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결(청년공자 용맹정진밴드)

1. 공동체에게 전부인 것이 나에게도 전부가 된다는 것

공동체를 위해 열심히 활동했는데, 그 뒤 충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왠지 모르게 기분이 안 좋을 때가 있다. 이런 자의식과 찝찝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나와 공동체를 분리하고, ‘내가’ 공동체를 위해 무언가를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스인에겐 공동체와 개인이 분리되는 이분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고전기 그리스인들은 ‘폴리스’라고 불리는 공동체를 이뤄 생활했다. 이 폴리스의 관심사는 구성원 모두의 관심사였으며, 그리스인에게 폴리스 차원의 공공사업은 추상적이고 고달픈 의무가 아니라 재미와 자부심, 생동감이 넘치고 구체적으로 몸에 와닿는 일이었다. 그래서 ‘폴리스를 돕는 것은 모든 사람의 의무다’라는 말은 그저 기분 좋은 표현이 아니라, 가장 뜻이 분명하며 가장 절박한 상식을 이야기했다. 이들은 어떻게 나 따로 공동체 따로라는 이분법을 뛰어넘었으며, 공동체의 일이 나의 일 자체가 되어 그것을 함에 있어 자신을 소외시키지 않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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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의식과 찝찝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나와 공동체를 분리하고, ‘내가’ 공동체를 위해 무언가를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삶이 공유되는 공동체

그렇다면 우선 ‘폴리스’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폴리스는 도시나 국가라기보다는, ‘커다란 가족’ 혹은 ‘공동의 삶 자체’를 의미했다. 즉 폴리스란 어떤 물리적 영토나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공동체가 아니라, 매일매일 보고 느끼고 함께 호흡하는 구체적인 실체였다. 그리스인은 폴리스를 먹여 살리는 폴리스의 평야를 보았고, 자신들이 쓰는 것들이 만들어지고 오고 가는 교역, 산업 현장을 보았다. 또 축제와 종교행사를 함께 준비하고 참여했고, 이웃들의 크고 작은 다툼이 벌어지는 소송을 구경했으며 자비를 들여 전쟁에 나갔다. 이 모든 것이 ‘폴리스’였고 ‘폴리스의 삶’이었다. 이런 대가족 같은 공동의 삶이 가능했던 이유는 폴리스의 규모가 오늘날의 도시보다 훨씬 작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폴리스의 모든 시민들은 서로 얼굴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과 대부분의 폴리스는 하루 종일 걸으면 끝에서 끝을 오갈 수 있는 크기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소규모 공동체였기에 서로의 삶이 서로에게 완벽히 공유될 수 있었다. 요컨대 폴리스는 ‘공유되는 공동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3. 그리스적인 것의 뿌리, 전체성

그러나 이와 같은 폴리스 공동체가 가능했던 이유가 단지 인구수와 크기에만 있었을까? 여기엔 보다 근본적인 요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인의 ‘전체성’ 개념이다. 그리스의 전체성은 가장 넓은 관점을 취하고, 사물을 유기적 전체로 바라본다. 예를 들어 그리스인은 육체와 정신을 나누지 않았다. 때문에 육체 훈련을 통해 정신적 교육을 하였고, 체육관은 육체 훈련뿐 아니라 정신 훈련을 위해서도 이용되었다. 전체성이 잘 나타나는 또 다른 예시는 바로 ‘아레테’이다. 아레테란 한마디로 ‘모든 것에 있어서의 탁월함’을 의미한다. 가령 아레테를 갖춘 사람이라고 한다면 위대한 전사이자 동시에 교활한 책사와 달변가였다. 항해술과 요리, 농사와 같은 실용기술도 뛰어나다. 게다가 권투, 레슬링, 달리기와 같은 신체 능력도 탁월하고, 심지어 노래에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감수성까지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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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권투, 레슬링, 달리기와 같은 신체 능력도 탁월하고, 심지어 노래에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감수성까지 갖췄다.

4. 공동체 = 삶

이런 전체성의 시선에서 그리스인은 공동체를 다음과 같이 인식했다.

“사물의 전체성에 대한 감각이야말로 그리스 정신의 가정 전형적인 특징이다. … 폴리스 자체는 통치하는 기구가 아니라 삶의 거의 전체와 관계를 맺는 어떤 것이었다.”

(H.D.F 키토 지음, 박재욱 옮김 /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 / 갈라파고스 / 257p)

즉 폴리스는 정치적, 문화적, 도덕적인 모든 삶을 포함하는 공동의 삶 그 자체를 의미했던 것이다. 예컨대 페리클레스의 연설에서 ‘우리는 우리의 폴리스를 모든 이에게 개방합니다.’라는 말은 ‘우리는 모든 이에게 우리들 공동의 문화적 생활을 개방한다.’는 뜻이며 ‘우리는 그들에게 어떠한 교육이나 구경거리도 금지하지 않습니다.’라는 의미였다. 더욱이 그리스인에게 폴리스는 곧 법인 동시에 교육기관이었고, 덕성의 훈련 또한 폴리스의 관심사였다. 요컨대 폴리스는 일상부터 사회의 질서와 공동체의 가치관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삶 그 자체였다. 때문에 앞서 그리스인에게 폴리스는 ‘삶이 공유되는 공동체’라고 말하였는데,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 삶이 공유되는 / 공동체 ]를 넘어서 [ 삶 그 자체 = 공동체 ]였던 것이다.

5. 대상이 아닌 삶으로서의 공동체

나는 공동체를 구체적 대상으로 여기긴 했으나 삶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가령 ‘강학원&감이당’이라는 공동체를 떠올리면 곰샘을 비롯한 샘들과 청스청용 맴버들이라는 ‘사람’이 있고, 깨봉과 사이재와 나루와 같은 ‘공간’이 있으며, 수업과 세미나라는 ‘활동’이 있다. 이런 구체적 요소들의 총합으로서 공동체인 ‘강학원&감이당’이라는 관념이 머릿속에 생긴다. 이렇듯 공동체는 내게 구체적인 대상으로 존재했다. 그렇기에 어디까지나 나는 나이고 공동체는 공동체였다. 이 둘 사이의 경계는 너무도 선명했다.

그런데 공동체가 대상이 아닌 으로 다가온다면, 공동체는 활동이 벌어지는 장이자 삶이 일어나고 공유되는 흐름으로 인식된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구성원 간의 경계와 구분이 무의미하고, 그때 비로소 공동체와 나는 둘이 아니게 될 것이다. 내가 누굴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닌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 그렇게 됐을 때 공동체 활동에 자의식의 무게가 실리지 않고 행위 자체로 보람과 충만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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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는 활동이 벌어지는 장이자 삶이 일어나고 공유되는 흐름으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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