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합리화의 달인, 호호미

이호정(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질투’는 자연스러운 거 아니야?!

‘질투’는 정말이지, 한때 나의 존재적 화두였다. 순식간에 솟아오르는 그 뜨거운 열기를 나는 도저히 통제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와 그 애는 같은 곳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우리는 따로 어디 갈 데도 없었다. 아…제대로 궁지에 몰린 생쥐랄까!

나는 사람의 머리와 마음이 이렇게나 따로 놀 수 있다는 걸 그때 아주 지독~히 생생하게 느꼈다. 분명 머리로는 온갖 이론을 배운다. 소유욕은 생명의 원리에 반하는 일이고, 집착은 괴로움을 낳을 뿐이고, 공동체에서 질투라는 건 용납할 수 없는 감정이고…. 마음 길을 탐구하는 불교 세미나에 가서 허우적댄 적도 있다. 불교 경전에서는 나의 이런 마음을 다스리라는 말들이 아주 멋지고도 아름답게 나와 있어서 나는 읽는 것만으로 수행이 되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몹시 좌절했다. “이거 잘 알겠는데, 왜 저는 안 되나요 부처님?…ㅠㅠ”

나의 몸은 배운 것과 정반대로 작동했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아주 작은 일에서도 감정이 크게 증폭되어 일어났다. 이제는 그 애가 이성과 눈을 마주칠 때라든지, 옆에 이성이 있기만 해도 스스로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감정이 올라왔다. 그럴 때면 어딜 가서 좀 울고 와야 했다.

나의 울음터 스팟은 주로 남산 산책로였는데, 밤에는 무서워서 건물 옥상을 이용하거나 집으로 뛰쳐 가기도 했다. 그렇게 엉엉 울면서는 억울함과 서러움이 폭발★했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돼! 다른 사람은 괜찮은데 왜 내 몸은 이런 거에 이렇게 크게 반응하는 거야!! 나는 왜 이러는 거야.. 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거야…ㅜㅜ’ 그렇게 울다보면 어느새 약간의 감정해소가 되면서, 묘한 느낌이 찾아온다. 나 자신이 한껏 약해져있는 그 순간에 내가 그런 나를 보고 있으면, 갑자기 막 어딘가 불쌍해지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내가 나를 위로하기 시작한다. ‘괜찮아, 금방 지나갈 거야..’ 혹은 연민한다. ‘어떡하니 정말…ㅜㅜ’ 그러고 나면 신기하게도 실제로 좀 괜찮아(?)진다. 그렇게 약간은 후레쉬해진 상태로 다시 들어가서 나는 또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유지한다. 그런 식의 날들이 몇 달이고 이어졌다. 매일 매일이 롤러코스터 맨 앞자리에 탄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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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한다고 실제로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기에 내 감정 상태의 심각성은 공동체 식구들에게 알려졌고, 그때부터 나는 적극적으로 질투라는 감정을 끊어낼 것을 약속해야 했다. 주위에 그와 관련된 일체의 말을 하지 말 것, 감정이 올라와도 어떻게든 스스로 소화를 할 것, 티를 절대로 내지 말 것.(이전까지 나는 혼자서 해결하는 것 외에도 친구들에게 감정을 털어놓거나 그 애를 들볶는 일이 많았다!)

그것은 아마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 동료로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의 개입이었을 것이다. 나도 물론 그게 좋은 방법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질투금지령이 내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공부의 동력을 잃어버렸다. 마음이 불끈불끈 치솟는데 이걸 하지 말라니? 내 몸이 이렇게 반응을 해버리는데 이걸 없던 일로 만들라니! 그건 마치 ‘나’라는 존재를 없애라는 명령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갑자기 여기서 ‘공부’를 한다는 게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가 흐려지면서, 이 모든 게 나를 내리누르는 ‘억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당시 나는 공동체 살림살이를 훈련하는 그룹에 속해있었는데, 내가 겪는 문제로 함께 고민해주던 선생님과 동료들에게 나는 덜컥 발표(?)를 해버렸다. “여기서 하는 공부가 억압처럼 느껴져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 뒤에 있는 말들이 내게서 흘러나왔다. 공동체 식구들에게 말할 때는 좀 더 부드러운 어투였지만, 실제로 내 안에 있는 말들은 다음과 같았다. “사람이 질투를 하는 건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 어떻게 질투를 안 하고 살아~! 내가 성인군자도 아니고, 질투 좀 할 수도 있지!!”

