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복

내경(內經)에서는 이전에는 고귀하다가 나중에 비천하게 되어 병이 들었다면 이를 탈영(脫營)’이라 하고, 이전에는 부유하다가 나중에는 빈곤하게 되어 병이 발생했다면 이를 실정(失精)’이라고 한다. 이런 경우는 비록 외사(外邪)에 감염되지 않았더라도 질병은 내부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환자의 신체는 날로 수척해지고 기()는 허해지며 정()은 줄어들다가 병이 심해지면 기력이 없어지고 추위를 느끼며 잘 놀란다. 이렇게 병이 심해지는 것은 정지(情志)가 억눌려 밖으로 위기가 손상되고 안으로는 영혈(榮血)이 소모된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왕빙(王冰)의 주해에서는 ()은 근심 때문에 졸아들고 기()는 슬픔 때문에 감소되므로 밖으로는 위기(衛氣)가 손상되고, 안으로는 영혈(榮血)이 소모된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증상은 사람으로 하여금 음식 맛이 없게 하고 정신이 나른하여 살이 빠지게 하는데 이런 경우에는 교감단(交感丹)을 내복하고 외용약으로는 향염산(香鹽散)을 써서 이를 닦는다.

(내경편, ‘’, 292)

요즘 내 주변에는 사회적 지위도 누렸고 재산에다 연금까지 있어 살만한데도 우울하고 아프다는 사람이 있다. 밖에도 잘 나가려 하지 않고 집안에만 있으면서 밤 늦게까지 티브이만 보다가 늦게 일어나고 밥맛이 없다며 먹지도 않아 몸무게가 많이 줄었다고 그 아내는 걱정한다. 내가 보기엔 바로 ‘탈영’이다. 요즘말로 하면 퇴직 증후군. 애써 노력해서 최고 지위까지 올라갔는데 딱 1년, 혹은 6개월하고 퇴직하면 허망한 모양이다. 최고상사로 대우받는 뿌듯함이 가시기도 전에 갑자기 바닥에 내려온 기분일지도 모른다.

농사짓던 땅이 도로에 편입되어 보상금으로 벼락부자가 되었다가 투자를 잘못하는 바람에 날거지가 되어 두문불출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은 이런 경우가 아주 많다. 이곳 저곳 파헤치며 개발을 하다보니 생기는 현상이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기가 죽고 의욕이 없고 음식맛도 없어지면서 말라간다. 슬금슬금 기혈이 소모된다. 낙폭이 크면 클수록 증상은 더해간다. 이럴 때 『동의보감』에서 내리는 처방은 교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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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단(交感丹) 모든 기가 울체된 증상을 치료한다. 일체의 공적인 일이나 사적인 일로 감정이 생겨 답답한 것, 명예나 재물이 뜻대로 오지 않아 억울하면서 고민스러운 것, 칠정(七情)으로 상하여 음식 생각이 없고 얼굴이 누렇게 뜨면서 몸이 여위며 가슴속이 더부룩하고 답답한 것 등 모든 증상에 신기한 효험을 보이고 수화(水火)를 잘 오르내리게 한다. 향부자(장류수에 3일간 담갔다가 꺼내어 볶은 것)1, 복신 4. 위의 약들을 빻아 가루를 낸 다음 꿀로 반죽하여 탄알만하게 환을 만든다.

(내경편, ‘’, 262)

기가 울체되었다는 것은 기가 막혔다는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거의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으면서 움직이지도 않으니 막혀서 더부룩하고 답답할 수 밖에. 이 처방에 쓰인 향부자는 막힌 기를 잘 오르내리게 해주는 약재다. ‘수화(水火)를 잘 오르내리게 한다.’

우리 몸은 물과 불의 오르내리는 순환을 통해 기가 소통된다. 불은 심장이 주관하고 물은 신장이 주관한다. 아래에 있는 신장의 물은 위로 올라가 위에 있는 심장의 불이 한꺼번에 타올라 위로 사그라지지 않도록 은근히 불을 제압하여 적당한 온도로 만든다. 그러면 불은 물과 섞였으므로 물처럼 흘러 사지 구석구석까지 혈액을 전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기가 통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이 기와 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음식(곡식)을 통해서다. 음식이 위에 들어가 소화되어 변한 정미로운 물질이 기가 되고 그 기가 붉게 변한 것이 혈이다. 그런데 먹지 않기 때문에 기혈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반대로 기혈이 통하지 않으니까 먹을 의욕이 안 생긴다. 교감단은 말 그대로 물과 불을 교감시켜 먹게 하고 통하게 해준다는 것. 향염산도 주 약재가 향부자인걸 보면 식욕을 돋구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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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기와 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음식(곡식)을 통해서다.

그런데 요즘은 이러한 처방을 써 볼 겨를도 없이 막바로 죽음으로 마감해버리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 한창 잘 나가던 정치인, 연예인들이 인기가 좀 떨어졌다고 해서 목숨을 버리는 경우를 우리는 뉴스에서 자주 본다. 아직 먹고 살만한 재산이 있는데도 예전만큼 수입이 없다하여 비관해서 죽는 경우도 있다. 이는 자신들의 명예와 인기가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욕심 때문에 저지르는 일이다. 세상은 변해가는 법. 그건 터무니 없는 꿈이다.

옛 현인들은 사람은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일이 잘 풀리는 것은 결코 자신의 능력 때문만은 아니다. 주변에서 도와주고 시절을 만나고 운이 좋아 트였을 수가 있다. 이럴 때 겸손하지 못하고 자신 개인의 능력으로 믿는다면 추락했을 때 절망은 그 만큼 더 크다. 그러니 그 상실감을 감당하지 못하여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부와 명예가 자신의 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듯 그것을 잃는 것도 자신의 탓만은 아니다. 때가, 여러 조건이 그리 되어서 온 일이다. 옛 사람들은 벼슬의 한복판에 있을 때도 언제든 그만 둘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며 귀거래(歸去來)를 준비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세상일은 아무도 예측 못하는 변수가 있게 마련이며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변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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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겸손하지 못하고 자신 개인의 능력으로 믿는다면 추락했을 때 절망은 그 만큼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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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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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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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잘 되든 못 되든 자신의 탓 만은 아니다…감사합니다. 선생님