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 슬기로운 유배생활

2부 슬기로운 유배생활(1) - 군자는 어떻게 유배지와 만나는가

문리스(남산강학원)

재능이 결과를 만든다는 것 ; 마이클 조던과 청년 양명

저는 청년기 양명의 다섯 가지 탐닉이 양명학의 기본 성격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양명학은 사대부 명문가 출신으로 개인적으로 출중한 능력을 겸비한 어떤 슈퍼맨이 만들어낸 학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에는 조금 설명이 필요한데, 이를테면 왕양명이라는 인물과 양명학이라는 학문적 위상을 각각 개별적으로 인식한다면 이 둘 사이에는 얼핏 자연스러운 연결 고리가 그려집니다. 다시 말해 한 재능 많은 사대부 유학자가 열심히 노력하여 학문의 일가를 이루었다는 구조. 그런데 그 내막을 조금 들여다 보자면 양명의 일생은 초년기부터 흥미로운 사실들이 보입니다.

어떤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 이를테면 집안 배경이나 개인적 능력 같은 것, 우리는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도 있으면 나도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식의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거꾸로 그런 조건들 때문에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없게 된다면? 일반적으로 좋아 보이는 조건이지만 그 역시 하나의 조건일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해보면 어떨까요. 다시 말해 조건은 그저 조건일 뿐인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조건인지 아닌지는 그가 그 조건을 어떻게 겪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저는 양명에게 주어졌던 조건들(양명의 재능들이라고 말해도 좋습니다)이 양명을 오늘날 우리가 존경하게 되는 양명이 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보면, 양명은 자신의 조건(재능)을 다해서 자신의 조건이 다다를 수 있는 영토를 있는 힘껏 떠나는 것으로서 오늘날의 양명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양명의 다섯 가지 탐닉이 이러한 사실을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만약 사대부 자제가 아니었다면 혹은 전국 1등이 아닌 평범한 아버지를 가진 청년이었다면, 혹은 타고난 재능이 별 게 아니었다면, 양명이 불교와 도교를 넘나드는 일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시를 짓고, 말을 타고 천하를 주유하며 호연지기를 쌓는 등등의 일에도 아마 훨씬 자유로웠을 것입니다.

회시 장원 급제자의 재능 넘치는 맏아들로 정체(identify)된다는 것이 양명에게 어떤 무게였을까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의 실존 측면에서는 오히려 큰 제약이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이런 생각들도 모두 억측입니다. 다만 용장땅에서 보여주는 양명의 행적들은 단순한 유배생활의 한 시기로 치부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곳곳에 산포되어 있습니다. 거칠게 뭉뚱그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것은 이제까지의 양명을 구성하던 모든 것들을 버리고 나아가는 데서 새로 얻어낸 것들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것의 외부로서의 용장이고, 거의 모든 것의 부정 위에서 양명학은 비로소 새로운 길을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없는 조건을 만들어가며 살아야 하는 삶이 힘든 거야 말할 게 없습니다. 하지만 번듯한(!) 재능=조건이 충분히 많다는 게 꼭 좋은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니 그 번듯한 재능=조건들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입니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마이클 조던에 관한 다큐 <더 라스트 댄스(The Last Dance)>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마이클 조던이라는 지구 스포츠 역사상 유례없는 스타 플레이어에 대한 다큐라는 점에서도 큰 관심을 모았지만, 현장 스포츠가 얼어붙은 전지구적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 상황에서 스포츠로 과거를 향수하려는 사람들에게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것은 흠… (공자의 제자를 자처하는 맹자식 어법을 패러디해 말한다면), 마이클 조던과 같은 시대에 코트를 달렸던 한 사람으로서, 저는 이 다큐에서 그려진 마이클 조던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익히 알고 있던 마이클 조던이 아니었습니다. 예컨대 마이클 조던의 인생 스토리 라인은 이렇습니다. 최고의 재능(인성까지 반듯한)을 갖춘 선수가 있었다. 그는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노력한 끝에 NBA 최고선수가 되었다.

(출처 : @ESPN via twitter: https://bit.ly/3axe0KL)

넘치는 재능. 자기 분야의 최고 선수.

