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찬영 (감이당 장자스쿨)

(전편에 이어서)

, 자연이여! , 인간의 영혼이여!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그대 둘은 닮았구나! 물질 속에서 가장 작은 원자가 움직이거나 살아 있으면, 마음 속에서도 그것을 교묘하게 복제한 것처럼 똑같은 것이 거기에 대응하여 움직이지.”

(허먼 멜빌, 모비딕, 작가정신, 387)

마치 양자역학의 법칙을 문학적으로 서술해놓은 듯하다. 무엇보다도 허먼 멜빌은 자연을 근원적으로 연결됨으로써 설명할 수 있는 존재의 특성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은 단순히 인간의 겉 배경이나 외부적 객체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그는 진작 파악한 것이다.

자연에 대한 관찰과 앎은 결코 인간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그 앎이 확장될수록, 역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말인즉슨, 스스로를 설명하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과 인연을 해석할 수 있는 문을 수없이 만들고 열어젖힐 수 있다는 뜻이다. 각양각색의 언어를 확보하는 순간, 고정된 가치 체계에 따라 부여된 비극적 엄숙함은 그 무게감을 상실하고 유머와 농담으로 가벼워질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자신이 탔던 포경 보트가 본선과 고립되어 죽다 살아난 순간에 그가 웃으며 농을 치는 장면에서 이슈메일의 단단한 내공을 엿볼 수 있다. 죽음이 바로 코앞까지 왔다 갔다는 충격과 혼란에 빠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동료에게 유머를 발휘하며 자기 유언장의 증인이 되어달라고 하는 것이다. 로고스는 그로 하여금 어떤 상황에서든 유쾌해질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두게 한다. 그는 부활 뒤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며 만끽한다. ‘살아남음’의 경험, 이것은 삶을 잔혹한 서바이벌의 정글 세계로 전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모든 사건들과 인연들이 얼마나 더 짜릿하고 생동하는 즐거움으로 다가올 것인지 체득한 이슈메일의 유쾌한 로고스다. 그래서 그는 외칠 수 있는 것이다. 누구든 올 테면 와보라고. 자신은 이미 준비가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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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앞으로 내가 살 나날은 나사로가 부활한 뒤 살았던 나날만큼이나 즐거울 것이다. (…) 나는 이제 살아남은 셈이다. 나의 죽음과 매장은 내 가슴 속에 깊이 간직되었다. , 이제 (…) 누구든 올테면 와봐라.

(위와 같은 책, 293~4)

이는 결코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이슈메일의 의심과 직관력은 “길흉화복을 초월하여 (…) 신처럼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떳떳한 기분¹을 느끼게 한다. 결국 이슈메일은 에이해브와는 다른 항로를, 즉 ‘신을 닮은 인간’의 다른 방향성을 창조해냈다. 여기서 신이란 스피노자가 말하는 신에 가깝다.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주조해냄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지복을 온전히 누리는 인간이야말로, 신과 같은 인간이다. 에이해브는 끊임없이 어딘가로 혹은 누군가에게 달려가고 돌진하는 방향성이지만, 이슈메일은 모든 것이 자신에게로 와 스스로를 통과하는 방향성이다. 그 자신이 앎의 매개체가 되어 새롭게 만들어가는 로고스적 도주선은 다른 목적지나 조건을 설정하지 않고서도 지금 이곳의 현장을 철학의 현장으로 탈바꿈시키는 능력을 발휘한다. 이것이 이슈메일이 보여주는 에로스의 다른 가능성이다.


1)《모비딕》, p.502.

