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청년공자 용맹정진밴드)
 

그리스인들은 스스로를 ‘헬레네스’라고 부르고, 이방인들을 ‘바르바로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바르바로이와 자신들의 차이에 대해 ‘바르바로이는 노예이고 헬레네스는 자유인’이라고 말한다. 니체의 자유, 조르바의 자유, 곰샘의 자유 등등 많은 현자들이 각자의 자유를 말한다. 그렇다면 그리스인들이 말하는 자유인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그들의 지혜를 우리의 일상속으로 가져올 수 있을까?

고대 그리스에는 폴리스라는 (국가나 민족을 뛰어넘는) 독특한 삶의 방식이 있었는데, 그곳은 권한이 있는 존재가 시민들을 다스리는 수직적인 곳이 아닌, 시민들 각자가 직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들에게 폴리스의 업무에 참여한다는 것은 폴리스에 진 단순한 의무가 아닌, 자기 스스로에게 진 의무였다. 다시말해 그들은 폴리스의 일을 외부에서 부과된 의무가 아닌 자기 스스로에게 진 의무라고 여겼다. 폴리스의 일을 하는 것이 어떤 의미였기에 그것을 스스로에게 진 의무라고 생각했을까?

“영웅으로 하여금 영웅적 행위를 하게 하는 원동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의무감, 곧 타인에 대한 의무감이 아니라 바로 자신에 대한 의무감이다. 영웅이 추구하는 대상을 우리는 ‘덕(Virtue)’이라 번역하곤 하지만, 그리스 원어로는 ‘아레테(arete)’로서 ‘탁월함’이라는 뜻이다.

『古代 그리스, 그리스인들/ H.D.F키토/ 갈라파고스/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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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말해 그들은 폴리스의 일을 외부에서 부과된 의무가 아닌 자기 스스로에게 진 의무라고 여겼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나오는 영웅들에게 영웅적 행위를 하게 하는 원동력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감이었고, 그것은 아레테 즉, 탁월함이었다. 그것이 모범이되어 그리스인들의 삶을 관통하는 것도 ‘아레테’였다. 다시말해, 자기 스스로에게 진 의무는 뛰어난 아레테를 지니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스어로 ‘탁월함’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사람에게 쓰일 경우 어느 한 분야에서만의 탁월함을 의미하지않고, 도덕적, 지적, 육체적, 실용적인 것들 등 다양한 방면에서의 탁월함을 의미했다. (이 부분에서 그리스인들이 삶의 전체성을 중요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덕을 고양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장이 폴리스였다. 그 곳에서는 전문가를 지양하고 아마추어들을 중심으로 운영되어 그들이 직접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삶의 전체성을 키우는 것을 중요시했다. 그렇다면 삶의 전체성을 내포하는 아레테와 자유인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폴리스는 아마추어들을 위한 곳이었다. 폴리스의 이상은 모든 시민들이 폴리스의 여러 활동에 나름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이 이상은 모든 면에서 탁월함과 모든 면에서의 활동성이라는, ‘아레테’에 대한 호메로스의 풍부한 관념에서 유래한 듯하다. 이것은 삶의 전체성 혹은 단일성이라는 측면을 내포했고, 그 결과 전문화를 싫어했다. 여기에는 효율성에 대한 경멸이 포함되었다. 더 정확히 말해 효율성에 대한훨씬 더 높은 이상이다. 즉 삶의 한 가지 부문에 존재하는 효율성이 아니라 삶 자체에 존재하는 효율성을 추구했다. (…) 각 사람은 폴리스에게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전부’가 되어야 했다.“

『같은 책 / p.89』

앞서 이야기했듯이 폴리스는 시민들의 아레테를 고양시키는 곳이었다. 그것은 곧 전체적인 것에서 탁월하다는 말이고, 그래서 어느 한 곳에 매몰되는 활동을 하지 않았다. 이것이 폴리스가 전문가보다 아마추어를 중심으로 돌아갔던 이유다. 전문가들로 돌아간다면 각 부문들이 조각조각 나뉘어져 마치 기계의 부품들처럼 맡은 일만 계속하는 하는 삶, 전체성을 잃어버리는 삶을 살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내가 맡은 일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있어서는 사제관계가 된다거나 맹목적으로 어떤 사람의 의견이나 지식을 따르게 되어버리는 수동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또한 타인에게 나의 결정을 떠맡기고 그것이 잘 되지 않았을 때는 타인을 원망하는 의존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런면에서 그리스인들이 말하는 자유인, 자유인으로서의 필수요건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며, 또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책임성p.193을 가진 사람인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삶 자체에 존재하는 ‘효율성’과 자기 자신에게 ‘전부’가 된다는 것은, 이처럼 삶의 어느 한 부분에만 가치를 두는 것이 아닌 다방면에서 자신을 챙기는 것(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을 둘다 챙기는 그리스인들의 모습처럼)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시대에 전문가를 만나지 않고 내 스스로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노력은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몸에 문제가 생긴 후 병원에 달려가는 것이 아닌, 그 전에 몸에 대해 공부하고(몸에 대해 탁월해지고) 나의 결정에 따라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 사주나 주역, 별자리 등으로 세상의 이치에 대해 공부하여 주체적으로 내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자유가 그런 것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여기서 다방면의 책들을 읽는 것은, 다방면에서 탁월하라는 그리스인들의 아레테 나아가 자유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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