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 슬기로운 유배생활

2부. 슬기로운 유배생활(1) - 군자는 어떻게 유배지와 만나는가

<용장의 제자들에게 가르침의 조리를 밝히다(敎條示龍場諸生)>

양문영/문리스 옮김

그대들이 이곳에서 서로 따르고 어울리는 일이 매우 왕성해졌다. 도움이 되지 못할까 조심스럽지만 서로간에 바로잡아줄 네 가지 일을 밝힘으로써, 부족하나마 그대들 여러 제자의 뜻에 답하고자 한다.
첫째는 입지(立志) 즉 뜻을 세우는 것이다. 둘째는 근학(勤學) 즉 학문에 힘쓰는 것이며, 셋째는 개과(改過) 즉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이다. 넷째는 책선(責善) 즉 선으로 책망하는 것이다. 신중히 듣고 소홀함이 없게 하라!

諸生相從於此, 甚盛. 恐無能為助也, 以四事相規, 聊以答諸生之意. 一曰立志, 二曰勤學, 三曰改過, 四曰責善. 其慎聽, 毋忽!

입지: 뜻을 세우다

뜻을 세우지 않고서 세상에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비록 온갖 솜씨를 갖춘 기술 장인이라 해도 뜻을 근본으로 하지 않았던 자는 있었던 적이 없다. 오늘날 학문을 하겠다는 사람이 황폐해지고 나태함에 빠져 세월을 허비한다면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으니, 이것은 모두 아직 뜻이 서지 않은 데 연유할 따름이다. 고로 성인이 되겠다고 뜻을 세워야 성인이 될 수 있고, 현인이 되겠다고 뜻을 세워야 현인이 될 수 있다. 뜻을 세우지 않는 자는 방향타 없는 배와 같고,  재갈을 물리지 않은 말과 같으며, 이리저리 제멋대로 흘러가는 물과 같으니 끝내 어디에서 멈출 수 있겠는가? 옛사람이 말하길, “선을 행하려는데 부모가 노여워하고 형제들이 원망하며 친척 및 마을 사람들이 경멸하며 미워하니, 이와 같다면 선을 행할 수 없게 된다. 악을 행하려는데 부모가 그것을 아껴주고 형제들이 기뻐하며 친척 및 마을 사람들이 존중하고 신임하니, 이와 같다면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 

뜻을 세우는 사진

악행을 저지르면 부모가 노여워하고 형제들이 원망하며 친척 및 마을 사람들이 경멸하며 미워한다면 어떻게 기어이 악행을 저지르며 소인이 되려하겠는가? 행하고 소인이 되겠는가?” 라고 했다. 그대들이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또한 뜻을 세운다는 것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立志
志不立, 天下無可成之事. 雖百工技藝, 未有不本於志者. 今學者曠廢隳惰, 玩歲愒時, 而百無所成, 皆由於志之未立耳. 故立志而聖, 則聖矣; 立志而賢, 則賢矣; 志不立, 如無舵之舟, 無銜之馬, 漂蕩奔逸, 終亦何所底乎? 昔人所言: 「使為善而父母怒之, 兄弟怨之, 宗族鄉黨賤惡之, 如此而不為善, 可也. 為善則父母愛之, 兄弟悅之, 宗族鄉黨敬信之, 何苦而不為善、為君子? 使為惡而父母愛之, 兄弟悅之, 宗族鄉黨敬信之, 如此而為惡, 可也. 為惡則父母怒之, 兄弟怨之, 宗族鄉黨賤惡之, 何苦必為惡、為小人?」諸生念此,亦可以知所立志矣.

