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승현(감이당 금요대중지성)

地雷復 ䷗

復, 亨. 出入无疾, 朋來无咎, 反復其道, 七日來復. 利有攸往.

복괘는 형통하다. 나가고 들어오는 데에 문제가 없으며 벗들이 와야 허물이 없다. 그 도를 반복하여 7일 만에 돌아와서 회복하니, 나아갈 바를 두는 것이 이롭다.

初九, 不遠復, 无祗悔, 元吉.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오는 것이니, 후회에 이르지 않아서 크게 길하다.

六二, 休復, 吉.

아름답게 돌아옴이니, 길하다.

六三, 頻復, 厲, 无咎.

자주 돌아옴이니,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으리라.

六四, 中行, 獨復.

중도를 행하여서 홀로 돌아온다.

六五, 敦復, 无悔.

돈독하게 돌아옴이니 후회가 없다.

上六, 迷復, 凶, 有災眚. 用行師, 終有大敗, 以其國, 君凶, 至于十年, 不克征.

혼미하게 돌아옴이라 흉하고 하늘이 내린 재앙과 스스로 불러들인 화가 있다. 군사를 동원하는 데 쓰면 결국에는 패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데 쓰면 군주가 흉하게 되어 10년이 되도록 나아갈 수가 없다.

 

나는 십년 째 작은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며칠 전에 단골손님이 지나가다 들러 뜬금없이 “가게 정리하세요?”라고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게에는 자전거가 거의 없었다. 진열된 물건이 없으니 누가 봐도 ‘폐업각’이었던 거다. 올해 초 코로나 19가 터지고 많은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에 처했다. 하지만 예외 종목이 몇 있었는데, 자전거도 그중 하나였다. 바야흐로 봄이었으니 자전거 타기 좋은 계절이었고, 혼자 탈 수 있으니 적당한 취미생활이기도 했다. 게다가 대중교통이 위험한 이때에 자출(자전거 출근)을 할 수 있으니… 이런저런 조건이 맞아들었던 거다.

악성 재고라 생각했던 자전거들까지 싹 판매됐다.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을 실감했다. 그야말로 자전거 특수였다. 그렇게 2~3달을 보낸 것 같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자전거 생산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간헐적으로 몇 대라도 보내주는가 했는데, 이제는 아예 공급이 끊겼다. 처음에는 자전거 생산 정상화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공급처에 일정을 물어가며 언제 입고가 되는지 물었고, 대리점들이 놓인 상황을 설명하며 채근하기도 했다. 하루빨리 모든 것이 회복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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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그러다가 문득, ‘회복되어야 하는 것이 매출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라는 특수상황과 무관하게 잘 되던 사업이 딱 멈추자, 반사적으로 이전과 동일한 상태로 회복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진짜 회복되어야 하는 것은 매출이 아니지 않은가. 정신이 바짝 차려졌다. 어떻게 보면, 코로나라는 사태를 맞아 이 시대에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인데, 예기치 않게 잘되는 사업 때문에 나는 길을 잃을 뻔했다.

진정한 ‘회복’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지뢰복괘’를 찾아보았다. 상전에서는 우레가 땅 속에 있는 것을 복괘로 보았다. 선왕은 이것을 보고 동짓날에 모든 문을 걸어잠갔다고 한다. 상인과 여행자들이 다니지 못하게 했으며, 군주도 시찰을 나서지 않았던 것. 땅속에 생긴 미약한 우레가 회복하려는 때에 놓여있어서다. 미약한 상태이니, 안정과 평정을 이루는 것이 급선무다. 언제까지? 동짓날이라고 표현했지만, 겨울 한 철이 지나가는 동안! 이때는 물적 성장을 추구하는 때가 아니다. 천지의 마음을 회복할 때다. 천지의 마음을 알아야, 그에 맞게 자신의 삶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코로나는 출발에서부터 인간의 욕심을 볼 수 있는 사건이다. 개발과 팽창을 추구하는 인간이 박쥐의 서식지를 침범했고, 그렇게 박쥐와 뒤섞이면서 생긴 일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박쥐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간이 탐욕으로 자연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행위는 여전히 진행형이니까. 이보다 더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이렇게 시작된 코로나 여파는 계속되고 있다. 순식간에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고, 발병자 수 역시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거리두기가 힘든 많은 직종이나 영업점의 휴업 상태는 장기화되고 있고, 자영업자들은 매달 임대료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일상의 영역도 축소됐다.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 됐고, 모임이나 회식 등은 일체 금지됐다. 언제까지 이렇게 활동 없이 살아야 하나 답답함도 생긴다. 삶의 모든 부분이 깎여나가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는 시간들이다. 모두가 어서 빨리 예전의 일상을 되찾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냥 예전으로 돌아가면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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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문득, '회복되어야 하는 것이 매출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뢰복괘의 ‘일양’에 회복을 위한 지혜가 담겨있다. 일양인 초구는 불원복 무지회 원길(不遠復, 无祗悔, 元吉)이다. ‘멀리 가지 않고 돌아왔기에 후회에 이르지 않았고, 그래서 길하다’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 우리는 무언가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일상의 복귀, 영업의 정상화, 일자리의 확보 등을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초구의 입장은 어떨까? 원상복귀라는 것이 무엇인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는 ‘코로나 이전’ 상태에서 발생했다. 그렇기에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코로나 이전’이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이미 멀리 간 상태다. 초구의 일양은 무릇 사물이 장차 망하려 하다가 복귀하는 것(소동파, 『동파역전』, 217쪽)을 말한다. 당장의 편의나 이익을 위해 자연의 흐름을 무시하고 개발하려고 하는 인간의 욕심에 경종을 울리는 그런 마음이다. 그래서 소동파는 지뢰복괘를 ‘변역(變易)의 시기’로 명명했다. 예전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고쳐서 바꿀 때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이 ‘초구의 마음과 얼마나 교감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 된다. 나는 이효의 태도, 즉 ‘휴복 길(休復 吉)’에 주목했다. 휴복, 즉 회복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이효는 대게 초구를 올라타기 마련인데, 지뢰복괘에서는 이효가 초구의 어진 뜻에 따르기(休復之吉 以下仁也) 때문에 길하다. ‘올라타지 않고 따른다’는 게 어떤 걸까.

