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복

곡기를 끊어도 배고프지 않게 하는 약

종남산(終南山)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옷을 입지 않고 온 몸에 검은 털이 나 있었으며, 구덩이를 뛰어넘고 산골 시냇물을 건너뛰는 것이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이에 여러 사람이 둘러싸고 붙잡아보니 여자였다. 그런데 그가 말하기를 나는 본래 진()나라 궁녀였는데 관동(關東)의 적이 쳐들어오자 진나라의 적이 항복하므로 놀라서 산 속으로 도망왔소. 그런데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이 없었는데 한 노인이 나에게 소나무와 잣나무의 잎을 먹으라고 가르쳐주었지요. 처음에는 맛이 쓰면서 떫었지만 그 후부터는 조금씩 먹기가 편해져서 다시는 배고프지 않게 되었고, 겨울에는 춥지 않고 여름에는 덥지 않았소라고 하였다. ()나라 때부터 한()나라 성제(成帝) 때까지는 이미 300여 년이 지난 후였다.

(잡병편, ‘잡방’, 1623)

그저께는 감이당 수업이 좀 일찍 끝났다. 도반들과 필동 언덕을 내려오다가 다들 국수 한 그릇씩 먹고 가자고 했다. 저녁을 먹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었지만 발표를 하고 조토론 하면서 떠들썩했던 터라 다들 배고파했다. 나도 배고팠지만, 비행기 탈 시간이 빠듯해서 혼자만 빠지게 되었다. 근처 제본소에 얼른 들렀다가 나와 몇 자국 걸어갔는데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땀이 삐질 나고 다리가 휘청하여 뭐라도 먹어야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반들이 들어간 국수집을 바라보니 가까운 거리인데도 아득하고 멀어 걸어가지 못할 듯했다. 마침 곁에 김밥집이 보이기에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혼자 들어가서 허기를 채우니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역시 밥이 밥이다. 그래서 밥심으로 산다고 하나 보다. 『동의보감』에서도 사람에게 기운 나게 하는 건 곡기(穀氣)라고 하면서 위는 어느 만큼의 음식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그것으로 얼마나 살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사람이 기를 얻는 곳은 음식물이다. 그 음식물이 주입되는 곳은 위이다. 위를 큰 창고라고도 하고 민간에서는 밥통이라고 하는데 음식물은 35되를 받아들인다. 보통 사람은 하루 두 번씩 변소에 가는데 한 번에 두되 반씩 5되를 내보낸다. 그러므로 7일이면 35되를 내보내게 되어 위 속에 남아 있던 음식물이 다 없어진다. 따라서 보통 사람이 음식물을 7일 동안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은 위 속의 음식물과 진액이 다 없어지기 때문이다.

(내경편, ‘위부’, 427)

음식을 못 먹었을 경우 버틸 수 있는 기간은 겨우 일주일이다. 위로 들어온 음식이 위에서 장을 거쳐 밖으로 모두 배설되기까지는 일주일이 걸린다는 것. 그만큼 음식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옛날 흉년이 들거나 전쟁이 났을 때는 어땠을까? 당연히 시체가 즐비하다. 흉년 든 해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길가에 널려져 있게 되니 참으로 슬픈 일(1622)이라고 한탄한다.

dead-trees-947331_640
그렇다면 옛날 흉년이 들거나 전쟁이 났을 때는 어땠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동의보감』엔 ‘흉년에 음식을 먹지 않고도 사는 방법’, ‘곡기를 끊어도 배고프지 않게 하는 약’을 처방하고 있다. 음식을 못 먹으면 일주일을 넘기지 못한다고 분명히 언급해 놓고서도 말이다. 그중 하나가 솔잎과 잣나무 잎이다. 위의 진나라 궁녀가 그것을 입증하고 있지 않는가? 그것도 일반적 수명이 아닌 300년! 앞으로도 더 살 것 같은 기세다. 구덩이를 뛰어넘고 산 골 시냇물을 건너뛴다니 동물보다 더 날래지 않은가? 몸이 가벼울 대로 가볍다.

곡기를 끊고 초목으로 사는 건 도가의 수련법이다. 도가에서는 곡식이나 화식(火食)이 몸을 무겁게 한다고 보고 솔잎이나 잣 잎을 먹으며 호흡을 깊게 하는 것만으로 얼마든지 장수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사람이 신선이다. 도가는 몸의 생리학이 발달했다. 몸에 대해 알아야 장수할 기술을 터득할 수 있으므로. 도가에서는 사람은 태어날 때 하늘로부터 선천 지기를 받고 태어났으니 그걸 잘 보존하는 게 중요하다. 써서 없애지 말고 보존하라는 것. 그러면 구태여 음식을 먹지 않더라도 살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그들은 욕망을 절제하여 속세에 나가서 활동하지 않고 산속에서 맑은 것을 약간만 생식하며 에너지를 보존한다. 종남산은 중국에서 유명한 도가의 발상지다. 도가의 수련자들이 진나라 궁녀에게 솔잎을 먹도록 가르쳐주었을 것이다.

nature-2830120_640

그러나 유가에서는 속세를 벗어나 산에 사는 것은 인륜을 저버리는 일이다. 나라를 세우고 세상에서 인간의 도리를 다하고 윤리를 만들며 충, 효를 하며 살아야 인간다운 삶이다. 하지만 유가는 몸의 구체적인 생리에 대해선 도가를 따라가지 못한다. ‘동의보감은 양생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그렇다고 신선술을 목표로 삼지는 않았다. 신선술의 성과들을 의술로 적극 활용하고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보통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는 현장을 중심으로 한다.’ (동의보감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45, 고미숙, 그린비)

허준이 살았던 조선은 어디까지나 유교 국가. 유교를 베이스로 하고 도교의 신선술은 ‘의학적 기술’로 적극 활용하였다. 그래서 동의보감에선 말한다. ‘『본초(本草)에는 배고프지 않게 한다는 글이 있는데 의방(醫方)에서 그 방법을 말하지 않는 것은 그 방법이 신선의 술법(術法)에 관계되고 보통사람들이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622)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신선술인데 일반인은 따르기 어렵기 때문에 말하지 않았다가 이제 비방을 공개한다는 것! 죽어가는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서다. 이게 유교 국가에서 제왕이 해야 할 첫 번째 책무이다.

water-drop-384649_640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신선술인데 일반인은 따르기 어렵기 때문에 말하지 않았다가 이제 비방을 공개한다는 것!

맞다. 음식 안 먹기, 신선술.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 역시 잠시도 못 참아 김밥집을 찾아들지 않았던가. 음식이 부족하던 옛날도 어려웠는데 지금처럼 먹는 욕망이 만연한 시대엔 더 하기 어렵다.

하지만 배고플 때야말로 신선이 될 수 있다는 건 참 아이러니다. 죽을 뻔하다가 신선으로 반전되었으니 말이다. 어려운 일을 쉽고(?) 자연스럽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기술을 익히면 흉년이나 전쟁 때에도 살 수 있으니 신선술이야말로 실용적 대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음식을 안 먹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음식을 탐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하게 된다. 적게 먹고 쓸데없는 감정을 쓰지 않는 것이 신선에 가까워지는 거니까. 기왕이면 이게 좋지 않은가.

댓글

ava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