1) 운명을 맛있게 소화하는 방법

에이해브는 모비딕을 영원히 쫓겠다는 최후의 고함을 내지르다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작살 밧줄에 목이 감겨 바다로 수장된다. 그는 자신의 소원대로 작살을 몇 개씩 몸속 깊이 박아 넣은 흰고래의 밧줄에 얽힌 채 지금도 먼바다를 돌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살아남은 이슈메일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미국의 영문학 대학원생이 이에 대해 쓴 아주 재밌는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다. 그녀가 풀어놓은 상상력은 꽤 그럴듯했다. 구원받은 이슈메일은 에이해브 선장의 뒤를 따라 다시 복수를 향한 출정을 감행했을 거라고. 거기서 또 다른 이슈메일이 나오고, 또 에이해브가 되고… 오직 반복과 회귀로 점철되는 에필로그다. 정말 그럴까? 이슈메일은 제2의 에이해브가 되는 전철을 밟았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같은 배를 탔지만, 이 두 캐릭터의 항해로는 완전히 다르다. 모비딕이 온몸으로 들이받아 침몰하는 배에서 튕겨져 나간 이슈메일을 구한 것은 바싹 마른 나무로 만든 부표였다. 이 부표는 원래 시체를 바다로 흘려보낼 때 쓰는 관이다. 이를 붙잡고 배의 잔해 속을 둥둥 떠다니며 이틀간 표류하다가 다른 배에 의해 구조된 이슈메일의 마지막 장면으로 모비딕은 끝을 맺는다. 죽음의 상징인 관이 최후의 한목숨을 세상에 붙드는 생명줄로 전환되는 이 기묘한 연결. 삶 속에 죽음이, 죽음 속에 또 삶이 있다는 것은 단지 듣기 좋으라고 만든 경구가 아니다. 종말 주의의 설정처럼, 모든 것이 완결되고 매듭지어지는 최종 같은 것은 없다. 오직 죽음만을 품을 것 같은 관대가 그를 바다에서 건져냈듯, 최후의 파괴와 종결처럼 보이는 징조들은 다시금 시작과 시원(始原), 최초의 탄생으로 탈바꿈한다. 이런 우주적 변환을 온몸으로 경험한 이가, 또 다른 종말을 꿈꾸며 모비딕과의 혈투적 오르가즘을 꿈꾸기는 어려우리라.

삶 속에 죽음이, 죽음 속에 또 삶이 있다는 것은 단지 듣기 좋으라고 만든 경구가 아니다. 종말 주의의 설정처럼, 모든 것이 완결되고 매듭지어지는 최종 같은 것은 없다.

이슈메일은 홀로 살아남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화자가 되어 이 기묘하고 스펙타클한 고래잡이 항해의 면면을 독자들에게 담담하게 들려준다. 이제 막 돛을 달고 육지를 떠나려는 나의 에로스는 어떤 벡터를 가지고 어떤 후일담을 전할 수 있을 것인지? 삶을 알고자 하는 가장 본질적 시도의 끝은 허무함과 강렬한 죽음 충동뿐이더라는 감상은 적어도 지양하고 싶다. 돛을 올리고 바다로 나서야 하는 이유는 우주적 사이즈의 농담과 장난을 경험할 수 있는 로고스의 바다가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바다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범주에서 벌어지는 기가 막히고 다채로운 생생불식(生生不息)의 현장들을 그대로 보여줄 테니까. 파괴와 죽음, 허무와 고통처럼 사람들의 인식 속에 붙박여 있는 단선적 의미들은 고래잡이 항해의 과정 속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다층적인 선분으로 뻗어 나간다. 관이 구원의 도구로 탈바꿈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그 무엇이 감히 생명을 무겁고 고독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고래를 뒤쫓는 아슬아슬한 포경 보트 위에서도, 집 안에서 벽난로 옆에 평안히 앉아있는 사람보다 더 큰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이슈메일의 배짱이 가능한 이유다. 공간을 뛰어넘어 삶에 작동하는 거대한 흐름들을 완전히 통찰하는 법을 알고있는 것이다.

항구는 기꺼이 도움을 줄 것이다. 항구는 자비롭다. 항구에는 안전과 안락, 난로와 저녁식사, 따뜻한 담요, 친구들, 우리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그 강풍 속에서 항구나 육지는 그 배에 가장 절박한 위험이 된다. 배는 모든 환대를 피해서 도망쳐야 한다. (…) 배의 유일한 친구가 바로 배의 가장 고약한 원수인 것이다!

(위와 같은 책, 152)

당신은 삶을 즐거운 우주적 놀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야를 가지고 있는가? 『모비딕』은 육지의 안락함을 뒤로하고 떠난 바다에서 마주칠 수 있는 온갖 모험과 지혜들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이 생생함이 결국에 나를 길 위에 세워두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천천히 겪고 있는 결별의 과정들마저 소중한 글감이 되고, 학인들과 공부하는 과정 속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앎의 재료가 된다. 이것이야말로 삶이 우주적 놀이로 치환되는 과정일 것이다. 타조가 아무렇지도 않게 거대한 알을 꿀꺽 삼켜버리듯이, 내게 들이닥친 운명을 아주 ‘맛있게’ 소화해낼 수 있는 거침없는 소화력은 철학에서부터 나온다. 이슈메일은 대답한다. 내게 닥치는 모든 사건, 인연들을 포함한 모두 우주가 나에게 걸어오는 그저 재밌는 장난일 뿐이라고. 이 유쾌한 희롱에 박자를 맞추어 대담한 춤 스텝을 밟을 수 있을 때 당신만의 리듬을 가진 로고스가 탄생한다. 이제 자비로운 항구를 떠났지만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비법을 『모비딕』으로부터 배웠다. 이것이 바로 고래잡이의 위험이 품고 있는 자유롭고 편안한 악당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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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삶을 즐거운 우주적 놀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야를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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