근학: 학문에 힘쓰다

이왕에 군자로 살겠다는 뜻을 세웠다면 스스로 학문에 종사하는 것이 마땅하다. 무릇 학문에 힘쓰지 않는 것은 필경 그 뜻이 아직 독실하지 않은 것이다. 나를 좇아 배우는 사람들은 총명하고 명민한 것을 높게 보지 않고 근면하고 겸손한 것을 최상으로 여긴다. 그대 동기들을 한 번 살펴보라. 진실로 어떤 사람이 있는데 ‘텅 비었으면서도 꽉 찬 것처럼, 없으면서도 있는 것처럼’ 자신의 무능은 감추고 다른 사람이 잘하는 것은 시기하며, 자신이 뭐라도 된 양 우쭐대고 허풍 떨면서 다른 사람을 속이는 사람이 있다면, 비록 그의 타고난 자질이 매우 탁월하다 하더라도 동료 무리중에 그를 질타하고 미워하지 않을 이가 있겠는가? 그를 비루하고 천박하다 여기지 않을 이가 있겠는가? 그가 설령 장차 다른 사람을 속임으로써 어떤 사람이 마침내 속임을 당하는 바가 생겼다면 그를 속으로 비웃지 않을 이가 있겠는가? 진실로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는데, 겸손하고 말없이 자기 자신을 지키며 스스로 능력이 부족하다 자처하면서, 뜻을 독실하게 지키며 실천에 힘쓰고, 부지런히 학문에 매진하며 묻기를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의 좋은 점은 칭찬하고 자신의 실수는 허물로 삼는다. 다른 사람의 장점은 좇아하려 애쓰고 자신의 단점은 분명히 밝힌다. 성실하고 믿음직하고 유쾌하고 편안하여 겉과 속이 일치하는 사람이다. 비록 그의 타고난 자질이 좀 우둔하다 할지라도 동료 무리중에 그를 칭찬하며 기리지 않을 이가 있겠는가? 설령 그가 무능하다고 자처하며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이 마침내 그를 무능하다 할지라도 그를 경애하며 높이지 않을 이가 있겠는가? 그대들이 이것을 잘 관찰한다면 학문에 종사하는 것에 관해 알게 될 것이다.

勤學
已立志為君子, 自當從事於學. 凡學之不勤, 必其志之尚未篤也. 從吾遊者, 不以聰慧警捷為高, 而以勤確謙抑為上. 諸生試觀儕輩之中, 苟有「虛而為盈, 無而為有」諱己之不能, 忌人之有善, 自矜自是, 大言欺人者, 使其人資稟雖甚超邁, 儕輩之中, 有弗疾惡之者乎? 有弗鄙賤之者乎? 彼固將以欺人, 人果遂為所欺, 有弗竊笑之者乎? 苟有謙默自持, 無能自處, 篤志力行, 勤學好問; 稱人之善, 而咎己之失; 從人之長, 而明己之短; 忠信樂易, 表裡一致者; 使其人資稟雖甚魯鈍, 儕輩之中, 有弗稱慕之者乎? 彼固以無能自處, 而不求上人, 人果遂以彼為無能, 有弗敬尚之者乎? 諸生觀此, 亦可以知所從事於學矣!

개과: 과오를 고치다

무릇 과실이라는 것은 큰 현인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끝내 큰 현인이 되는 것에 방해받지 않는 것은 그 과실을 고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실이 없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과실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그대들은 스스로 잘 생각해보라. 평소에 염치 없고 불성실하고 믿음직하지 못한 행위를 한 적이 있는가? 효와 우정의 도리를 소홀히 한 적이 있는가? 간교하고 눈앞의 이익에 빠져 각박해진 적이 있는가? 아마 그대들은 이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행히 혹 그렇다면 몰라서 잘못을 저지른 것이고, 평소 규율이나 제약에 대해 스승의 가르침이나 친구들과의 학습 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은 자신을 성찰하라. 만일 이와 비슷한 일이 있다면 또한 스스로 허물을 뉘우침에 통렬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로 인해 자괴감에 빠져서는 안 되며, 굶주린 사람처럼 잘못된 것을 고치고 선을 좇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일단 나쁜 구습을 말끔히 씻어버린다면 과거에 비록 도적이었다 할지라도 오늘부터 군자가 되어 사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만약 나는 과거에 이와 같았고 오늘 비록 개과천선하였지만 사람들이 나를 믿어주지 않고, 또한 이전의 과오를 속죄할 수 없어서 도리어 후회하고 부끄러워하며 꽉 막혀서 의심하면서 죽을 때까지 더럽고 혼탁한 것을 달게 여기겠다고 한다면 나는 그저 절망스러울 뿐이다.

