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글쓰기학교 토요반)

『동의보감』은 우리나라 사람이면 대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잘 모른다는 책이다. 일단 고리타분하고 약간 곰팡이 냄새날 것 같은 책이다. 나도 이번 코로나 아니었으면 읽어 볼 일이 없었을 것이다. 코로나 덕분에 주말에 각종 모임이 취소되면서 모처럼 귀한 시간을 얻었다. 더구나 저자가 그 책을 읽고, 본인의 질병을 치유했을 뿐 아니라, 큰 깨달음을 얻었다니 솔깃해지지 않을 수 없다. 고미숙의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를 읽으면서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이 과거에 어떤 사상으로 질병을 생각하고 치료받고 있었는지 너무 무지했다. 그동안 동양의학에 관해 관심조차 없었고, 크게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심장클리닉에는 한약 복용 후 부작용이 있어 내원하는 분들이 꽤 있다. 대표적인 한약재 중 하나인 감초는 부종을 일으킨다. 신장에서 소변 배출을 줄이기 때문에 혈압도 올라간다. 마황은 심장박동을 불규칙하게 만드는 부정맥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부작용들을 가끔 경험하는 나는 평소에 동양의학을 불신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한의학적인 지식은 동양의학의 아주 지엽적인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의보감』과 서양의학과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은 무엇일까? 나에게는 질병을 보는 관점이 아주 다르게 느껴졌다. 서양의학은 질병을 삶에서 ‘없어져야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질병을 분리해서 퇴치하거나 이겨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다. 반면 『동의보감』에서는 질병이란 삶의 필연적인 과정으로 본다. 살아가면서 반드시 아프고 질병에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나에게서 떼어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걸음 더 나간다. ‘생명은 아파야 산다’고.

나는 다섯 살 때 홍역을 앓고 난 후, 알러지 천식이 생겼다. 봄, 가을에 꽃가루 날리거나 미세먼지가 많은 날은 영락없이 기침과 숨찬 증세가 온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빨리 뛰는 것이 어려웠다. 친구들을 좇아가지 못해 나는 ‘왜 이런가’ 자책도 많이 하였다. 때로 천식을 부정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숨찬 증세가 악화되었다. 50미터를 빨리 뛰면 호흡곤란이 왔다. 시험 전날 잠 안자고 공부하면 다음날 증세가 나타나 오히려 시험을 망쳤다. 나는 나의 한계를 알게 되었다. 몸에 대해 알고 싶었고 관심이 많이 생겼다. 생각해 보면 천식이 있었기에 나의 한계를 보았고, 역설적으로 천식이 있었기에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의 진료실을 찾는 분들의 대부분은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가 있는 분들이다. 대개 나이가 50대 이상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혈압이 올라가고 혈당이 올라가는 것은 일반적인 노화현상의 일종이다. 이러한 현상을 나에게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을까? 이게 다 질병이고, 퇴치해야 할 것이라고? 이것은 노화를 질병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노화방지는 인간지식의 만용과 오만이다.

저자는 ‘질병과 죽음을 빼고 나면 삶이 너무 왜소해진다’고, 아니, ‘그걸 빼고는 삶이라고 할 게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온갖 병을 앓는다. ‘산다는 것 자체가 아픔의 마디를 넘어가는 과정’이며, 삶의 풍요로움은 이 병과 죽음을 어떻게 끌어안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나이 들어가고 늙는 것은 자연현상이고, 우주의 이치와 묘하게 닿아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고, 생로병사가 있다. 가을과 겨울도 동등하게 아름답다. 우리의 해부학적 구조와 행동패턴은 우주의 패턴과 리듬을 타고 있다.

돌연사(갑작스런 죽음)의 위험군 중 아주 의외의 것이 있다. 평소 아주 건강하고 건강을 자신하는 사람이다. 아주 건강한 게 위험하다는 것이다. 건강해서 산에도 빨리 오르고, 힘도 좋은 사람, 웬만큼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 사람, 담배를 오랫동안 피워도 기침 가래가 없고,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 사람, 이 사람들이 요주의 대상이다. 그래서 영안실에 조문을 가면 흔하게 듣는 말이 있다. “그렇게 건강했던 사람이 갑자기 죽다니.”라고 의아해 한다. 평소 여기저기 아픈 사람들은 갑자기 죽지 않는다. 자기 몸을 더 생각할 수밖에 없고, 몸을 돌보게 되기 때문이다.

천식이 없었다면 나는 몸 관리에 관한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나의 삶의 치유자는 천식이었고, 나 자신이었다. 저자는 ‘스스로 자기 몸의 주인이 되어, 자기 병을 알아 스스로 치유해 가라’고 한다. 여기에 『동의보감』에서 중요한 키워드인 ‘양생’이 나온다. 양생이란 ‘철저한 자기배려의 기술’이다. 나를 돌보는 지혜이다. 따라서 『동의보감』의 관점에서 보면 의사의 역할에 관해 ‘의사는 모름지기 의술을 베푸는 일보다, 몸과 질병에 대해 지혜를 가르쳐 주는 존재여야‘ 한다. 천식이 있는 나는 천식이 있었기 때문에 내 몸의 한계를 느꼈고, 그래서 내 몸 관리를 할 수 있었다. 천식이 곧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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