그렇게 나는 한동안 꽤 삐딱선을 탔다. 분명히 처음엔 나도 소유욕이라는 예속된 감정에 더 이상 끌려 다니고 싶지 않았다. 끌려 다니며 사는 인생이라니, 너무 볼품없지 않은가!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그 마음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 스스로가 삶의 주인으로 살지 못하도록 만드는 소유욕, 그것에 대해 확고했던 문제의식이 모래성 무너지듯 순식간에 흐려졌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질투에 시달리고 있을 때, 내 안에서 생겨난 묘한 태도가 있다. 나를 ‘안타깝게’, ‘불쌍하게’ 바라보는 것. 나는 질투심을 느끼는 데에서 그친 게 아니라, 눈물을 흘리며 나 스스로를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만들었다. ‘난 왜 이럴까…’ 가만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다. 왜 나 자신을 불쌍하게 보지? 질투 때문에 힘든 게 ‘불쌍할’ 일인가? 삶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공부를 시작했고, 그러면서 내 안에 거대한 ‘소유욕’이라는 굴레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오랫동안 그것에 기대 살아온 만큼, 그것을 내 안에서 떠나보내기가 쉽지 않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게 나 자신을 ‘불쌍해 할’ 일은 아니지 않나? 아니, 그 이전에 스스로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부터가 상당히 이상하다. 나는 종종 그 이상한 짓을 하곤 한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연민과 동정의 시선으로 나 자신과 타인을 쓰담쓰담하는 일은 내게 있어 아주 비일비재했다. 내가 질투하는 나 자신을 불쌍하게 여겼던 것처럼, 나는 한때 엄마를 몹시 동정했다. 난 엄마의 삶이 너무 안타까웠다. 엄마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고 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다. 그러다 결혼을 했고, 나와 동생을 낳고는 쭉 주부로 살면서 주로 집에 계신다. 난 엄마가 혼자 집에 있는 게 싫었다. 사람이 혼자 좁은 집 안에만 있으면 외롭지 않나..! 그래서 부모님 댁에서 살 때 나는 엄마랑 같이 종종 데이트를 했다. 시장도 가고, 카페도 가고, 영화도 보고, 술도 한 잔 마시고….

처음으로 부모님 댁을 떠나 왔을 때, 한동안 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엄마를 외롭게 집에 혼자 두다니…나 잘 살려고 이렇게 나와도 되나…?’ 공부를 하면서 엄마에 대한 나의 이런 감정을 얘기할 기회가 생겼고, 그러면서 나는 내가 엄마를 ‘불쌍하게’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친구들과 선생님은 내게 말해주었다. “그건 네 생각이고~”

그 말뜻을 나는 한동안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가 가여운 건 사실인데, 그게 내 ‘생각’일 뿐이라니?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그 말뜻을 알게 되었다. 집 나온 지 몇 주 지났을까, 엄마가 보고 싶어 찾아간 부모님 댁에서 나는 어느새 창고로 변해 있는 내 방을 볼 수 있었다.(여느 드라마와 같이 내 방을 쓰다듬으며 슬퍼하실 줄 알았는데..) 그리고 결정적으로, 걱정이 되어 전화를 드릴 때마다 엄마는 전에 잘 안 만나시던 친구분들과 모임을 하고 계셨다.☆

엄마를 향한 연민의 시선은, 충분히 잘 살고 계시는 엄마에게서 ‘결핍된 것’을 발견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연민이었다. 나는 엄마를 그렇게 보는 게 ‘따스하고’ ‘인간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질투를 겪다 문득 내가 너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고, 거기에 ‘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위로하고 싶은 마음’, 그것은 나로 하여금 질투와 제대로 된 대면을 하지 못하게 했고, 엄마에 대해서도 현실과 다른 망상을 하게 함으로써 부모님으로부터 자립하려는 의지를 계속 방해했다. 연민과 동정의 결과로 내 안에서는 ‘합리화’가 자라났다. “질투 좀 해도 되지 않아~?”, “엄마가 불쌍하니까 난 죽을 때까지 엄마랑 살 거야. 자립은 무슨 자립이야~”

그것은 일종의 ‘정신승리’였다. 아이를 쓰다듬는 어머니의 사랑의 손길과도 같은 목소리는 나를 혼몽한 곳으로 이끌었다. 내 앞에 놓인 게 어떤 건지를 제대로 분간 못하게 하는 합리화로 말이다. 내 안에 있는 가족 삼각형을 완성시켜주는 어머니 호호미의 역할은 바로 이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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