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사랑의 자유를 찾아 나선 여자 -3)

김석영 (남산강학원 청년스폐셜)

3. 여자와 남자는 다르다

암탉이 수탉다워질 수는 있다 하더라도 그때의 암탉은 불안해지는 것이다. 비록 몸은 떨고 있다하더라도 암탉다웠을 때의 암탉은 안정되어 있다. (…) 어찌된 것인지 오늘날에 와서는 모든 수탉들은 알이라도 낳을 듯이 꼬꼬댁 대고 있고, 모든 암탉들은 아침 해라도 불러낼 듯이 꼬끼오 소리를 치고 있다.

로렌스의 성과 사랑, p.60

 

뜬금없는 암탉 비유는 D.H.로렌스에게서 가져왔다. 그는 얼핏 위험할지도 모르지만, 꽤 재미있는 말을 한다. 일출을 알리며 꼬끼오 우는 ‘수탉의 독단적인 자신감’이 있고 아무도 모르는 새에 찾아둔 좋은 자리에 알을 낳고 꼬꼬댁 우는 ‘암탉의 차분한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다. 헌데 암탉이 수탉처럼, 수탉이 암탉처럼 되려고 할 때 그들은 안정될 수도, 자기다울 때만큼 멋있을 수도 없다. 그래서 그는 요즘 닭들은(결국 사람들은) 별 볼 일 없다고 한다. 게다가 이렇게 암탉이나 수탉 흉내를 내다보면 어느 순간 헛헛해질 거라고 우리를 가여워한다.

암탉들은 의기양양하게 일출을 알리는 수탉을 흉내 내 운다. 하지만 수탉들의 그 울음 뒤에는 다른 놈의 도전적 응답이 있는지 귀 기울이며 저항, 위험, 죽음을 감수하는 침묵의 시간이 있음은 모른다. 수탉들은 암탉다워지기를 갈망하며 알을 낳은 암탉처럼 울어댄다. 하지만 알을 낳기 전, 암탉들이 좋은 둥지를 발견하기 위해 얼마나 끈덕지게 노력해왔는지는 모른다. 그러니까 그들은 무엇이 암탉과 수탉을 자긍심에 넘치게 하는지 모른 채 기세에 홀려 울음소리만을 따라하는 것이다.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암탉을 따라하는 수탉들, 수탉을 따라하는 암탉들.

그가 수탉과 암탉 비유에 ‘도전’이나 ‘출산, 양육’을 쓴 점은 걸린다. 세상에는 이런 말들만 갖다 ‘여자는 집에서 애나 봐라’식의 담론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혹시 내가 그런 결론을 낼까봐 무서웠다. 하지만 나는 암탉이 수탉을 쫓다 허무해지는 이 스토리에 계속 눈길이 갔다. 암탉에게서 나는 내 모습을 본 것이다. 여자다움을 거부하면서 ‘수탉 흉내를 고집하다가는 종국에는 헛헛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늘 내 안에 있었다. 나는 여자이니 출산과 양육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여자 될래!’든 ‘여자 안 할래!(=남자 할래!)’든 무언가를 흉내를 내며 사는 방식 자체가 문제라는 거다. 나의 삶과 행위에 대한 사유 없이 껍데기만 부풀리고 있으니 삶이 불안하고 헛헛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때 나는 열등감에 빠졌을 뿐만 아니라 내가 멍청하게 삐걱거림을 느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본성과 기질을 십분 활용하며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 게다가 그렇게 힘주고 한다는 짓이 ‘독립적’이란 허울로 센척하고, 내 감정도 상대 감정도 무시하고, 거칠고 우악스러워 지는 일이라면……. 이건 그냥 막 사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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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될래!’든 ‘여자 안 할래!(=남자 할래!)’든 무언가를 흉내를 내며 사는 방식 자체가 문제라는 거다.

이럴 때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는 말은 ‘여자는 열등하다’는 왜곡된 시선을 재생산할지 모른다는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솔깃하다. 그리고 그런 우려는 기우였다. 로렌스가 말하는 핵심은 ‘네가 쫓고 있는 가치가 너를 충만하게 하는지 의심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충만한 길을 찾게 하기 위해 던져준 힌트가 ‘암탉과 수탉은 다르다’는 설정이다. 다르다는 건 ‘같아질 필요가 없다’는 거다. 우열은 같은 무언가를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만 나온다. 다르다는 걸, 내게는 그들과는 다른 고유한 역량이 있다는 걸 알면 남성을 기준으로 여자인 나를 모자라게 볼 필요가 없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이건 항상 가까이에 있었지만 내가 격하게 거부해오던 하나의 출구였다!

