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약자가 살아가는 법 - 2)

근영(남산강학원)

대한민국에서 교육문제는 누구나 한마디쯤은 할 말이 있는 주제다. 이는 교육에 관한 믿음과 열정이 오래되고 남다르다는 뜻일 수도 있겠지만, 실은 그만큼 교육이라는 것에 삶의 많은 부분이 걸려 있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는 좋은 학군과 학원이 있는 곳에 살아야 하고, 그럴려면 높은 집값을 감당해야 하고, 또 그럴려면 더럽고 치사해도 직장에서 끝까지 버티고 있어야 한다. 국회 등 고위직 청문회장 단골 알리바이 멘트가 “부적절하지만 자녀 교육문제 때문에…”일 정도다!

부모들이 이렇게 교육비 마련에 시달리는 동안, 아이들은 입시를 위한 온갖 준비들로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 애쓴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아니면 도태가 되든 상관없다. 일단은 입시 레이스에 참가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인생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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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입시 레이스에 참가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인생이 시작된다.

그런데 그러다가 어찌어찌해서 이 레이스의 승자가 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가면 그다음에는 무엇이 기다릴까? 높은 지위? 많은 돈? 그래서? 그래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다! 이제는 부모가 되어서 더 좋은 사교육을 위해 더 많은 돈을 번다. 그 옆에 아이들은 또, 입시 레이스다. 그렇게 부모의 시달림은 아이들로 대물림된다.

이런 상황 앞에서 다들 이야기한다. 대한민국 교육은 정말이지 글러먹었어! 그런데……이상하게도 이 레이스는 끝나지가 않는다. 모두가 입을 모아 이놈의 교육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데, 교육 때문에 뼛골이 빠진다고 한탄하는데, 아이들이 교육으로 인해 병들어간다고 성토하는데, 그렇다면 이런 지옥과 같은 교육은 끝장이 났어도 예전에 끝장이 났어야 할 일 아닌가.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이 레이스를 멈추려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오히려 레이스의 열기가 더욱 뜨거워질 뿐이다. 더 좋은 지역, 더 좋은 학원, 더 좋은 입시 정보를 놓칠까 노심초사, 전전긍긍….

사람들은 이제 이렇게 말한다. 맞아, 그것은 잘못되었어.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다들 그렇게 하는데! 나만 그러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닐테고, 공연히 우리 애만 손해보고 끝나버릴 거 아니야. 그러니 일단은 그냥 따르는 수밖에 없어.

그 길이 길이 아닌 줄은 알지만, 그 길로 아이들을 일단 내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렇게, 오늘도 우리의 아이들은 지옥의 레이스에 내보내지고 있다. 우선은 한바탕 교육에 대한 욕을 하고, 마지막에는 남들이 그렇게 하기에 나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무얼까, 이 마음? 지옥인 줄 알면서도 그 지옥으로 자신의 아이들을 밀어넣는 그 마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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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이 길이 아닌 줄은 알지만, 그 길로 아이들을 일단 내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

1. ‘다들’이라는 정상성

교육 현장의 악순환처럼, 우리에게는 아닌 줄 알면서도 하게 되는 많은 일들이 있다. ‘다들 그렇게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거기에 붙이고 말이다. 요컨대, 그 ‘다들’이라는 것이 우리가 무언가를 하게 되는 기준인 셈이다. 이 ‘다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단서가 될 만한 이야기에서 출발해보자. 애꾸눈 마을에는 두 눈이 있는 사람이 비정상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척도의 상대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쓰이는 표현이다. 사람마다 혹은 사회마다 서로 다른 기준이 있기에, 그 다름을 서로가 인정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비정상’이라는 표현에 담긴 의미에 초점을 둔다면, 이 말을 조금 다른 의미에서 읽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애꾸눈 마을의 ‘정상성’은 애꾸눈이다. 왜냐하면 그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애꾸눈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눈이 하나인 사람이 ‘많다’는 것이 정상성의 핵심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 아니냐고? 맞다. 하지만 당연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버리는 그것에 열쇠가 있다.

정상성과 비정상성을 나누는 기준은 숫자의 많고 적음이다. 해서 누구든 수적으로 우세한 집단에 속하면 정상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비정상이 ‘되어 버린다’. 이는 통계학의 ‘표준정규분포곡선’이 세상을 보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 곡선은 종모양으로 생겼는데, 한가운데가 볼록하게 올라와 있다. 이 볼록한 부분이 정상성의 지표가 되고, 양 끝 쪽, 그러니까 아래로 축 내려와 있는 양쪽 부분들이 비정상으로 불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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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수적으로 우세한 집단에 속하면 정상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비정상이 ‘되어 버린다’.

표준정규분포 곡선의 가운데가 볼록하다는 것은 거기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다는 의미다. 바로 그것이 ‘정상성’이 된다. 이런 정상성이 적용되는 것들 중에는 우리 건강과 관련된 것도 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의 정상 수치, 그것이 이런 식으로 나온 거다. 여기서 우리는 갸우뚱하게 된다. 어떻게 건강과 병을 나누는 기준이 사람이 많이 몰려있는 수치냐 그렇지 않은 수치냐가 될 수 있는지 말이다.

뭐, 이런 지점에서는 크게 문제가 없다고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정상성이 삶의 가치라는 지점까지 확장되면 어떨까? 이런 것을 한 번 상상해 볼까, 살인자 마을 같은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인을 하며 살아가는 마을. 요컨대, 그곳의 정상성은 살인행위다. 자, 그렇다면 나도 그 정상성이라는 것에 맞춰 살아가야 할까. 누군가를 죽이며?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좀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돌이켜보면 지금 우리 현실과 그다지 먼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모두를 피폐하다 못해 황폐하게 만드는 입시 레이스의 악순환에 동력을 넣어주고 있는 것이 ‘다들’이라는 그 정상성이니 말이다. 어디 교육뿐이겠는가. 다들 명품을 가지고 있으니 나도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같고, 다들 골프를 치니 나도 그것을 해야 할 것 같고, 다들 휴가는 해외에서 지내니 나도 비행기를 타야 할 것 같고, 다들 주식을 하니, 다들 부동산을 하니, 다들, 다들, 다들…. 그렇게 ‘다들’이라는 것에 들어가기 위해 얼마나 우리 자신을 닦달하고 있는지, 그래서 얼마나 삶을 고달프게 하는지, 그래서 결국 남게 되는 그 허망함에 얼마나 몸서리치게 하는지.

그저 평범하게 쓰는 ‘다들’이라는 말을 떠받히고 있는 정상성. 오로지 그 정상성에서 떨어져 나오지 않기 위해 삶의 모든 동력을 쓰고 있는 현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우리가 아닌 줄 아는 그 길로, 아니 구렁텅이로 깊게, 더 깊게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물어야 할 때다. 정상성이 삶의 지표가 될 수 있는지를, 사람이 많이 몰려 있다는 그 이유만으로 우리 삶의 방향이 결정되는 게 어떤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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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많이 몰려 있다는 그 이유만으로 우리 삶의 방향이 결정되는 게 어떤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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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이승현
2 months ago

다들하니까 하는게 찝찝한 구석이 있지만 안 하면 비정상으로 보는걸요…
그렇다고 그걸 이겨낼 힘이 있는 것도 아니구요.
아..그래서 약자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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