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헌(감이당 금요대중지성)

무거워도 너무 무거운 배움과 가르침

우리는 궁극적으로 무겁고 진지한 인간이며, 인간이라기보다는 중량이기 때문에, 광대의 모자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것도 없다. 우리가 이것을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맞서기 위한 것이다.

(니체, 즐거운 학문, 책세상, 179)

“선생들은 어디가도 티가 나~!” 선생들이 모여서 식사나 술자리를 하게 되면 식당 주인은 저들이 어떤 사람인지 금방 알아본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이다. “저 분들 선생들이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계산할 때 예외 없이 ‘교직원 복지 카드’를 내민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처음에는 인정하지 않았다. 우연히 맞았겠지 했고, 특정 직업에 대해 그렇게 비아냥거리지 말라고 응수했다. 하지만 가까운 주변을 잘 관찰할수록 우리 선생들은 ‘무겁고 진지한 인간’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아마도 내게 그런 말을 한 가게 주인의 마음에는 저들이 ‘선생님’이라는 사실보다는 ‘선생들의 무거움 혹은 진지함’에 방점이 있었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들에게는 ‘무겁고 진지하기만 했던 좋지 못한 기억’이 있다. 나 역시 ‘배움과 가르침’은 원래 엄중한 것이고, 이를 잘 완수하기 위해서는 무거움과 진지함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라 말하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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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들은 어디가도 티가 나~!”

이 무거움과 진지함은 새로운 배움과 가르침을 실험하고 있는 공간인 ‘감이당’에서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부담스럽고 나 스스로를 더 긴장시킨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장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로서는 강의나 발표를 하고 난 이후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다들 재미있어 하는 지 등에 늘 신경이 곤두선다. 나는 왜 이렇게 강의와 발표를 부담스러워하고 할 때마다 긴장하는가? 어떤 경우에는 긴장이 지나쳐 준비한 내용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문제는 나만의 문제도 아닌 듯하다. 주변에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분들을 봐도 강의와 발표에 지나친 부담감을 가지고 있고,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고백을 자주 듣는다. 대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하면 이를 해결할 수 있을까?

 

거리 두기, 자신을 찾는 기술

우리들이 배움과 가르침의 과정에서 놓친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무엇을 간과했기에 이 과정이 이리도 무겁고 진지하고 재미없는 것이 되었을까? 이런 우리에게 니체는 자신에 대한 ‘거리 두기’를 제안한다.

때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로 또 아래로 바라다보고, 예술적 관점에서 거리를 두고 우리 자신에 대해 울고 또 웃음으로써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

(위와 같은 책, 179)

‘자신을 위 아래로 바라보기!’, ‘자신에 대해 울고 웃어보기!’, 이에 따른 ‘충분한 휴식!’ 그 동안 많은 배움과 가르침의 자리에 있었지만, 셋 중 아무것도 해 본 적이 없다. 이에 덧붙여 ‘예술적 관점에서 거리두기’까지! 일단 니체는 낯선 언어로 우리를 후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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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배움과 가르침의 목적은 자신이 아닌 세상과 타인을 향한 것. 그리고 거기서 관찰되는 문제와 결함을 고쳐나가는 것이 핵심이었다. 물론 이 자체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지만, 그 속에 나의 수신(修身)이 빠져 있다면 그 배움과 가르침은 공허한 외침에 그친다. 나를 바꾸는 것이 빠져버린 배움과 가르침! 사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때론 울기도 때론 웃기도 했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을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나온 웃음과 울음이 아니었다. 이 웃음과 울음은 구경꾼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다 나온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냉정한 인간이 되어갔다. 이런 냉정한 인간들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휴식 또한 충분했을 리가 없다. 당연히 니체 철학의 입장에서 자신과 ‘예술적으로 거리 두기’가 가능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힘에의 의지’를 느끼고 실천하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몇 년 전, 어느 날 아침 양치를 하다, 아랫니 가운데 잔뜩 끼어있는 치석을 보면서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라는 생각을 심각하게 한 적이 있다. 돌이켜보니, 이 작은 사건은 ‘내가 왜 공부를 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을 푸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나는 ‘내 몸 하나 관찰하지 못하면서 세상에서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이후 나는 나를 관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질문이 지금의 공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나를 관찰하는 데 유용한 도구는 니체의 아포리즘들이다. 니체의 아포리즘을 읽는다는 것은 나를 위로 또 아래로 관찰하면서, 그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니체 읽기가 중요한 일상이 된 후 나는 별도의 휴식시간이 필요치 않게 되었다. 그 자체가 휴식이고 나를 관찰하는 과정이었다. 니체의 아포리즘 속으로 빠져 들어가면서 나는 수없이 울고 웃었으며, 이를 함께 나누면서 그 웃음은 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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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렇게 살고있지?