改過
夫過者, 自大賢所不免; 然不害其卒為大賢者, 為其能改也. 故不貴於無過, 而貴於能改過. 諸生自思, 平日亦有缺於廉恥忠信之行者乎? 亦有薄於孝友之道, 陷於狡詐、偷刻之習者乎? 諸生殆不至於此. 不幸或有之, 皆其不知而誤蹈, 素無師友之講習規飭也. 諸生試內省, 萬一有近於是者, 固亦不可以不痛自悔咎; 然亦不當以此自歉, 遂餒於改過從善之心. 但能一旦脫然洗滌舊染, 雖昔為盜寇, 今日不害為君子矣! 若曰吾昔已如此, 今雖改過而從善, 人將不信我, 且無贖於前過, 反懷羞澀疑沮, 而甘心於污濁終焉, 則吾亦絕望爾矣!

책선: 선으로 책망하다

책선(선으로 책망하다)은 친구 사이의 도리이다. 하여 모름지기 마음을 다해 말하고 좋은 길로 이끌어야 한다. 정성스럽고 아끼는 마음을 다하여 부드럽고 완곡하게 표현하면 상대로 하여금 그 말을 듣고 따르게 할 수 있고, 그것을 실마리삼아 고칠 수 있다. 느끼는 바가 있으면서 노여워하는 바가 없다면 그것이 선을 행한 것이다. 만약 그 잘못된 점을 먼저 폭로해 들추면서 아프게 허물어버리고 심하게 꾸짖는다면 받아들이지 않게 될 뿐 아니라 그는 창피한 수치심과 분노의 한스러운 마음을 폭발하게 될 것이니, 비록 자신의 뜻을 굽히고 따르고 싶어도 형세상 그럴 수 없게 된다. 이것은 그를 자극해 악을 행하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단점을 끄집어내어 비방하거나, 은밀하고 사적인 지점을 들추어 공격하는 것 등은 솔직하다는 인상을 구하려는 것으로 이런 것들은 모두 책선이라 말할 수 없다.
비록 그렇지만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행하는 것은 불가하겠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의 옳음을 가지고 내게 말하는 것은 모름지기 나의 잘못된 점을 질책하는 것으로 이는 모두 나의 스승들이니 어찌 즐겁게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감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도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 것도 깨달은 바가 없고 학문도 거칠 따름이다. 내 잘못으로 이곳까지 와서 서로 따르는 그대들을 위해 매일 밤이 새도록 생각하지만 (선은 커녕) 악을 행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걸 면하지도 못하고 있다. 하물며 과오에 대해서랴?
사람들은 “스승을 섬길 때는 함부로 덤벼도 안 되고 은폐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스승에게는 충고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스승에게 충고하는 도리는 솔직함이 스승을 들이받는 데까지 이르지 않고, 너무 완곡하여 막상 해야 될 말을 가려서도 안 된다. 나에게 옳다면 터득하여 그 옳음을 밝히고, 나에게 그르다면 터득하여 그 잘못된 바를 제거하면 된다. 교학상장(教學相長;가르치고 배우며 서로 성장하다)하는 것이니, 그대들의 책선은 마땅히 나로부터 시작하라.

責善
責善, 朋友之道;然須 忠告而善道之, 悉其忠愛, 致其婉曲, 使彼聞之而可從, 繹之而可改, 有所感而無所怒, 乃為善耳! 若先暴白其過惡, 痛毀極詆, 使無所容, 彼將發其愧恥憤恨之心; 雖欲降以相從, 而勢有所不能. 是激之而使為惡矣! 故凡訐人之短, 攻發人之陰私, 以沽直者, 皆不可以言責善. 雖然, 我以是而施於人, 不可也; 人以是而加諸我, 凡攻我之失者, 皆我師也, 安可以不樂受而心感之乎? 某於道未有所得, 其學鹵莽耳. 謬為諸生相從於此. 每終夜以思, 惡且未免, 況於過乎? 人謂「事師無犯無隱」,而遂謂師無可諫, 非也. 諫師之道, 直不至於犯, 而婉不至於隱耳. 使吾而是也, 因得以明其是; 吾而非也, 因得以去其非. 蓋教學相長也. 諸生責善, 當自吾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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