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스님 6월 선물강좌

만들어진 ‘생각’

하나의 생각이 지속적으로 쭉 가는 게 아니고, 매순간마다 생각이 새로 만들어지는 거예요. 어제도 이 생각했고, 오늘도 이 생각했는데 무슨 생각이 새로 만들어졌습니까 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실제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생각은 매 순간순간 만들어집니다. 매 순간순간 만들어지는데, 아무 재료도 없이 만들어질 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 재료들이 뭐냐 하면 생각의 자모음들이죠. 저는 기억의 자모음이라고 부르는데, 이 기억의 자모음들이 무엇과 무엇이 만날 것인가는 내가 무엇을 배우고 익혔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내가 무엇을 배우고 익혔는가. 그래서 그 생각의 길이 강화되면 마치 이것이 자기의 정체성을 온전히 조절하는 것처럼 돼버려요.

한 80년대 때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외국에 있는 담배 회사들이 8-90년대에 한국에 시장을 열었는지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때 그 이들의 가장 큰 타겟층이 누구였냐면, 여성분들과 청소년이었어요. 아예 대상 자체가 청소년이 됐어요. 우리 사회에서는 주저했지만 어쨌든 호기심이라든지 아니면 바로 이제 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용인된 나이로 가기 전에, 사람들의 첫맛을 어떤 담배로 보게 할 것인가가 그들의 주요 타겟이었습니다. 그 말은 담배라고 하는 맛에 생각의 지도가 만들어지기 전에, 아예 이 맛을 보게 합니다. 이것은 별로 안 좋은 얘기 같지만, 굉장히 좋은 것 같은 것도 똑같습니다.

여기 계신 분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전혀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만. 산부인과에 가서 처음 태어나면 병원에서 특정 분유 회사의 우유를 입에 물립니다. 입에 물리는 순간 그 애가 각인된 맛은 엄마의 젖이 아니라, 그 회사의 분유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이제 먹고 살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먹이를 그 회사가 결정해주는 겁니다.

1.분유
입에 물리는 순간 그 애가 각인된 맛은 엄마의 젖이 아니라, 그 회사의 분유입니다.

우리가 굉장히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여도, 많은 면에서는 이처럼 느낌과 맛과 생각의 지도를 내재화시켜서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사는 것이 마치 잘 사는 것처럼 여기게 하는 많은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게 굉장히 좋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자기를 옥죄기도 하는 것이죠. 그래서 내부의 생각의 지도를 어떻게 변형시킬까 하는 것을 익히지 않으면 자기가 익혀놓은 것이 결코 자기나 생명의 역사가 쌓아놓은 문화적 배경으로서 별로 좋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그 일을 추구하다가, 만일 그런 일이 없어지면 ‘아 내가 어떻게 살아’라고 할 것 같습니다.

그중의 한 가지가 학교 다닐 때 아주 치밀하게 하고 있는 시험을 통한 경쟁입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전혀 객관적이지 않죠. 왜냐하면, 시험에 온 사람들의 조건이 완벽히 다르기 때문에 그 시험지가 객관적인 문제를 발현했을지라도 그 시험지와 접속하는 낱낱 개인들은 전혀 그 시험지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애초부터 시험을 통해서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마치 그것이 절대적인 판단의 기준인 것처럼 생각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시험 점수가 낮으면 정말로 자신이 뭔가 부족하거나 잘난 사람은 자기가 뭔가 잘난 것처럼 생각하도록 수십 년을 교육받으면, 저절로 그것이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이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렇게 평가되도록 합니다. 이것이 아까 말한 대로 뭐하고 똑같습니까? 마음의 생각을 다른 양태로 우리한테 집어넣고 있습니다.

실패하는 소원

내 속에 굉장히 자율적으로 만들어진 생각의 지도가 있고, 내가 독자적으로 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판단한다고 착각하게 되어있어요. 자기가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편안하지 못한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자기 자신에서 편안하지 못한 것 중에 가장 큰 것이 같이 사는 사람들을 보는 마음입니다. ‘이 사람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살아주는 사람이 거의 없죠. 본래 그렇게 살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 사람한테 ‘이렇게 살아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을 해요. 그렇게 말하는 것을 우리는 뭐라고 합니까? ‘소원’이라고 해요. 소원이 없겠다고.

2. 소원
그 사람한테 ‘이렇게 살아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을 해요.

자, 이 소원은 성공할 수 있는 소원입니까, 실패하는 소원입니까? 거의 99.9퍼센트가 실패하는 소원입니다. 생물학적으로 절대 할 수가 없게 돼 있어요. 만일 그렇게 했다, 그러면 완전히 세뇌를 당하고 사는 거예요. 그 사람은 남편이나 아내가 상대를 봤는데 ‘어떻게 내 생각대로 살아’라고 하게 되는데, 이 사람은 거의 로봇하고 똑같아요. 내 생각을 주입시켜놔서 내 생각대로 돌아가게 하잖아요. 그리고 그것을 자기가 잘 산다고 착각을 해요. 이 착각이라고 하는 생각의 지도가 거쳐지기만 하면 도대체 나는 무엇을 살았는가 라고 말할 것인데, 여러 가지 사회적 배경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생각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게 되어버렸죠. 즉 자기가 자신을 보는 눈에 대해서 자유로움을 지니지 못했어요.