광대되기라는 새로운 실험

하지만 이것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나에게는 아직 헤아릴 수 없는 무거움과 진지함이 남아있다. 나는 여전히 도덕이라는 중력이 지배하는 이 세상을 살고 있고 앞으로도 이 중력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실험의 장에 있다. 니체와 함께 도덕 위에서 뛰놀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있다.

우리는 도덕 위에도 서 있을 줄 알아야 한다. 매 순간 미끄러져 넘어질 것을 두려워하는 경직된 두려움을 가지고 그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서 뛰놀 줄 알아야 한다. 예술과 광대가 없다면 어찌 그렇게 될 수 있겠는가?이것을 부끄러워한다면, 그대들은 아직 우리에게 속하지 않은 것이다!

(위와 같은 책, 180)

최근 나는 대구에서 몇 가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특히 나의 제도권 공부의 시작이었고, 과정이자 결과였던 곳에서 다시 배움과 가르침의 활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곳에서의 배움은 나의 자산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나는 세상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일과 관련된 이런 저런 일들을 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어느 순간 나를 무겁고 진지하게 만들었고, 그곳에만 가면 나는 경직되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떠나있었던 공간과의 새로운 결합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이곳에서 나는 ‘주역 스쿨’을 오픈할 예정이다. 다행히 몇 분들이 나의 이 계획을 흔쾌히 받아주었다. 물론 주역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많이 오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어쨌든 ‘주역 스쿨’은 당분간 진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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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들은 어느 순간 나를 무겁고 진지하게 만들었고, 그곳에만 가면 나는 경직되었다.

이 과정을 준비하면서 많은 생각을 다시 하고 있다. 나는 왜 ‘내가 태어나고 자라고 배우고 일한 곳’에서 마비되었을까? 나는 왜 이곳 사람들만 만나면 미끄러져 넘어질 것 같은 두려움으로 경직되었을까? 이제 알겠다. 과거 나를 경직되게 만든 배움은 기존의 관계에 의지하고 기댄 배움과 가르침이었다. 대신 내가 최근 배운 것은 낯선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배움과 가르침의 기술이었다. 과거에는 주어진 틀과 관계 안에서 배우고 가르치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면, 지금 나는 아무런 틀이 없이, 과거에 맺어진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배우고 가르치고 있다. ‘아무런 틀이 없이 누구와도 가능한 배움과 가르침의 기술’, 이것이 니체가 말하는 ‘광대-되기’일 것이다. 이제 나는 광대-되기를 실험할 것이다. 아니, 나는 배움과 가르침을 행하는 ‘광대’가 기꺼이 되고자 한다. 예전에는 이런 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웠겠지만 이제 는 배움과 가르침에 관련된 활동에 그 어떤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낯선 일을 준비하면서 따라올 수 있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잘 가르쳐야 한다는 진지함도 나를 사로잡지 못할 것이다. 다만 니체와 주역을 배우고 가르치며 때론 웃고 때론 우는 과정이 함께 할 뿐이다. 그러면서 기존의 틀은 부서지고 새롭게 구성될 것이고, 모든 관계는 새롭게 형성될 것이다.

그렇다. 나는 광대-되기라는 배움과 가르침을 위한 새로운 무기를 가지고 과거의 공간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과거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갈 오늘 혹은 미래의 공간으로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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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과거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갈 오늘 혹은 미래의 공간으로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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