4. 남자든 여자든 여성이 되어야 한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성별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여자들에게 종속의 굴레를 덧씌우는 말인 줄로만 알았던 이 문장이 이토록 묘할 줄이야. 이 문장이 정말 묘해지기 위해서 체크해야할 중요한 부분이 있다. 자세히 보면 이 문장은 성별이 남자와 여자 둘로 나뉜다고 말하지도, 한 개인이 남자또는 여자로 확정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성별을 둘로 나누려면 끝없는 논쟁을 해야 할 테다. (‘이건 어디다 두지?’)] 우선 이걸 제대로 알고,

남녀는 다르다고 하니, 다르게 되어보자. ‘남자’와도, ‘남자가 되지 못하는 여자’, 결국 ‘모자란 남자’와도. 이런 의미에서 여자가 된다는 건 우리가 한 번도 되어본 적 없는 것이 되는 일이다. 당신이 남자건 여자건 ‘남자 흉내’를 내며 뭔가 삐걱거림이 있었다면,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는 말을 부여잡으라. 그리고 당신 안의 여성성, 즉 ‘다르게 되는 힘’, ‘소수자의 역량’(내가 제목에 쓴 것과는 아주 다른 의미의 여성성!)을 발휘하라. 그것이 들뢰즈·과타리가 말하는 여성-되기다.

여성-되기는 현재의 가치에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떻게 (여자의 반대인) 남자가 될까?’, ‘어떻게 (남자의 반대인) 여자가 될까?’가 아니라 ‘저건 뭘까? 저걸 따르는 게 정말 잘 사는 걸까?’를 묻는 것. 벌써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날을 바짝 세우면 사람들한테 무시는 안 당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인연일 수 있는 사람들을 놓치며, 늘 이기는지 지는지 전전긍긍하며, 내가 이긴다면 남을 지게 하는 건데. 그게 좋은가? ‘저렇게’ 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며 내게 소중한 가치, 지혜, 사랑, 사람 등을 포기하는 일부터 멈춰야 한다. 끈덕지게 붙잡고 가야 한다. 그럼으로써 다른 가치와 다른 삶을 창안할 수 있다. 세상이 나누어 놓은 남자와 여자라는 구분과 그 구분이 은연중 우리 모두에게 요구하고 있는 가치(‘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하지.’=남성적 가치)를 해체하는 것이다. (내가 ‘남자 흉내’를 내며 내 기질이 충분히 발휘되지 않는다고 느꼈던 것은 그와 반대되는 기질이 내 안에 숨어 있어서가 아니라 내 안에서 이 ‘다름을 만들어내는 힘’이 꿈틀댔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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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여자의 반대인) 남자가 될까?’, ‘어떻게 (남자의 반대인) 여자가 될까?’가 아니라 ‘저건 뭘까? 저걸 따르는 게 정말 잘 사는 걸까?’를 묻는 것.

여성-되기는 ‘여자들의 가치를 보호’하거나 ‘여성 인권을 높이’는 것과는 다른 움직임이다. 결국에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남자와 여자, 남성과 여성이라는 틀을 해체하기 때문이다. (‘여성 인권운동’은 아이러니하게도 여성과 남성 모두를 해체하는 여성-되기와 함께 가야 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입을 빌려 예를 들어보겠다. 화장과 의복 등은 쉽게 폄하되는 반면 전쟁과 스포츠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실제로 주로 남자들의 삶을 이루고 있는 가치가 드높여지고 주로 여자들의 삶을 이루고 있는 가치가 폄하될 때 우리는 화가 나거나, 당혹스럽다. 그리고 두 가지 액션 중 하나를 취한다. 하나, 남자들의 가치를 따른다. (“여자들, 너넨 못났어.”) 둘, 여자들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남자들, 너넨 틀렸어.”). 아, 혹은 평등을 말할 수도 있다. (역시나 “남자들, 너넨 틀렸어.” 하지만 여성 혐오가 팽배한 사회에 살면서 평등을 외친다 한들, 마음속으론 ‘정말 나는 열등한 게 아닐까?’라는 의심을 지우기 힘들다.)

이 모든 선택지에는 하나의 문제점이 있다. ‘사물 자체가 아닌 어떤 다른 것을 생각’(버지니아 울프)하게 되는 것이다. 정말로 나는 이것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내 생각에 이것이 아름다운지 아닌지, 이것이 좋은 책인지 나쁜 책인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에 대한 타인의 평판이나 의견이 어떤지, 거기에 어떻게 맞추거나 반박할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삶에 있어서 큰 손해다. 엄청난 부자유다. 여자들이 남자들만큼의(남자들도 남자들만큼의) 능력이나 부, 명예를 얻어도 불안과 헛헛함이 해소되지 않는 이유다. 사물 자체, 내 감정 자체, 내가 하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지 못하면 무얼 하든 불안하고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스스로를 불신하게 된다.

