두를 던져 놓았다. ‘나’의 류머티즘이 아니라 ‘우리’의 코로나19! 이 전염병은 전혀 생각지도 않은 방식으로 너무도 갑작스레 나를 ‘우리’의 문제 한복판으로 뛰어들게 한 것이다. 이때부터 코로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신경이 집중되었다.

관련 기사를 꼼꼼하게 챙겨 읽고 질병관리본부의 발표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확인했다. 그걸 기준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함께 결정했다. 머지않아 끝날 줄 알았던 상황은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일상이 지속되면서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일시적인 전략이 아닌 근본적인 해법을 찾고 싶었다. 카뮈의 『페스트』 속 등장인물에 다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다. 몇 년 전 메르스가 지나간 뒤, 잠시 『페스트』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메르스는 우리를 잠시 긴장시켰을 뿐, 모두의 사건이 되진 못했기에, 곧 다른 일들에 밀려 잊혀졌다. 코로나19는 달랐다. 전 세계인이 함께 겪는 중이며, 우리 모두의 일상을 하나 둘 바꿔놓고 있었기에 『페스트』 속 그들의 고민과 처지가 더욱 실감났다.

1940년대 지중해 연안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도시에 페스트가 들이닥쳤다. 가족 중 누군가가 페스트에 걸리면 간호는 고사하고 생이별을 당해야 하고, 산더미처럼 쌓이는 시체를 감당할 수 없는 처지라 장례는커녕 구덩이에 제대로 묻히기조차 어려웠다. 그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는데 살아야 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한 그들의 처지가, 코로나19의 한가운데서 손 씻기와 마스크 쓰기 외에는 별반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태로 살아가야 하는 지금 우리의 처지와 너무도 흡사하다. 또한 살던 대로 살아서는 그들도 우리도 무한히 반복될 것만 같은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 보인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란다는 점, 병 자체도 고통스럽지만 단절과 배제로 인한 고립감 때문에 괴롭다는 점 등등이 어찌 그리도 닮았는지….

내 인식의 지평을 ‘나’에서 ‘우리’로 넓혀 보려던 참에 터진 코로나 사태는, 질병과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의 근원을 탐색하고 싶다는 마음에 불을 지폈다.

그런다고 해서 당장 생각이 깊어질 거라 기대하진 않는다. 미리 짜 놓은 목차도, 특별한 계획도 같은 것도 없다. 지금도 ‘페스트’는 진행 중이고,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도 없다. 그러니 『페스트』를 읽으며 그때그때 생기는 질문, 눈길이 가는 에피소드, 나를 붙드는 구절들 중, 페스트와 코로나, 류머티즘을 함께 떠올리게 하는 것들을 하나씩 곱씹어볼 생각이다. 의사 리유는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이 성실성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지금 이 코로나 국면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일상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 페스트가 창궐하던 그 시점에, 코로나로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와중에, 사람들은 왜 평소보다 더 많은 사치품을 사들이거나 쾌락에 탐닉하는지 등등….

그리하야 ‘나’의 경계를 넘어 나를 포함한 ‘인간’의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로 한 발 나아가게 된다면, 그 과정에서 얻는 기쁨과 소소한 깨달음들을 독자들과 나눌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4
댓글

avatar
최근 항목 오래된 항목 인기 항목
이여민
Guest
이여민

샘의 여정에 동참!!

이달팽
Guest
이달팽

샘! 너무 감동적이에요! ㅋㅋ
내 문제를 넘어서 이제 인간의 문제를 탐구하시는 길을 가신다니 !
페스트와 코로나와 류머티즘의 만남, 기대됩니다ㅎㅎ

炯鎭
Guest
炯鎭

소소한 깨달음을 나누는 독자가 되렵니다 ㅎㅎ…

이승현
Guest
이승현

정주행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