그것은 아까 말한 대로 자기를 잘 몰라요. 모를 뿐입니까? 같이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가가 강하면 강할수록 자기도 특정 이미지대로 자기 삶을 지탱하는 것이 강화됩니다. 안 바뀌죠. 우리가 이런 것들을 그냥 일시적으로 일어난 생각이 아니고 고속도로처럼 전 생각의 네트워크를 형성합니다. 그 생각의 네트워크들은 뇌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고 손가락 끝, 발가락 끝에서부터 전부 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되어있어요. 훈련이 너무 잘 돼가지고.

아까 박테리아 시대부터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여서 함께 살아가는 통로를 열어놓는데, 환경만 좋으면 각자 생활하는 것이 훨씬 좋다는 걸 깜빡 잊어버렸어요. 그래서 마치 주어진 생각대로 사는 것만이 잘 사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 생각대로 뭘 합니까? 말을 하는 것이죠. ‘이것 좀 해봐.’ 하다가 나중에라도 말의 톤이나 내용이 막 변하는 거죠. 좋은 의미의 말을 증여하지 않고, 좋지 않은 말을 증여합니다.

좋지 않은 말을 증여한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면, 상대가 그 말을 받고 상처를 입은 것만큼 자기가 자신한테도 상처를 주고 있다는 말이에요. 왜냐하면, 이 말이 가지고 있는 색깔의 기분은, 상대한테 상처를 주는 말은 자기한테 안 좋은 느낌으로 작용해요. 이 느낌은 생물체에 ‘하지 마세요’라는 말입니다. 근데 이 안 좋은 느낌을 계속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럼 생명체가 기본적으로 안 좋게 느꼈다는 것은 ‘다음엔 그걸 하지 맙시다’라고 하는 말인데, 그걸 깜빡 잊고 나한텐 별 상관없고, 니가 내 말대로 해주기만 했으면 나한테 이런 안 좋은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을 하는 거예요. 만일 이 사람이 그걸 해주죠. 그럼 내 안에는 뭡니까? 또다시 저 이를 볼 때 마음에 안 든 곳을 핀셋처럼 잘 찾아서 말할 수 있는 생각의 지도가 다 감지되어 있어요.

3.상처
좋지 않은 말을 증여한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면, 상대가 그 말을 받고 상처를 입은 것만큼 자기가 자신한테도 상처를 주고 있다는 말이에요.

그냥 좋아하기

그래서 내 안의 지도에 내가 무엇을 증여하고 있는가 라고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그것은 아까 말한 대로 자기는 잘 안 보여요. 상대를 볼 때 내가 가까운 사람을 그냥 좋아하느냐, 소원을 붙여서 좋아하느냐 차이에요. 그냥 좋아하면 자기 인생이 좋은 인생이 됩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 해도. 왜냐하면, 나는 하루 24시간 가장 많이 생각하고 가장 많이 부딪히고 가장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 그냥 좋아요, 그냥. 소원이 없어요. 소원이. 그냥 좋아하는 것이 소원이에요. 이렇게 살아주면 좋겠습니다 하고 붙이면 번뇌가 하나 증가해요.

아들딸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너무나 부모로서 당연한 말이잖아요. (하지만) 건강하든 건강하지 않든 그냥 좋아하는 것만 못해요. 애기는 건강할 수도 있고, 건강하지 않을 수도 있고, 어떻게 되다 보면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서 유전적으로 타고 날수도 있어요. 그거에 대해서 ‘아 그렇게 안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말은 맞는 말이에요. 그러나 아들은 딸은 그렇게 태어났어요. 볼 때마다 소원에 어긋난 아들딸이 되는 거예요. 아내와 남편을 볼 때도 똑같이 그렇게 보는 거예요. 생각의 지도에서 가까운 사람을 볼 때 하는 지도는 무슨 증여를 해야 하냐면 그냥 좋아하는 생각과 그냥 좋아하는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이제 그냥 좋아하는데 또 상대는 그걸 이용해서 가만히 앉아서 ‘물 떠와. 밥 해줘’ 이러면 빨리 ‘이 정도 되면 내가 힘들다’라고 생각해서 ‘너 알아서 하세요’라고 해야 해요. 그때 해주면 안에서 ‘그 일을 하지 마세요’라는 느낌의 강도가 엄청 강해지는 일을 한 거예요. 그럼 안에서 뭐가 쌓입니까? 자기 자신한테 괴롭게 상대와 나를 볼 수 있는 생각의 지도에다가 색을 계속 칠하는 거예요, 말을 안 들어주고 가서 편히 노는 것보다 훨씬 못해요.

그리고 앉아서 소파에 걸쳐서 딱 앉아있죠, 그분들은. 그분하고 일생을 같이 살 것이라고 딱 생각하는 순간 소파에 걸쳐있든 말든 관심을 안 가져요. 관심 가지면 안 돼요. ‘양말을 좀 벗어주세요.’ 말은 맞는데 괴로움이 증가합니다. 생각 지도를 지워야 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국까지 딱 차려주기를 원하는 남편이 있다, 지금 대부분은 없다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365일 괴로울 준비를 하셔야 해요. 누가 즐겁게 아침에 일어나서 같이 회사에 나가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분이 누가 있겠어요. ‘각자 알아서 먹고 나가자.’는 것을 빨리 정하고 지각을 하든지 말든지 관심을 갖지 않는 훈련을 해야 해요.

4.소파, 양말
‘양말을 좀 벗어주세요.’ 말은 맞는데 괴로움이 증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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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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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자기 자신에게 먼저 해보겠습니다. 그냥 좋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