얼핏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 이 둘 사이가 생각만큼 당연하거나 자연스러운 건 아닙니다. 요컨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두 개의 사실이 있습니다. 마이클 조던은 훌륭한 재능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마이클 조던은 NBA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라는 것. 하지만 이번의 제가 느낀, 이번 다큐의 포인트는 마이클 조던의 인생(!)에서 이 두 개의 사실이 서로에 대해 필연성을 갖게 되는 과정(!)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즉 어떤 결과(위대함)는 그 재능에 노력(성실+열정…)을 더한 결과라는 식의 1차 방정식이 아니라는 것. 마이클 조던의 탁월함은 일반적인(보통의?) 최고 선수의 길과 달랐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재능을 다해 재능만으로 다다를 수 없는 길을 찾는 데 썼다는 데 있습니다. 그게 래리 버드와 매직 존슨이 보여준 최고선수의 어떤 길과 분기되는 진짜 황제 마이클 조던의 길이었다는 것이죠.

얘기가 옆으로 좀 많이 새버렸는데, 저는 마이클 조던에 관한 다큐 이전에도 이미 양명의 특별함은 그가 자신의 모든 재능을 버려야 했던 곳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 경의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보통의 학자처럼 되고 싶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의미에서, 양명은 우뚝한 학자가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그는 충분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양명은 우뚝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제자들에게 태산이기보다는 평지가 될 것을 강조했던 스승이었습니다. 그리고 양명이 학문을 강학하던 고향 월땅에는 양명과 함께 공부하러 오는 이들로 큰 마을이 형성될 정도였습니다. 아마도 마이클 조던이 스스로의 재능을 저 자신에게만 집중해 썼다면 그는 아마 평균 득점 30-40점대의 득점왕이거나 올스타 MVP이거나, 나이키 등의 스포츠 브랜드 최고 수익 광고모델이거나 정도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이클 조던은 결정적인 순간 경기를 마무리하는 선수가 자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농구가 팀원들과 함께 이루는 팀 스포츠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미 최고의 선수였음에도 작든 크든 어떠한 승부에서든 자신의 모든 능력을 쏟아 붓는 것으로, 매 순간 스스로를 자극해 끊임없이 승부의 동기를 부여하며 자신을 몰아넣는 것으로, 그는 자기 재능을 다하여 재능으로만 도달할 수 없는 길을 만들어 나아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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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하루헌기>로 돌아가봅니다. 용장에서 만난 묘족(그리고 동족)사람들은 비록 “독특한 상투를 틀고, 새소리 같은 말을 하고, 산에 살며, 짐승가죽”옷을 입고 있지만 오히려 “순후 독실하고 바탕이 소박”합니다. 번듯한 예절은 없지만, 사람으로서 자질을 잃은 적이 없습니다. 이들에 비하면 거꾸로 중원땅의 문명인들은 겉만 번지르르하여 수레를 타고 의상을 갖춰 입고 다니며 거대하고 화려한 궁실과 같은 건물 등에 살지만 “속으로는 독을 쏘려는 마음을 품”고 있는 상황입니다. 도대체 어디가 문명이고 어디가 오랑캐 야만일까요. 양명이 만난 타자(원주민 묘족, 동족)들은 비록 말이 통하지 않고 살림살이가 초라하지만 말을 하게 되면 “바른 말을 좋아하고 욕하는 말을 싫어하며 감정에 솔직”했습니다. 그 말을 꾸미는 정도와 그 사용하는 문물 제도의 다채로움 따위로 묘족인들을 비루하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양명의 슬기로운 유배생활은 이렇게 본격화됩니다. 돌이켜보면 임협, 기사, 불교, 도교, 문장이라는 다섯 가지를 통해 양명은 자신의 천부적인 조건들의 외부를 탐사한 셈이었습니다. <하루헌기>는 청년 양명의 이 다섯 가지 중독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임협, 기사, 불교, 도교, 문장 등은 양명의 기질적 특이점을 설명하는 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다르게 보자면 이것은 양명이 자신의 재능을 다하여 이 다섯 세계로 상징되는 외부적 타자성을 힘껏 탐사했던 과정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양명은 재기 넘치는 그 시절 많은 사대부 유학자 청년들이 갈 수 있었던 길과는 다른 길을 열어냈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재능이 열어준 길일까요, 재능이 열어준 길을 거부해서 얻은 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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