어떻게 자긍심을 회복할 수 있을까? 자긍심 회복의 첫 단계는 내가 참여하는 경쟁에 질문을 던지고, 삶의 방향을 스스로 잡는 것이다. 행위의 가치를 스스로 매길 수 있어야 한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매일 아침 일출을 알리며 도전과 죽음을 마주하거나 알을 낳기 위해 끈덕지게 노력해 좋은 둥지를 확보하는 닭들처럼. 그들의 행위는 스스로 삶에서 소중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향하고 있고, 충실함이 가득 담겨있다.

내게도 그런 것들이 있다. 매일 아침 하루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불을 개고, 욕심 안 부리고 글을 쓰고, 매 순간 내 것을 나누기 위해 노력하기 등 미세하고 조용하고 드러나지 않는 행위들. 멋들어진 일들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내 삶을 흔들리지 않도록 지킨다. 내 나름의 질문과 사유를 통해 찾은 방향으로 내 삶을 끌어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기에 충실하다. 누가 보든 안 보든. 그럴 때 (보통은 쌈닭 기질이 있는) 나는 누구와 경쟁하지도 않고, 내가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이기고 있거나 지고 있거나, 상관이 없다. 삶이 이런 행위들로 채워질 때 우리의 울음은 암탉다운 암탉의, 혹은 수탉다운 수탉의 울음이 된다. 둘 중 어느 쪽인지는 알 수가 없고 알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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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하루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불을 개고, 욕심 안 부리고 글을 쓰고, 매 순간 내 것을 나누기 위해 노력하기 등 미세하고 조용하고 드러나지 않는 행위들.

에필로그. 그래서 강아지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전편에서 언급했던 ‘강아지’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강아지’는 내게 의존이고, 관계를 기대하는 마음이었다. (전편 참고) 여성-되기를 통한다면 이런 마음도 나약한 방식이 아닌 고귀한 방식으로 쓰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글을 쓰기 위해 의존을 말하는 『주역』의 리(離)괘 부분과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봄날의 책, 2020)라는 책에 실린 「시민으로서 돌보고 돌봄 받기」(전희경)라는 글을 읽었다. 여기에서 공통적인 세계관을 발견했다. ‘독립적 인간은 환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세상에 의존하지 않고 사는 존재가 있는가?

주역은 말한다. ‘풀은 흙에 의존하고 하늘은 태양에 의존한다’고. 세상에나. 그러고 보면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에 의존하고 있는가? 집에, 노트북에, 친구에, 밤엔 인공 빛에, 낮엔 태양에, 바람에……. 사람들의 층위로 들어와도 그렇다. 부모님 손에 낳고 길러졌을 뿐 아니라 혼자서 먹고 걸을 수 있는 하루 안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활동과 말 걸기와 웃음과 울음 사이에 내 삶이 걸려 있는가? 그리고 나이가 들면 또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게 당연하다.

독립적인 존재가 되겠다는 말은 내가 이제껏 어떻게 나고 자랐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또 늙어갈 것인지를 너무나 못 보고 하는 말이다. 단지 돈이 많고 감정이 없으면 ‘독립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오산이고 오만이라는 말이다. 아, 그랬지. 모 기업의 회장님도 자신의 적적함과 헛헛함을 푼돈을 주고 이름 모를 여자에게 의존해 달래지 않던가. 나는 너무나 큰 착각과 환상 속을 살아가고 있었다!

의존과 돌봄은 모든 인간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잘’ 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라는 책이 던지는 질문은 말 그대로 ‘여성적’이었다. 우리가 흔히 돌봄에 대해 생각하듯 ‘돈을 주고’, 혹은 ‘가족에게 맡기는’ 방식 말고 어떻게 ‘다르게’ 의존하는 사회를 만들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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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언급했던 ‘강아지’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강아지’로 풀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에게 기대고, 사람을 반기는 강아지의 능력, 다른 사람에게 힘을 주고 힘을 잘 받을 수 있는 능력 말이다. 서로 의존하고 돌보기를 멈출 수 없는 인간이란 존재에게 이것은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 아닐까? 그러니까 나는 나의 강아지를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강아지를 강아지로, 대신 슬퍼지지 않는 방향으로, 나와 타인의 자연스러운 약한 모습까지 끌어안을 수 있을 만큼 강하게, 다시 잘 키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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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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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Guest
이승현

글 쓸때 누나 눈 엄청 이글이글거리던데…

아… 내가 글 쓸때 욕심부려서 누나를 그렇게 봤구나… ㅋㅋㅋ

글 잘 읽었어요 ㅋㅋㅋ 여러번 읽어야지 ㅋㅋㅋ

남산호저
Guest
남산호저

ㅋㅋㅋ장자방에서 엄청 불태웠나보구나
글 잘 읽었어요~ 강밀도가 짱짱한데? ㅎㅎ
석영이의 글이 로렌스와 울프 등의 ‘사람’을 지나며 만들어지고 있구나 하는 것도 느껴지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