『서경』에 그 단서가 있다. 요임금이 다음 왕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순’을 염두에 두고 그를 테스트하는 장면이 나온다. 순은 교육, 행정, 외교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이제 마지막 관문만이 남았다. 그것은 산 속으로 들어가는 것. 산에서는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만나게 될 수 있는데, 그것을 피할 수 있는지 보려는 것이다. 마침내 순임금이 산 속으로 들어갔는데, 사나운 바람과 번개와 비에 피해를 입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순에게는 바람과 번개와 비를 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능력은 다른 게 아니다. ‘욕심 없음’이다. 욕심이 생기면 느낌이 둔화된다. 큰 위험에 처할 때를 생각해보라. 태풍이 불고 산이 무너지는 위험스런 사태가 일어날 때가 되면 피하고 싶은 느낌이 들기 마련인데, 욕심이 많은 사람은 느낌이 둔화되기 때문에 피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자연이 주는 신호를 수신할 수 없는 상태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조심해야 하는 이때에 집회에 나가고, 교회에 나가고, 온갖 모임을 갖는 이유가 그것이다. 여전히 모여 먹고 마시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초구가 복귀하는 천지의 뜻임에도 그것에 따르지 못하고, 홀로 미혹한 상태에 놓여 있는 상육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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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미에서 보니, 육이가 올라타지 않고 따른다는 것이 뭔지 알겠다. 초구를 ‘올라탄다’는 것은 자신의 욕심을 앞세우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효는 올라타는 대신 아름다운 뜻을 가진 초구를 ‘따른다’. 자연의 신호에 맞춰 자신의 삶을 고치고 바꾸는 것이다. 아름다운 뜻에 따름으로써 아름다운 복귀를 할 수 있게 되는 것.

나는 내가 처음 자전거 사업을 하게 되었던 때를 떠올렸다. 당시 나는 인생을 새롭게 살아보겠다고 반백수가 되어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를 고민하던 와중에 녹색평론가 김종철이 쓴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를 읽게 되었는데….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그때, 나는 자전거를 타는 것이, 자전거를 타게 하는 것이 그의 주장에 동참하는 길이라고도 생각했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평생 자전거를 이동수단으로 삼겠다고. 그것이 자전거 사업을 하게 된 주요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십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때 그 마음으로 살고 있지 않다. 자전거는 이동 수단이라기보다는 여행을 하는 보조 수단이 되었고, 남편이 자동차를 산 이후 그 편안함에 빠져들기도 했다. 사업 초기에는 ‘反자동차’를 주창하며, 환경오염의 주범인 자동차가 우리 일상을 잠식하게 된 계보학적 탐사도 열심히 했다. 하지만, 이젠 자동차가 없는 생활에 대한 상상력이 잘 발동되지 않는다. 그렇게 편리와 이익을 쫓게 된 내 삶의 패턴 역시 코로나 시대를 불러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지뢰복괘’는 묻는다. 어디로 갈 것이냐고! 자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조화를 이룰 것인지, 아니면 묵살하고 편리와 이익을 추구하면 살 것인지 말이다. 편리와 이익을 추구하면서 복귀하는 방법이란 없다. 그 경고에 내 삶의 패턴을 고치고 바꾸는 것, 그것만이 아름다운 회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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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지뢰복괘'는 묻는다. 어디로 갈 것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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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일리히)
더 깊이 숙고해야할 것들이 많은 시기… 주역에 기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